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양면 색종이의 뒷면] 프롤로그
드라마에서 내가 살던 동네의 버스터미널을 마주한 적이 있다. 드라마의 배경은 1994년. 서로에게 정성껏 응답하고, 또는 끝내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하던 그 드라마다. 동네 풍광이 얼마나 여전하였으면 2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드라마 세트장처럼 쓰였을까 싶어 언젠가 꼭 가봐야 했던 것이 수년이 지나 바로 오늘이다.
버스터미널을 핑계로 연고가 사라진 옛 동네를 찾는다는 것이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겸사겸사 들를 곳이 있어 굳이 연차를 내어 이곳을 찾았다. 텔레비전을 영 보지 않는 내가 이곳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 사위스러운 생각이 들어 굳이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로써 오랫동안 찜찜하게 남아있던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멀미가 날 정도로 꼬불거리던 국도 대신 난 고속도로덕에 30분이나 시간이 단축되었다지만 보이는 풍경이 무료해서인지 시간이 더디 가는 듯 느껴졌다. 가방을 뒤적이다 보니 아이가 접고 놀다 넣어둔 양면 색종이 한 장이 잡혔다. 한쪽은 파란색, 한쪽은 노란색이었다. 접었다기보다는 구겼다에 더 가까운 모양새였지만 아이는 이걸 보고 파랑새라고 했다. 날개를 쭉 편 새는 아니어도 날아가는 새를 연속으로 찍어 한 장 한 장 보다 보면 비슷한 몸짓이 나올 것도 같았다. 아이의 귀여운 억지에 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던 그날을 생각하니 파랑새를 접기 전 아이가 했던 질문 하나가 같이 떠올랐다.
“아빠, 이거 뒷면이 어디예요?”
“뒷면? 글쎄다.”
“가르쳐주세요 빨리. 접기 전에 알아야 접을 수 있단 말이에요.”
“뒷면이랄 게 따로 없어.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야.”
“에이 뭐야. 그렇게 생각도 없이 만들었다고요? 너무해! 그걸 알아야 이걸로 노란 별을 접을지, 파란 새를 접을지 알 수 있다고요.”
아이의 질문이 길어지자 귀찮아져서 파란색이 앞면이라고 대충 둘러댔지만 지루한 귀경길이 만들어 낸 무고한 생각으로도 도무지 어느 쪽이 앞면이고 뒷면인지 답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아이의 말처럼 어느 쪽이 뒷면이냐에 따라 하늘에 박제된 별이 될 수 도 있고,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아이의 질문이 어찌 쓸데없는 질문이겠는가. 이런 어려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한 사람을 떠올렸다.
“뭐라고 대답해 주셨으려나. 분명 기가 막힌 답이었을 텐데.”
나는 작게 흘려 말하고는 파랑새의 부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내달려 행정상의 도와 시가 3번 하고도 5번이 바뀌었다. 이리 먼 곳까지 만날 사람도 없이 오다니, 가는 길이나 기억할는지 문득 막막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함과 동시에 길을 잃을까 했던 걱정은 우스운 일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이곳을 떠났으니 십 수년만에 다시 찾은 셈인데 이곳은 버스터미널은 고사하고 강도, 산도 변한 것이 없었다. 동네에 하나 있는 약국은 이름도 그대로, 자리도 그대로. 그 옆에 딸린 미용실 이름은 로잔나 미용실에서 수진 미용실로 바뀌었으나 십 수년의 세월에 벗겨지고 색이 바랜 옥색 페인트 칠은 여전하다. 너무 변한 것이 없어 꼭 그 옛날로 돌아온 듯한 생경함마저 느껴졌다.
찬찬히 동네를 둘러보니 자주 가던 슈퍼 자리에 집 앞에 있는 CU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갑자기 낯설었던 이곳이 집 앞처럼 느껴져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카운터는 비어있었고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창고를 정리 중인듯했다. 나는 얼른 소주 한 병을 들고 안주거리로 뭘 할까 두리번거렸다. 인기척이 들렸는지 창고에서 잰걸음으로 나온 이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중년의 여성이었다.
“뭐 찾는 거 있어요?”
“아뇨. 그냥 좀 볼게요.”
“그러시오.”
주인은 카운터에 둔 동그란 의자에 앉아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빨리 고르고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며 좀 비싼 걸 골라야 하는 건지 괜한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여기 혹시 무도 있나요?”
“생 무 아니면 무 말랭이 무치시게?”
“생으로요. 이왕이면 무 청도 달려있으면 좋은데 요즘은 다 잘려 나오죠?”
“무청은 어디에 쓰게? 진작 다 잘라버리지.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손질도 다 해서 1인분씩 싹 포장까지 해가지고. 시래기는 따로 있는데 드려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아뇨. 그냥 여기 있는 걸로 주세요.”
주인은 소주 한 병에 잘린 무 몇 덩이를 사는 내가 못마땅한지 양손으로 무릎을 딛고 힘겹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무는 얻다 쓸라고? 국 끓여 잡숩게?”
“술안주나 하려고요.”
“술안주면은 오늘은 보자, 이거 풋고추도 있는데 쌈장에나 찍어먹지 왜? 저 아랫동네에서 가져온 건데 농약 하나도 안 친 거야. 공산품이랑 다르지 생긴 것도? 이 집이 농사 진실하게 잘하는 걸로 여 길 건너까지 소문이 난 데라. 3천 원어 치면 뭐 실컷 먹지.”
구구절절 슈퍼에 있는 모든 농수산물의 유통과정을 늘어놓는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유용했으나 이방인인 나에겐 무의미했다. 하지만 어느새 슈퍼 주인은 풋고추를 두 주먹씩이나 비닐봉지에 담으며 대신 풋고추는 현금으로 따로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소주 한 병과 종이컵 두 개, 무 세 덩이와 풋고추 두 주먹이 담긴 궁색한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슈퍼문을 나설 때야 카랑카랑하면서도 세월에 쉰 주인의 목소리가 익숙한 목소리인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16년의 역사를 읊을지 도 모른다는 불안감, 아니 확신이 들어 가만 입을 닫았다.
아마 풋고추 재배를 진실하게 한다던 아저씨가 사는 그 아랫동네는 아마 내가 살았던 곳일 것이다.
“언덕이 여전히 험하네. 왜 아직도 이 길은 포장을 안 하는 거야.”
과묵한 나도 혼잣말이 절로 나오는 짧고 굵게 험준한 언덕배기 하나를 넘고 나면 양 옆에 무 밭을 끼고 있는 검은 기와집 용마루가 지평선과 일직선이 된다. 한창 무청잎이 넘실거릴 계절에 황량한 것을 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모양이다. 예상은 했지만 입술 끝을 문다. 소주를 나눠 마시려고 산 종이컵 두 잔이 무색하다.
집에 가까워져서야 꽤 오랜 시간 빈 집이었던 것이 실감이 난다. 보아하니 잡초를 벤 지는 수년이 흐른 듯하고, 개 집도 나뒹구는 걸 보니 멍구도 하늘나라로 간 지 오래인가 보다. 구석에 반 정도 남은 개사료봉투가 여즉 있는 걸 보아하니 할아버지는 멍구보다 먼저 떠나신 듯하다. 시간을 역행하며 죽음을 헤아리는 것이 꽤 고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힘없이 털썩 평상에 걸터앉아 기와의 끝부터 마당 울타리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좀 늦게 왔죠. 기다리셨으려나 모르겠지만.”
나는 소주 뚜껑을 돌려 딴 후 한 입 마시고 집 터를 돌며 소주를 뿌렸다. 그리고 가져온 맥가이버 칼로 무를 조각낸 후 또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풋고추 두 주먹뿐이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이곳에는 그 뒤로도 내내 아삭거리는 풋고추 씹는 소리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