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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Feb 13. 2023

뽀뽀해도 돼?

서툰 고백의 양면성

  우리의 문화는 사랑도 믿고 일도 믿지만, 사랑을 위한 일의 가치는 믿지 않는다. 아직도 낭만적 충동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숙명적으로 끌린다. 연습이라는 생각에 반대하며, 만일 연습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헌신에 대한 약속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한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라고 믿는다.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中


  혹시나 내게 연락을 걸어오지는 않을까 매일 밤 기대하다가, 술 한잔하자고 연락을 걸어오면 전혀 기다리지 않았던 것처럼 덤덤히 알겠다 대답하게 만들던, 그런 누나가 있었다. 다 예뻐 보였지만 특히나 눈이 참 예뻤고, 그럼에도 나를 남자가 아닌 귀여운 동생 보듯 하는 눈빛이 조금 불만이었던, 하지만 툭툭 던지는 말들을 보면 나보다 더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런 눈빛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녀는, 내가 마음을 숨기지 못할 때면 그때마다 서로가 살아온 삶의 길이가 다르다는 걸 강조했는데, 그래서인지 마음을 고백하면 서로의 관계가 완전히 바스라져 이어 붙일 수 없게 될 거라는 불안에 빠지게 만들기도, 동생의 잘못이 네 잘못이다. 친형을 나무라던 아버지 앞에서 9살의 내가 가졌던, 나는 이미 다 컸는데 왜 어린애 취급하지? 라는 과거의 물음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간단히 노래를 부르자며 누나를 포함해 몇몇 사람들과 2차로 노래방을 갔다. 술에 취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가 돼서는 왜인지 누나와 나, 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가, 돌아가는 미러볼을 쳐다봤다가, 손을 어디 두어야할지 몰라 내 허벅지 위에 다소곳이 올려놨다가, 괜히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집을 바래다주겠다며 잠깐의 행복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둘 다 거나하게 술을 마셨던 것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그날만큼은 고백을 하기 전혀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때다 싶었는지 


  "뽀뽀해도 돼?"


  라고 물었던 것 같다. 침침한 조명 때문이었을까? 정말 입술밖에 안 보였고, 그 어떤 허락 없이는 그 입술에 다가서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참 우스운 질문이었지만 다행히 서로의 호흡을 공유하는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서 쭈뼛거리며 내 마음을 전했던 것 같은데, 입술은 닿았지만, 고백은 닿지 않은 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또래의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내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은 아니었다. 연애 소식을 알리는 두 남녀의 모습에서, 서로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보여야 할 충만함이 보이지 않았고, 그 연애가 내가 믿는 -사랑은 피동적이다 라는 신념과 어긋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조금일지 몰라도, 그녀 역시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나를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사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순전히 내 생각이 그랬다는 거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가난을 들먹이며 내게 돈 많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정작 본인은 연애를 하다가도 상대가 돈이 많다는 걸 이유로 헤어지고는 했다. 나이가 들면 너도 알 거다. 가끔은 상대방이 잘 산다는 게 이별의 이유가 되기도 해.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이 잘못된 선택지는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묻어버리는, 너무나도 충만하지만, 과해서 비루한 마음.


  그녀도 내게 서로가 살아온 삶의 길이가 다르다는 얘기를 꾸준히 해왔으니까, 그래서 그러지 않았을까. 너무 투박해서, 건들 수 없었던 건 아닐까. 그저 귀여운 동생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혹시나 말이다. 


  우리는 정제되지 않은 말이나 행동에서 더 쉽게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고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라고 


  비로소 이제야 그 시절의 그녀와 같은 길이의 삶을 살아낸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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