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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Mar 12. 2022

너는 내가 왜 좋아?

사랑을 묻는 말에 담긴 쓸쓸함

  넌 나를 쉽게 다루곤 해. 그러다 결국 나를 울리고 사라져버려……

너는 내게 궁금한 게 없나봐. 나는 그런 네가 밉지도 않아. 그러곤 사라져버려. 또 내가 너를 찾도록.


윤지영 - '네가 좋은 사람일 수는 없을까' 中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아서 고백한 거야?"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나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소문을 통해 들었고,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나의 고백을 기다리는 눈치여서, 그래서 고백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에게 상처만 남을 게 너무 분명해서 같잖은 이유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분명 그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휩쓸려 고백한 꼴이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미련하다면 미련한 고백의 이유. 다만 나는 그때의 나를 아직도 철부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연인 간에 오가는 대화는 대체로 그 의도가 뚜렷하다. 몇 시에 잘 거냐는 물음에는 자기 전에 연락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고, 갑작스럽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면 그 안에는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일단 귀엽다고 해'라는 깊은 속뜻이 담겨 있다. 이런 대화는 서로 규칙을 정해놓지 않았어도, 암묵적 합의하에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원숭이 엉덩이가 빨갛고, 사과가 빨간 것과 같다.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한 정답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출제자 스스로가 그 의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질문에서 발생한다. 어찌 보면 싸우지 않기 위한 답은 분명하지만, 출제자마저도 질문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매우 심오한 질문. 몇가지 예를 들자면 '너는 내가 좋아,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 나한테 고백했어'와 같은 질문들이 있다. 사랑의 출처와 방향을 담고 있는 질문이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바로 상대가  내 어딘가를 맘에 들어 하며, 나를 좋아해서 고백했을 것이라는 걸 기정사실화 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질문을 쓸쓸하다 느끼는 이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질문이 항상 다른 것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과연 나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면, 이미 본인이 모른 체 건너뛰었던 근본적인 불안이 연인의 무관심이라는 양분을 먹고 성숙해져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종종 화가 나서 소리치기보다, 소리치고 싶어 화를 내기도 한다. 오늘 당신이 연인에게 던진 질문에 나는 오히려 물음을 던지고 싶다. 과연 그 질문이 사랑해서 던진 것인지, 사랑하고자 던진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을 묻고자 했던 것인지.


  오늘 연인이 내게 던졌던 질문을 떠올리며 다시금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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