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느끼지 않게, 네겐 작은 상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난 분명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못해도 평균쯤은 된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 썩 잘 해내며 어느 정도의 열정과 필요 이상의 배려심도 갖춘 사람이다. 내 안에 곯아 있는 상처를 직면하진 못해도 외면하진 않으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진 않아도 속박되지 않는 그 정도의 삶. 나는 그 정도면 내 삶에 충분히, 아주 넉넉하게 만족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연애라고 불릴 만 한 관계에 귀속된 적이 분명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의 객체가 되었으며, 또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가끔 그 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나 가장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의미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로 인해 나의 자존감은 높아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를 만나는 1년 동안 나는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혼자서 꿋꿋하게 잘 살아왔는데 그 아이에게 삶의 반을 내어준 뒤로 나는 절름발이가 된 것처럼 혼자서는 결코 서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곧 시들어 죽어버릴 것처럼 그렇게 위태롭게 연애를 했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 그 일은 아마 나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한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 - 그 날은 우리가 같이 음향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나는 저녁을 과후배들과 함께 먹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고 그 후배들이 남자 녀석들이었기에 그에게 허락을 받았다. 속으로는 가지 말라고, 나랑 밥 먹자고 해주길 바랬고 만약 그랬다면 기다렸다는 듯 약속을 취소할 수 있었지만 그는 아주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홀로 가진 기대감이 초라한 실망이 되는 건 우리 연애에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질투하는 모습이나 관심을 종용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무심하게,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그 옆에서 외롭고 고독했다. 왜 그는 내게 일말의 질투나 관심도 주지 않는 걸까? 그 날도 이런 고민을 하며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그러다 내 손가락이 불판에 닿았고 나는 작은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은 놀랍게도 '아프다'가 아니라 '다행이다'였다.
그렇다. 그 때였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한 순간.
뜨거운 불판에 손가락을 데고 상처를 보자마자 살짝 미소지었던 내 얼굴을 기억한다. 그 미소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게 나는 내 상처가 그의 걱정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라도 그의 관심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정도 상처라면 그가 나를 걱정해주지 않을까? 아니다, 차라리 조금 더 다쳐서 병원에 갔다면 그가 달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나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나는 손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가락 왜 그래? 다쳤어?" 하고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응 좀 데였어. 괜찮아."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수업이 시작함과 동시에 그가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그에게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지 못했고 수업 내내 애꿎은 대일밴드만 만지작거렸지만 그는 먼저 물어봐주지 않았다. 분명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내 손끝을 보았을 텐데도 말이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느끼는 초라함을 모른척하려고 애썼다. 어쩌면 그건 정말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는 자기애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말을 걸었다.
"이것 봐. 나 다쳤어."
퉁명스러운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이 말을 내뱉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무심히 돌아올지도 모르는 반응을 염두해두고도 기어코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행위였으니까. 그건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진 내게 연애에 수반되는 모든 행동들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 때 그의 반응은 아주 차갑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어쩌다 다쳤느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결코 호들갑 떨지 않았고, 불판에 데였다는 말에 '그러게 조심 좀 하지'하고 시선을 이내 거두었다. 그건 마치 '몰랐어? 불판은 당연히 뜨겁잖아. 네가 조심했어야지.’ 하는 말로 들렸고 나는 몰려오는 서운함에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울 수는 없었다. 그러면 그는 또 원치 않게 미안하다는 말을 뱉어야 할 것이고, 우리 사이는 더 어색해질 테니까.
나는 이내 대일밴드를 떼어 버렸다. 그가 걱정하지 않는 상처라면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굳이 왜 떼어내냐고 묻지 않았고 드러난 상처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는지 더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따위 화상이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마음 아픈 것에 비하면 작은 생채기지 뭐.' 하는 자조적인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때 나를 상처낼 수 있는 것은 달궈진 불판도, 나 자신도 아니라 오직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대일밴드를 붙여야 할 곳이 손가락이 아니라는 걸.
그 날 내가 다친 건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이었고, 내가 아픈 건 불판 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몇 달 동안 그와의 헤어짐을 고민한 모든 이유도, 그리고 결국은 헤어진 이유도 같았다.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책망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덤덤한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단지 그때의 내가 원했던 것과 그때의 그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달랐던 것 뿐이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적어도 지금의 나라면 '그러게 조심 좀 하지'라는 그의 말을 그렇게 곡해하진 않았을 텐데.
수 년이 지나 그때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때 느낀 초라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깨달아버린 그 순간 나에게마저 버려져 외로웠을 그 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그 대일밴드 위로 따뜻한 숨을 뱉으며 마음껏 호들갑을 떨어줘야지.
외롭다 느끼지 않게, 네겐 작은 상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