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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보라 Nov 16. 2023

'완벽한 가족'이라는 선 밖에서

소설 [양면 색종이의 뒷면] 1화

 학년이 바뀌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은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다. 한 번은 박기령 선생님의 출산휴가 또 한 번은 박철종 선생님의 자살 때문이었다. 겨우 담임이 바뀌는 일의 연유가 누군가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이 무게가 맞지 않는 듯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일로 지금의 선생님이 나의 담임이 되었다. 딱 보아도 이제 막 교사 자격증을 딴 듯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우리 학급을 맡았다. 부현석 선생님은 부임 후 첫 임무로 방학 전까지 우리 학급의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는 일을 맡은 터라 의지가 남달랐는데 가끔은 수업시간에도 자율학습을 내주고는 동사무소도 찾아가고, 경로당도 찾아가고 마을 이장님과 면담도 하더랬다. 분명 우리를 위한 일이었으나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우리 너머의 것들을 자주 신경 썼다.


 초등학교 졸업생이 5명, 기껏 해야 8명인 분교 네 다섯 곳에서 끌어모은 학생들이 다니는 봄덕 중학교. 개교 이래 가장 학생 수가 많다던 우리 학급에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것이 한이 되어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치르러 오는 남길 할아버지와 유급을 당해 동생과 한 학급이 된 성철이 형, 그리고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빠랑만 사는 영미와 어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고모네 얹혀사는 내가 있었다.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듯 다채롭고 잡스러운 봄덕 중학교 3학년 1반. 그 와중에 담임 선생님의 자살까지 얹어지자 참으로 유별난 기사생 뱀띠들이라며 누군가의 죽음도 우리의 얄궂은 사주 탓이라 했다.


 새로 온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건 좋은 의미이기도 했지만 나쁜 의미이기도 했다. 반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이유로 교무실에 불려 갔는데 대부분 생활기록부에 적힌 인적사항을 다시 한번 읊기 위해서였다. 다른 친구들은 쉬는 시간을 넘기는 적이 없었건만 몇몇은 불려 갈 때마다 수업 종이 치고도 한참 뒤에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왔다. 아마도 성철이 형은 어쩌다 유급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기 싫어서 시간을 끌다 그랬을 것이고, 영미는 부모님의 이혼사유를 정확히 몰라 얼버무리다 그랬을 것이며, 나는 부모님의 사고 경위부터 설명해야 해서 누구보다 면담 시간이 오래 걸린 게 분명하다.  


 어제는 선생님이 따로 교무실로 나를 내려오라고 하더니 몇 번 헛기침을 하고 가림막 너머를 살피고는 비밀인양 영미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무야, 영미랑 친하지?”

“그냥, 조금요.”

“오늘 영미가 그러는데 부모님 다시 합치기로 하셨다더라. 그래서 오늘 조퇴를 하고 간 거야. 그러니 내일 만나면 축하해 줘라. 이거 너만 알려주는 거다.”

“왜 저한테만 알려 주시는 건데요?”

“그야 다른 친구들은 그 마음을 잘 모르잖니.”

“저도… 잘 모르는데요.”


 수업종이 치고 선생님은 얼른 교실로 올라가 보라며 내 어깨를 툭 밀었다. 하지만 나는 교무실을 나와 곧장 교실로 가지 않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미술 시간을 빼먹고 옥상에서 내내 하늘만 쳐다보았다. 세차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지루해지면 눈동자가 타들어갈 것 같은 뙤약볕을 차라리 눈이 멀기를 바라며 쳐다보기도 했다. 회화처럼 가만있는 것 같던 하늘은 꼭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 살아 있었다.

 

나는 익숙한 혼잣말을 흘리듯 뱉었다.

“거기 누가 계셔요?”


 고모는 성묘만 가면 저기 하늘나라에서 우리 해무 지켜보고 있느냐고, 이렇게 많이 컸다고, 못 보고 가서 얼마나 억울하냐고 꺼이꺼이 울었다. 지금보다 어렸던 나는 땅 속 깊이 묻어두고는 엉뚱하게 하늘에서 찾는 것이 늘 기이하면서도 따로 묻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없는 그들이 실은 땅 속에 있건 하늘에 있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슬프지 않아서 울지 못한 것인데 고모는 멀뚱히 서있는 날 보면 이 어린것이 아무것도 몰라서 울지도 못하는 게 더 안쓰럽다며 내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끌어안았다. 나만 공감할 수 없는 나의 슬픔이 벅찰 때쯤부터였을까. 이집트 나일 강에 사는 악어는 사람 잡아먹고 난 뒤에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 전설처럼 나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갑옷 같은 가죽 위로 흐르는 악어의 눈물을 떠올리면서, 결코 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눈물들이 묫자리 위로 뿌려졌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궁금해졌다. 정말 그들이 하늘에 있는지, 그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내일 영미를 만나면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지도 일러주었으면 좋겠다. 응당 축하받아야 할 사람에게 결코 축하해 줄 수 없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눈물이 나지 않을 때 우는 법은 배웠지만 웃음이 나지 않을 때 웃는 것은 도무지 어렵던데 그것도 방법이 있는지 말이다.



*

 혼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다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쌍둥이 조카 두 녀석은 이제 막 말하는데 재미를 붙여서 하루종일 무언가를 뱉어내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 나의 세계에서는 늘 묵음처리 된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부모를 잃었을 내가 불현듯 떠오른다. 떠오른다기보다는 상상하는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저렇게 어릴 때였다면 아마 나는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모의 죽음에 비통할 새도 없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같은 말을 쏟아내며 장례식장을 휘젓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


 전해 듣기로 부모님은 내가 막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셔서 근처에 살던 고모가 나를 거둬주었다고 한다. 내가 말이 많이 늦은 편이라 세 돌이 조금 안 되었을 때라고 했다. 고모에겐 불행이었으나 나에겐 다행스럽게도 고모는 난임이라 자식이 없어서 고아가 된 나를 자식처럼 키워주셨다.


 그렇다. 자식’처럼’. 이 불완전한 조사가 붙은 관계마저도 재작년 고모가 출산을 하면서 사라졌는데 시험관 시술인지 뭔지는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많다더니 고모도 쌍둥이를 낳았다. 마음씨 착한 고모는 그래도 나를 첫째라고 불러주었고, 아이들에게도 사촌이 아니라 친 형처럼 생각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 정말 그렇다면 아직 사촌의 개념조차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저 나를 형이라고 일러주었으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 피로 묶여있었으나 그 관계는 매우 느슨했다.


 그럼에도 고모는 늘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교복은 늘 빳빳하게, 맛있는 반찬은 꼭 내 앞에, 잠자리는 불편하진 않을까 매번 이불 끝까지 단정하게 펼쳐주셨다. 한 번도 고모의 챙김이 당연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고맙고, 가끔은 미안하고, 언제는 송구스러웠다. 고모는 엄마가 아닌데, 이렇게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사실은 조금은 막 대해줬음 싶기도 했다. 태어난 쌍둥이 조카들이 먹다 뱉은 고기 완자를 아깝다고 주워 먹는 것처럼, 기껏 펴놓은 이불을 밟고 다니지 말라며 작은 등짝을 후려치는 것처럼 말이다. 고모의 대접은 늘 나를 이 집의 손님으로 만들었다. 부모 잃은 나를 거둬준 고모에게 이런 서운함이 드는 나는 정말 불효자 아닌가. 아니, 그저 무례한 손님이려나.


그날 저녁도 고모는 정성스럽게 고등어 가시를 발라주었다. 나는 늘 그랬듯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역시 자식과 부모 간에 할 말은 아니었다.


"고모. 영미네 부모님이 합치신대요."

"영미에게 들었니? 내일 새벽 기차로 영미 엄마가 온다는구나. 영미 아빠가 싹싹 빌었다지 아마."

"영미에게 좋은 일이겠죠? 엄마랑 다시 같이 살게 된 거요."

"좋다마다. 영미 보면 잘됐다고 축하해 줘."


 글쎄, 축하한다는 건 남의 좋은 일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뜻인데.

 나는 영미 부모님의 합가가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았지만 다른 말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어떤 말이 좋을까요라고 되물으려다 그냥 고모의 말마따나 '축하한다'라고 말하기로 했다.



*

 다음날, 영미는 1교시에 오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2교시부터는 각자 C.A활동을 하러 떠나기에 오늘 영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할 기회는 이제 없다는 뜻이다. 다행이었다.


"해무야, 영미네 어제 파티했나 보다, 그렇지?"

 선생님은 차에 타자마자 마치 영미네 가족이 완성된 것에 자신의 지분이라도 있는 양 본인이 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인지 조금 울고 싶었지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토요일마다 선생님 차를 타고 낮은 뒷산을 돌아 내려가면 있는 허름한 기와집. 이곳에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하루에 3시간 그 할아버지의 손자가 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착한 학생이 되고 봉사 시간은 2시간을 4시간으로 곱하여 셈 쳐 준다. 친구들이 악기를 하나씩 배우는 동안 홀로 낯선 할아버지와 보내야 하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래다.


“요 윗동네에 사는 모양이지? 언덕배기를 넘어오던데.”

“학교에서 오느라 그래요. 집은 반대편이에요.”


 할아버지는 늘 질문을 많이 했다. 무언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서먹하여 아무 말이나 뱉어 보는 것이었다. 어린 내가 할아버지의 의중까지 어찌 알겠나 하겠지만 나는 어른들의 행동에는 사소해 보여도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이유가 없는 행동은 없다. 그래서 모든 행동은 종종 상처가 된다.


“해무야. 할아버지께 가족 얘기도 해드리고 살갑게 해 드리렴. 말동무해 드리는 것도 봉사시간에 포함돼.”


나의 불행한 가족사가 봉사시간에 포함된다는 것은 또한 다행인 것일까. 나는 아직 불행과 다행을 구별하기엔 미성숙한 나이인 것이 못내 억울했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는 선생님에게 밭에 칠 농약이 모자라다며 시내로 보내고 나를 평상에 앉혔다.


“댕겨 올 동안에는 쉬어라. 오늘은 할 것도 없시야.”


할아버지는 혼자 마당 어귀를 쓸고 가마솥에 달일 나무껍질을 벗겨냈다. 내가 옴싹거릴 때마다 치워라, 걸그친다, 돌아댕기지 마라 하며 잠시 평상에 앉아 쉴 때도 꼭 나를 등지고 돌아 앉았다. 할 것도 없다더니 할아버지는 오늘 여느 때보다 더욱 분주해 보였다.


왜일까.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한테 묻고 싶은 게 생각났다. 그렇게 떠오른 질문들은 주체할 수 없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근데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돌어 세면 까먹고 돌어 세면 까먹는 나이를 뭣이라고 묻는디야.”

“여기는 오래 사셨어요? 정말 이 집에서 태어나신 거예요?”

“여기서 나도 태어나고 내 자식도 태어났제. 손주까지 봤으면 좋았으련만.”

“할아버지는 부모님 얼굴 기억하세요?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어째 자식 얼굴은 눈만 감아도 보이는데 더 오래 보고도 가물가물한 게 늘그쟁이라 그런가….”

“저는요. 엄마 아빠 얼굴을 못 봤어요. 아, 사실 봤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거예요.”

“니나 네나 기억 못 하는 건 매 한 가지구먼.”


할아버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나는 그 무관심이 할아버지가 베푸는 배려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른들이 하는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되면 기분이 어때요? 저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죽겠어요.”

“할아버지가 되면은 기분이랄 게 없제. 기분만 없게? 기운도 없고 기세도 없고, 기력도 없고.”


 비슷한 단어들을 나열하며 자조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종종 하는 말장난이었는데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곱씹으면 퍽 웃음이 났다. 하지만 오늘은 웃음보다 가만히 동조하는 얕은 끄덕임만 일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표정이 없나 봐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능청꾸럭지 같으니라고!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저 개집 밑에나 쓸어라.”

할아버지는 내 손에 싸리 빗자루를 쥐어주며 등짝을 후려쳤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빗질을 하면서 이내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온통 주름에 가려진 게야.”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치아를 훤히 보이며 억지로 웃어 주었다. 주름이 걷어진 웃음의 참 의미는 분명 나를 위로하려는 것이었다. 이번엔 눈치 없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월요일에 만난 영미는 반 친구들을 끌어모아 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해 주었다.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부모님이 이혼했던 흔적은 운동장에 찍힌 발자국 정도였다는 듯 슥슥 지워내고는 ‘완전한 가족’이라는 새로 동그라미 선을 그었다. 그 선 밖에 선 사람은 나뿐이어서 나는 홀로 술래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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