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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Dec 17. 2018

우울, 채워지지 않는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우울을 견디고 있는가

  가끔 커다란 혓바닥 위에 서 있는 상상을 한다. 앞으로 가도 끝이 없고, 뒤로 가도 끝이 없다. 사실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만히 혓바닥 위에 서 있는 상상 속에서, 내가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두 번째 상상을 한다. 무중력을 느낀다. 떨어지는 엘리베이터는 결국 바닥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지만, 나의 추락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무섭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에 사로잡힌다. 고민해본다. 나는 왜 우울하지. 해소되지 않는 갈증 때문에 답답하고, 쩍쩍 갈라지다가 푹 꺼져버린다. 괜히 울어보고, 텅 비어버린 눈물샘을 어떻게 다시 채울 수 있을고민하다가, 답을 찾지 못해 무너지고, 그 와중에 바닥의 무력감은 나를 갉아먹고, 떼어낼 힘이 없어 가만히 누워있다가, 그런 나를 돌아보니 다시 자책하게 되고, 누운 채로 더 깊이 쓰러지고, 그러다 TV를 본다. 다행히 실소가 터지면, 실소가 텅 비어버린 눈물샘 안에서 공명하고, 우울의 깊이를 다시 깨닫고, 나는 또 울어버린다.


  나의 우울은 대체로 그런 느낌이다. 우울은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 내게 말을 건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럼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나의 감정은 우울이 아니라 게으름의 다른 형태일 거야. 우울의 말에 저항하고자, 나를 한번 돌아다.


  '아니다. 차라리 우울이 낫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변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더 우울해진다.


  친구와 얘기하며 버릇처럼 웃어봤지만,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을 내라는 말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유가 이건가 싶다. 슬픔은 웃음으로 채우는 게 아니구나.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비싼 한약을 지어와도 꾸역꾸역 밥을 챙겨 먹는 건, 우리가 배고픔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자아가 배고픈 상태라는 걸 잊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 집착하고, 일에 집착한다. 집착에 빠진 사람에게서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밟을 곳도 없고, 크게 소리쳐도 울리지 않는 . 뭐라도 잡고 버티고 싶은데 붙들고 있을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떨어져도 죽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죽으려면 숨을 참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은 없다. 그래서 사랑이 구원의 손길을 건네면, 그의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꽉 잡다. 우리는 그렇게 집착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울감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하나씩 품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집착하는 거고, 나는 어디에도 집착할 수 없어 유난히 자주 우울한 거고, 그런 것이다.


  오늘도 불현듯 우울이 찾아왔다. 오늘의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우울을 견디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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