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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Dec 12. 2018

너 은근하게 갈군다?

관심종자들의 최후의 수단 

욕받이[욕바지]

1.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

2. 원만한 교우관계의 희생양.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지 말고 편하게 사세요.


  혜민스님은 타인이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말한다. 그러니 세상을 편하게 살아라, 뭐 그런 얘기인데 정말 맘이 편치 않다. 나는 남들이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 나는 타인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고민을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는 내 말투가 너무 따가워서 가끔 겁이 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스무 살에는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인데, 따박따박 때리고 싶은 말만 골라해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다'의 줄임말인 '미미'가 내 별명이기도 했다. 

  나는 비난을 즐기지는 않지만 항상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천성이 유약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이 잦아 자진해서 가벼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는데, 말에서 오는 상처가 생각보다 아프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면 역할놀이를 한다. 그리고 역할놀이를 하다 보면 그 자리에는 분명히 욕받이가 한 명씩 있다. 그들은 대화의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윤활제 역할을 하고자 나선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항상 어떠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대화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꾸기 위해 욕받이를 찾는다. 

  다행히 지금 상황이 서로의 역할극일 뿐이라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욕받이들도 크게 상처 받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욕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또한 내가 스스로 욕받이를 자처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의 희생에 감사해한다. 그래서 욕받이들은 대화가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비난을 유도하고, 받아들인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면 욕받이는 그걸로 만족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그 역할에 불만을 갖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들이 스스로 자처한 욕받이가 아니기 때문이며, 딜 미터기가 고장 나서 치명타를 날리는 친구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비난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땅히 화낼 타이밍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웃어넘겨야만 한다. 욕받이들은 여린 사람들이다. 웃어넘기지 않으면 진짜 비난의 대상이 될 것만 같아서, 쓴웃음을 지으며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떤 식이든 관심이면 족하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가슴 한편에 상처가 났다. 관심의 방법으로 한없이 가벼워지길 택했지만, 나를 마냥 가볍게 보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누군가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위로의 말에 위로를 받는 것만으로도 내가 너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위로에는 정색하고 비난은 웃어넘겼다. 나도 진중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인기가 많아서 티오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던 것뿐이다.


  시중에서 파는 저렴한 욕받이 처방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표현을 명확히 하라', '잘 보이려 노력하지 마라' 등의 방법이 있다는데, 그들은 상처 받아본 적이 없는 돌팔이가 분명하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스스로 약자가 되는 고귀한 인성에 감탄하지는 못할 망정 어찌 강인한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관심을 갈구하는 방식이 조금 어긋난 구석이 있다. 우리는 단순히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신의 비난을 즐기는 게 아니라, 당신의 모난 관심마저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 상처는 조금 더 벌어졌다. 위로는 필요 없다. 그저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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