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리소설에 꼭 대단한 반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독후감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미세하게 있습니다.
최근 여자 친구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일강의 죽음]을 봤다. 애거서 크리스티에 반한 우리는 추리소설 전문 독립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으로 달려가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의 책을 찾아보았다. 그때 주인장님이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을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다. 워낙 이전에 추천해 주셨던 소설들이 좋았어서 바로 구매하였다.
로완은 현재 모종의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는 전직 아이 돌보미이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사정을 담은 편지를 써 결백함을 주장한다. 수감되기 전 로완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여행할 때 가봤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다) 외딴 저택에서 4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 지원한다. 높은 급여와 멋진 저택에 반해 일을 시작하지만 여러 가지 꺼림칙한 일들이 발생한다. 둘째 아이 매리와 파출부는 이유 없는 적의를 드러낸다. 남편은 대놓고 성적으로 치근덕 댄다. 최신식으로 개조된 저택은 너무 최신식이라 통제가 안되고 온갖 곳에 CCTV가 붙어있다. 여기에 더해 밤마다 방위에선 누군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나고 자신의 소지품이 사라진다. 주인공은 전 집주인의 딸이 독초를 잘 못 먹고 죽었다는 괴담과 자신 이전 네 명의 아이 돌보미가 급하게 일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점차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유일하게 의지되는 사람은 저택의 일꾼 잭이지만, 그도 의뭉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로완은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을 겪었으며 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상이한 요소들을 잘 버무린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저택에 쌓인 기구한 역사와 유령에 관한 이야기는 악의를 가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고전적인 공포를, 곳곳에 퍼져있는 CCTV와 조작이 어려운 인공지능 집은 첨단 기술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한다. 거기다 이유 없이 적의를 표하는 주변 인물과 반대로 이유 없이 잘해주는 저택 관리인 잭은 책의 긴장감을 더 해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화자가 매력이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로완은 정신적으로 글러먹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존감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물론 로완의 성장환경을 고려하면 그녀의 망가진 성격이 충분히 납득되지만, 화자와 공감이 안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차다리 중간중간 화자를 바꿔서 소설을 진행했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여자 친구는 반전이 너무 허무하여 불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서점 사이트의 후기에도 동일한 이유로 실망한 사람들이 꽤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현실적인 반전이 깔끔했다고 생각한다. 로완의 공포처럼 정말 거대한 음모나 초월적 존재가 등장했으면 오히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