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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Dec 03. 2017

죽음과, 남겨진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에 남겨진


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우리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너에게 소설 중에서『상실의 시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너는 하루키를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도 들어 보았다고 했다. 나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너에게 이 소설을 꼭 읽어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 장까지만 읽어도 이유는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겨우 스무 살에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사인까지 같았다)을 마주한 와타나베는 감히 너라고 말해도 좋았다. 혹자는 삼류 연애소설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 이 소설을 사이에 두고 너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삼류라도, 사류 오류라도 좋았다.


너의 주변에 이 소설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 없었다고 해도, 이 소설을 읽고 너를 떠올리는 내가 나오코나 미도리는 중 어느 인물도 아니라고 해도, 이제 내가 너를 기억하는 일에 와타나베라는 인물이 따라다닐 것 같다. 지금부터 소설과 죽음 이야기를 할 건데, 그러다가 우리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물셋이 되던 해에 죽음에 관해 배웠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애의 죽음과 그 후에 읽은 기즈키의 죽음을 통해. 기즈키라는 인물을 통해 그애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너에게도 이 소설이 죽음에 성숙해지도록, 남겨진 사람들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외로움이다. 기즈키와 그애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대가를 치르지 못해서 죽은 것이었고, 남겨진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쑥불쑥 찾아드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의 부재가 아니었어도 우리는 외로웠을 것이다. 예민한 나는 특히 자주. 


그래도 이 소설을 통해 많이 배웠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하쓰미 씨와 당구를 치던 그날 밤, 나는 첫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즈키를 떠올리지 않았고, 그랬다는 사실이 나로선 적지 않은 충격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기즈키가 죽은 후에 앞으론 당구를 칠 때마다 그 녀석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기즈키를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일로, 나는 뭔가 그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마치 내가 그를 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야.” 그러나 와타나베는 깨닫는다. 기즈키와 “열일곱 살 나이에 공유했던 것 중 어떤 것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건 아무리 한탄해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소설 원작의 일본 영화 <상실의 시대>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내가 너의 동네에 놀러갔을 때 함께 갔었던 김치볶음밥 가게나 조금 걷다보면 나오는 한강공원은 네가 살아있던 그애와 자주 갔던 곳들이었을 거라고 나란히 걸으며 생각했다. 그 밖에도 나는 모르는 너희들만의 기억 속의 장소들이 있을 것이다. 그애가 사라진 날 네가 찾아 헤매던 거리의 수많은 ‘함께 갔던 곳’들이. 한동안 나는 울룰루 사진을 쳐다보지 못했던 적이 있다. 사진을 보면 슬프니까. 하지만 그건 좋았던 추억을 슬프게 박제하는 바보 같은 일이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는 다시 울룰루 사진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하게. 너는 여전히 그 동네에서 살아가야 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 밖에도 “죽음이란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들에는 밑줄을 그어 두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왔다. “우리는 살아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까지 읽고 나는 그 문장을 손바닥에 쥐고 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울룰루



부족한 내가 너를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나와 죽은 자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애는 스물두 살 그대로다. 영원히. 우리는 더 나이를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 사이의 시간들에서 잊는다는 것에 죄책감도 느낄 거고 때로는 미치게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대가를 서로 같이 치렀으면 좋겠다. 공동 명의의 통장이 있는 것처럼. 둘 중 한 사람이 좀더 강할 때에 나머지 한 사람을 지켜주었으면. 불완전한 세계에서 불완전한 네가 외롭지 않도록, 불완전한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남겨진 사람들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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