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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Dec 26. 2019

연락이 제일 어려웠어요

오는 사람도 다 쳐내는 극강의 불통인간에 대하여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박민규 - '갑을고시원 체류기' 中


  전역 후에 서대문의 한 옥탑에서 자취를 하다가 양천구로 이사를 왔다. 이삿짐 정리가 얼추 마무리가 되자 군대 동기 중 한 명이 자신이 목동에 산다고 했던 게 떠올라 연락을 했는데, 동기는 굉장히 반갑게 전화를 받아줬다. 그 뒤로 몇 번 동기와 술자리를 가졌고, 동기는 내게 꾸준히 연락을 줬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루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욕을 뱉기는 했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물었다. 언제 한 번은 주말에 만나자는 말에 내가 책을 읽어야 해서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자 친구는 꽤 신박한 욕을 선사했다.


  "평생 책이랑 섹스나 해라"


  그래서 나는 동기와 연을 끊어야겠다는 맘을 먹게 됐고, 그 뒤로는 동기의 안부인사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원래도 미안하다는 말을 낯부끄럽게 생각하는 녀석이라 사과를 하지는 않았지만, 본인도 심다고 생각했는지 어울리지 않게 잘 지내냐는 어색한 카톡을 몇 번 보내왔다. 나는 같잖은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답장을 하지 않았고, 얼마 가지 않아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는데, 나는 차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끼리 파티룸을 빌려 송년회를 열었다. 송년회 당일, 퇴근이 생각보다 일러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되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먼저 연락이 왔다면 못 이기는 척 얼굴이라도 비쳤을 텐데, 올 한 해는 내가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탓에 먼저 전화를 거는 게 너무 염치없는 짓처럼 느껴졌다. 한 해동안 부대꼈던 사람들끼리 추억을 복기하는 자리였으니까, 가더라도 내가 앉아 있을 곳은 없었을 거다.


  일을 할 때도 그렇지만, 살다 보면 좀 귀찮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바로 꼭 말해야 하는 사실인데도 말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사람들이다. 결국 그들의 고집은 일을 크게 만들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만든다. 근데 내가 그렇다. 약속 장소에 늦을 것 같으면 일부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해결될 때까지 조용히 있는다. 선배나 친구가 왜 연락을 안했냐, 왜 말을 안했냐 물으면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합리화하기 바쁘다.


'바빠서 그런 걸 어떡하라고!' 혹은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뭐 이런 생각들.


  근데 누구라고 안 바쁘고, 누구라고 연락하기 안 귀찮을까. 누가 내 인생에서 이 사람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정해준다면 꾸준히 연락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변에 사람들이 하루하루 늘어가면서 '내가 뭐라고 오는 사람을 가려 받겠냐'는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먼저 찾아간 곳이 없다. 누군가 불러주면 가고, 돈을 벌어야 해서 출근하고,  전화가 오니까 받고,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하니까 처음 뵙는 거다.


  몇몇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나의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노력을 쏟지 못하며, 그래서 문득, 사람이 만나고 싶어 졌을 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다른 이들에게 노력을 쏟지 못한 과거의 내가 나의 일을 방해하고, 나밖에 몰라서 연락을 끊어왔던 나는, 나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는, 그런 사람이 돼 있고, 그게 끝없이 반복되고, 나는 아무도 버릴 생각이 없었는데, 모두를 버리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친한 친구라고는 한 명 있는데 그 친구와도 올 한 해 동안 두 번이나 만났을까 싶다. 지금 당장 연락해서 잠을 깨워도 미안하지 않을 사이인데.


  내가 왜 전화를 걸지 못하는 건지, 누가 그 이유를 알려주면 맘이 좀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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