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에어팟, 그리고 크롬 캐스트
우리 삶에서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값 비싼 것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건에 추억이 덧씌워진 물건일 수도 있다. 다시는 나오지 않을 한정판 무엇이라거나,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거라거나...
이런 소중한 물건들은 그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한 개인에게 있어서 꽤나 많기 마련이니까 조금 더 나아가서 내 삶을 바꾼 물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스갯소리처럼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동차, 에어팟, 그리고 크롬 캐스트가 삶을 바꾼 3대 물건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고는 했다. 그런데 정확히 어째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글로 써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끄적여 본다.
1. 자동차
자동차, 이 것이 삶을 바꾸는 물건이라는 것은 사실 모든 드라이버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언급할 세 가지의 물건 중에서 단연 자동차에 관한 지문이 가장 길 것이다. 내 주변의 드라이버들도 입을 모아 자동차를 사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분리하고는 한다. 독자 분들 중에 자동차가 있는 분들은 이 글에 공감할 수도 있고, 없는 분들이라면 자동차를 사봄직한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때 뚜벅이로도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걷는 것도 좋아했고, 차를 가진 연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난생처음 내가 나고 자란 동네랄 곳을 벗어나서 시내로 나갈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에도 비교적 쾌적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홍대 앞의 미술학원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야 했고, 그때마다 집 앞에 있는 초록버스 한 대를 기다리면 단 15분 만에 홍대입구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 운이 좋게도 대학교도 홍대입구 역과 한 정거장 차이나는 신촌 인근으로 가게 되어서 학교를 다니는 4년 내내 미술학원에 다닐 때 탔던 똑같은 초록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교 이외에 다른 지역을 다닐 때에도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탈 일은 많이 없었고, 이 때문에 면허를 딸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자동차(+면허)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된 것은 바야흐로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입사하게 된 회사의 위치는 다름 아닌 우면동이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동네는 아주 옛날에 뉴스에서 장마로 인해 산사태가 났다고 했던 것 같은 우면산이 자리잡은 서초구의 한적한 동네로, 같은 서울이기는 하지만 우리 집과는 억 년의 거리가 있다..... 이 것은 과장이고,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맥시멈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이동 수단을 바꾸는 것보다는 자취를 고려했었고, 엄마 아빠와 그 일대의 집을 돌아다니며 비싼 전세와 월세에 비해 공간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자취는 잠정적으로 보류되어버렸고 당분간이라도 집에서 회사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회사로 가기 위해서는 출퇴근 시간의 9호선을 타야만 하는데,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9호선은 정말 압사 당하리만치 고통스럽고 어쩔 때는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말 그대로 동작 그만 상태가 되고는 한다. 그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고 나면 9호선에서 4호선에 이르는 족히 50계단은 되는 것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야 하며 다시 돌계단을 올라가고 나면 지금 들어오는 열차가 사당행 열차인지 오이도행 열차인지 확인한 후 (사당행 열차는 사당이 종착역이라서 내가 내려야 하는 역까지 가려면 또다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마침내 종착역에 내린다고 해도 10분마다 배차되는 회사 버스를 지금 뛰어올라가면 간신히 탈 수 있을지 어쩔지를 연신 생각해야 한다. 회사 버스를 타고도 아마 막히는 시간에는 회사까지 20분도 걸렸던 것 같다. 이 것이 나의 고통스러운 출퇴근 길이었고, 사실 몸이 고된 것도 고되지만 고작 10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스트레스받는 나 자신이 싫었다. 우리 회사에는 지각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왜인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좀 쓸모없게 느껴져서 강박적으로 1분 후에 오는 열차나 버스를 잡으려고 숨이 차게 뛰고는 했다.
실제로 이 라이프 사이클을 몇 개월 동안 유지하다가 한 번은 엄마가 차로 회사에 데려다준 적이 있는데, 세상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조수석 의자를 뒤로 끝까지 젖히고 눈을 감고 원하는 음악과 팟캐스트를 비교적 방해 없이 들을 수 있다. (정확히는 엄마의 잔소리가 방해하기는 한다.)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도 1시간 남짓 가량으로, 누가 봐도 나의 고통스러운 출퇴근 길보다는 훨씬 쾌적하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똑같이 1시간이 걸리더라도 9호선에서 낯선 사람들과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빚느니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는 것이 낫다. 무조건 면허를 따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신입사원이 된 첫 해 늦가을쯤 회사를 다니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면허를 땄다. 그러고 나서도 엄마나 아빠의 동승 없이 오롯이 혼자 운전을 하기에는 또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했고, 작년 9월부터는 아예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선 변경을 할 때마다 안 끼워주면 어쩌지, 회사 주차장에서 엄한 외제차를 긁으면 어쩌지 하고 조마조마했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는 태연자약하게 속도를 즐기는 드라이버가 됐다. (운전을 험하게 해서 동승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의 출퇴근 노동 해방에만 기여할 줄 알았던 자동차는 의외로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가장 혁혁한 공은 출퇴근 노동 해방이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을 그다지 거리끼지 않게 되어서 맥북이나 책 같은 것들도 더 자주 갖고 나오고, 마찬가지 맥락에서 크고 무거운 짐들도 이제는 차로 나를 수 있게 되었으며, 차 없이는 엄두도 못 냈던 여주 아웃렛이나 파주 헤이리 마을, 이케아, 남양주 같은 곳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에서도 렌터카를 할 수 있어 이동수단의 선택지가 넓어졌고, 술도 내가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할 때만 마신다. 한두 잔 반주를 하겠다고 대리를 부르기엔 아깝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선루프를 활짝 열고 하늘과 겹쳐진 가로수 잎사귀들과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은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유리창을 보며 혼자 센티하여지고는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크고 작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생긴 후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뜻밖의 장점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음의 세 가지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음악 감상실이 생겼다.
필자는 원래 음악을 일상적으로 삶의 곳곳에 배치하는 자아를 가졌는데, 나만의 자동차를 갖기 전에 음악을 듣는 수단은 이어 팟과 내 방에 있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 이렇게 두 개였다. 이어 팟은 단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고, 블루투스 스피커는 집에 돌아와서 잠에 들기까지 거의 내내 틀어놓고는 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지하철의 안내 방송 소리,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열리는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섞일 수도 있고, 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할 때에는 아무래도 나는 자취를 하지 않다 보니 마음대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으면 아빠에게 구박을 받거나, 혹은 위층에 피해가 될까 봐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 엄마가 나를 데려다 줄 때에는 차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운전에 방해가 되거나 거슬린다는 이유로 엄마가 볼륨을 낮추길 요구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만큼 온전히 크게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좀 달랐다. 내 차는 운이 좋게도 아빠가 사운드 풀옵션을 달아주셨는데, 양 문짝에 스피커가 달려있기 때문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면 우퍼의 묵직한 저음이 온 차 안을 진동케 한다. 신호 대기 상태에서 자동차 천장에 손을 갖다 대 보면 우우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다. 마치 음악을 만지는 느낌이 들어서 흡족하다.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도 자유고, 어차피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음악을 크게 듣는 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도 아니다. 그리고 템포가 빠른 음악과 함께 액셀을 밟는 것은 묘한 해방감마저 가져다준다. 야근 후에 차들이 없는 한적한 도로를 음악과 함께 쌩쌩 달리면 그 날의 억울함도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이다.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해방.
밤늦게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야근의 상황일 수도 있고, 퇴근 후 친구 집에서 늦게 시작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일 수도 있고, 심야 영화를 본 후일 수도 있다. 보통 이럴 때에는 대중교통의 막차도 끊기는 시간이고 혼자 택시를 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는 것이 그다지 탐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택시 기사님들은 좋은 분들도 많으시지만, '만약에', '혹시나' 하는 상황이 언제나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크고 무섭게 느껴지니까. 그리고 기나긴 하루를 보낸 뒤의 귀갓길에서조차 만약 영원히 말을 거는 택시 아저씨를 만나버린다면.. 그 대화 주제가 쾌적한가의 여부는 둘째치고 (남자들에게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직업, 애인 여부, 정치 이야기를 해오신다.. 나는 그런 주제들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정말이지 피곤하다. 여성이 자동차를 갖게 되면 특히 이 점이 무척이나 좋을 것이다.
누군가를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
이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장점이었다. 나는 본디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도,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다. 예전에도 차 있는 친구들은 소수여도 있긴 하니까 몇 번 얻어 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유달리 쾌적하고 고마웠다. 위에서 언급한 혼자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조금 더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거대한 회사 회식 자리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동기와 함께 적당한 기회에 같이 나가서 가는 길에 집 근처에 내려 주었는데 친구와 음악을 들으며 나누는 대화는 즐거웠다. 특히 그 친구도 음악을 몹시 좋아하고 동승자(들)에게 내 플레이리스트의 훌륭함을 인정받는 순간이란 정말 소소한 기쁨이다. 보통 누군가를 데려다주는 상황은 밤이 늦은 상황이기 때문에 의외로 이 상황에서 감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한다. 바깥 가로등만이 간간이 빛을 내고 있는 어둑한 차 안에서 나지막한 음악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으면 친구가 뜻밖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나 또한 얘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말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어떤 대화 상황보다도 진지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나에게 좋아하는 친구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란 귀찮고 피곤한 노동이라기보다 반대로 반갑고 정다운 상호작용이다. 그러므로 아주 피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자동차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물건들, 에어팟과 크롬 캐스트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다음 편에서 마저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