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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Feb 10. 2019

함박눈이 없던 계절

작년의 내게 함박눈 같은 일이 있었던가?

  눈은 엊저녁부터 쉴 새 없이 내렸다. 날이 어두워 쏟아지는 눈송이를 모두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눈은 가로등에 비친 만큼만 주황빛으로 글게 쏟아지고 있었다. 발자국이 발보다 크게 뭉그러지는 날이었고, 내게 닿지 못한 고백들이 눈과 함께 내려앉는 밤이었으며, 눈 쌓인 공터가 더럽혀질까 봐 샛길로 돌아가게 되는 하루였다.


  몇 주 전, 친구와 퇴근하는 길에 올 해의 첫눈을 봤다.


  "눈 정말 안 예쁘다"


  이것마저 눈이라고 부르면 함박눈이 억울해하겠다, 싶을 정도의 눈. 그래도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뿐이지 괜히 울적해질 일은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도 괜히 그랬다. 다시 생각해보면 눈이 쌓이지 않을 게 너무나도 분명해서 아쉬웠던 것 같다. 분명히 내리고는 있는데 아무도 눈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것 같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대신 슬퍼해줬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동네 친구들과 썰매를 타고 싶어서 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내가 즐거워할 모습이 보고 싶어서 나를 일찍 깨웠다. 아들, 눈 엄청 내린다. 그럼 나는 행복한 얼굴로 한참 동안 창문 앞에 서 있었고, 눈 때문에 일을 나가지 못하는 아버지는 내 옆에서 같이 눈을 바라봤다. 그날의 내게 맘 상할 일이  다면, 형의 장갑이 내 장갑보다 눈이 더 잘 뭉쳐지는 장갑이었다는 것, 친구의 포대가 눈밭에서 더 잘 미끄러지는 재질이라는 것쯤이었다. 그렇게 한 두 살 나이를 먹고, 이사를 가고, 자취를 하고, 일을 하면서, 뭔가가 조금씩 변해갔다. 눈은 계속 같은 계절에 내렸지만, 나는 창문 앞에 서있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또 눈이냐며 귀찮다는 듯이 한 마디씩 던졌다. 눈이 들으면 서운할 말을 내뱉으면서도 나름 설레는 마음은 또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왜 나를 속였을까 했는데, 함박눈을 달가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됐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함박눈이 내리지 않으니 염치없이 눈이 그리워졌다. 어쩌면, 함박눈을 좋아했던 그날의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그렇다 할 눈없었다. 눈이라고는 내가 자는 새 내렸던 눈이 응달진 곳에 조금씩 남아있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 퇴근길에 봤던 눈이 더 실망스러웠다. 말은 차갑게 해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작년에는 함박눈이 없었으니까, 올해에는 함박눈이 있길 기대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창문을 바라보던 그날의 나를 떠올릴 수는 있다. 아버지는 내가 함박눈을 바라볼 모습을 기대하며 잠시나마 설렜었고, 나는 어떤 포대가 잘 미끄러질지 고민하며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함박눈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의미 있는 뭔가가 가득 쌓이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눈 대신 내가 슬퍼해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울적했던 건, 힘없이 흩어지는 눈에 변해버린 내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내 하루가 너무 힘없이 흩어져서 그랬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함박눈이 내렸던가, 한번 생각해봤고, 생각해보니 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울적했던 것이다.


  작년의 내게는 함박눈처럼 설레는 일이 있었을까. 설레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하루는 있었을까.

  작년의 나는 함박눈처럼 설레는 삶을 살았을까, 설레는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인 적은 있었을까.


  친구와 봤던 눈은 결국 쌓이지 않았다. 올해의 끝에 내릴 눈은 발목까지 푹 빠지는 함박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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