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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08. 2023

저는 고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김청귤 <해저도시 타코야키>

출판사 도서 제공


재앙의 마지막 순간에 반짝이는 전환이 찾아오리라는 상상은 우리가 위기와 갈등에 꺾이지 않고 타인과 미래를 생각하도록 돕는다.
-264p, 해설
 '미래를 색칠하는 파국과 환상'(심완선)


한국 문학에서 판타지는 여전히 어색하다. 몇몇 스타 작가들이 베스트셀러를 치고 홈런을 하거나 번역서가 주목을 받아 역주행을 하지 않는 이상, 일명 '소설파'라고 할 수 있는 독자나 관계자들도 유독 국내서를 마이너하게 의식하는 것 같다.


소수의 스타 작가들의 명성으로 '장르'가 유지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텐데. 그런 안타까움이 깃든 생각을 해보셨던 분이라면, 판타지 전문 출판 브랜드인 래빗홀의 론칭에 작은 응원을 보태주셨으면 한다. 래빗홀의 첫 책, 김청귤 작가의 <해저도시 타코야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통해 이와 같이 어색한 '장르'로 밀려나는 작품들이 왜 취향 이상의 이슈가 되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누구든 일단 자기 취향의 책을 읽겠지만, 십년 전이었으면 나역시 단호하게 (판타지보다) 스릴러가 더 좋다고 말했겠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될 것 같다. 매년 종잡을 수 없는 날씨도 수년째 모두를 안절부절하게 하는 팬데믹도. 과학이나 환경에 대한 믿을만한 정보, 그마저도 안되면 SF계열의 경고성 디스토피아라도 참고하는 것은 근거없는 낭설과 종족 이기주의에 맞서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문학이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디스토피아를 오락거리 보듯 하는 자세-특정인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 나라의 권세가들을 떠올려보면 등장하는 그런 모습-는 시대착오적이기도 하고 몰지각적이다. 잘 살아 보자던 어르신들이 국력의 포텐을 키웠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면역질환에 시달리는 아기들은 무슨 죄인가.




<해저도시 타코야키>에 수록된 단편들은 바다에 잠긴 미래를 설정했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세에서 또한번 반복되는, 참으로 '인간적'인 아우성을 볼 수 있다. 저자 김청귤은 희망을 상징하는 바다친화적 돌연변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인간들'이 그런 돌연변이들에게 의존하면서도 배타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토록 반성없는 존재들을 어떻게 품고 가야할지, 현타를 선사한다.


돌연변이들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도 감응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인류애를 초월하는 사랑과 희생을 보인다.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그와 같이 존재하지 않을 법한 만물에 대한 사랑과 희생마저도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묻게 된다.


대체 당신들이 문어보다 나은 게 뭐야?


아름다운 작품,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등장하는 판타지를 읽었는데 슬프다. 도시계획자였던 인생목표가 판타지 작가로 바뀌던 시점에 결정적 한 수가 될 책일지도 모르겠다. 설계는 픽션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고래니까!

바닷가재보다 고래가 더 강하잖아요!"

"저는 고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25p, 불가사리


우리는 멸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을 거라 믿었다.

-33p, 불가사리


마른땅이 모두 사라진 건 어른들 탓인데. 하지만 나는 착하니까 "있을 때 잘했어야지!" 하고 말하지 않겠다. -65p, 바다와 함께 춤을


"엄마 마음속에 태풍이 온 거 같아. 잔잔해질 때 돌아올게요." -75p, 바다와 함께 춤을


그러나 이건 생존을 위한 게 아니었다.

순전히 재미를 위한 학살이었다.

-109p, 파라다이스


언니는 엄마가 나를 '저거'라고 한 걸 보상해주겠다는 듯이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171p, 해저도시 배달부


오늘은 오늘일까, 내일일까. 내가 얼마나 잤는지 알수가 없으니 오늘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겠다.

-209p, 해저도시 타코야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빛 혹은 그림자>에도 바다인간 모티브를 공유하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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