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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Dec 12. 2018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위한 의식

Please don't cry no tears now. It's christmas baby.

이제 울지 말아요. 크리스마스잖아요.


sia - snowman


  친구와 12월이 오기 전까지 누가 먼저 연애를 할지 내기를 했다. 나는 11월이 되자마자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먼저 연락했다. 


  "그냥 포기할까?"


  "포기하자." 


  친구의 대답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던 걸 보면, 친구도 올해는 글렀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애초에 내기를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연애세포가 진작에 아사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실패할 걸 알면서 재미로 꺼낸 얘기였지만, 막상 포기하고 나니 공허한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얼마 전부터 외로움이 또 도졌다. 감히 예상해보건대 그 이유 중 8할은 카페에서 자꾸만 캐롤을 틀어주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내기가 문득 떠오른 이유도 그놈의 캐롤 때문이다. 원래 크리스마스 전까지 연인을 사귀기로 내기하려 했던 게 분명한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11월 말까지로 기한을 앞당겨 내기를 했다. 아마 친구와 나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할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했듯이,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기다림'에서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에 유독 커플들이 부러운 이유는 단순히 둘 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올바른 의식을 마쳤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는 함박눈이 내리고 카페 안에는 잔잔한 캐롤이 흘러 다닐 것이다. 따뜻한 커피와 케이크가 앞에 있을 거고, 핸드폰 속 사진첩을 보며 떨어져 있었지만 함께였다 말할 수 있는 세시의 추억을 공유할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네 시를, 세 시의 추억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커플들이 부러운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때까지 좋은 인연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매년 그렇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운명 같은 만남이 있길 바라고 있다. 꿈만 같은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고,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 때 그날의 만남을 곱씹으며 일 년을 돌아보고 싶다. 


네 장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네가 그 꽃을 위해 기울인 시간 때문이야.


  아직 내게는 크리스마스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지독하게 쓸쓸해지는 냄새가 있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소가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게 슬플 뿐이다. 올해도 솔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모든 이들에게 꿈같은 만남이 있길 바란다. 일 년 간 정성 들여 사랑을 가꾸고,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에는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세 시였다 말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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