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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25. 2023

진짜 백년의 진짜 고독

천명관 <고래>

반드시 큰 거시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354p



첫 페이지 다섯째 줄에서 '그녀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는 문장을 보자마자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으로 순간 이동을 해서 이틀 동안 마콘도와 같은, 평행 우주에 머물다가 온 기분으로 속독하게 된 책이다.   


영화에서 소설로 전향한 작가 천명관이 세상에 내어놓은 지 20년 차에 접어든 <고래>라는 그 시절에도 소설상을 받았다. 아, 그때 읽었더라면.


하지만 <백년의 고독>을 작년에 처음 읽었다. 번역서 싫어증 때문에 원서를 읽으려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팬데믹' 이후로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국어 독서도 재개했다. 민음사 카탈로그와 리딩가이드를 주문하기 위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알베르 카뮈, 버지니아 울프를 초대했다. 울프도 처음이라 디 에센셜을 골랐고, 나머지 두 권은 일부러 비영어권으로 선택했다. 그중 <백년의 고독> 1권이 특히 강렬했다. 아, 진작 읽었더라면.


결과적으로는 독서력이 가장 물이 올랐던 2022년에 <백년의 고독>을 읽고, 그 인풋에 힘입어 아웃풋이 불타오르고 있는 2023년에 <고래>를 읽어서 다행이다. '그때', '진작' 읽었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몰입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오래된 독자들 중에서 그때는 읽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읽힌다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꽤 많을지도.)




물론 크다고 흠이 되는 것이 아니요, 언 년인진 몰라도 틀림없이 입이 찢어지게 신나는 일이 될 것인즉 그것도 의당 축복이라면 축복일 터이지만 하필이면 그 귀한 물건이 쌔고 쌘 사내들 중에 운우지정은커녕 아직 음양지조화도 모르는 반편이에게 돌아간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조물주의 짓궂은 장난이라고밖에 어찌 달리 설명할 수 있겠는가. -30p



<고래>에서 '고래'가 상징하는 것은 내가 상상한 그 고래가 맞았다. 주인공 중 한 명인 국밥집 '노파'가 노처녀 시절에 만난 '고래'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애인, 반편이는 큰 시련을 겪는다. 여기서 <아가씨>의 두 여성 주인공이 잠깐 생각난다.


능청맞게 판소리체로 장문을 군더더기 없이 사용하면서 조선시대인 듯 20세기와 21세기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저자의 글맛은 덤. 한편 박찬욱 감독의 여성서사가 시련을 겪듯이(좋았다는 여성 관객이 거의 없는 <친절한 금자씨>를 지나 결국 해내셨지만) 천명관 작가의 여성서사도 위태로운 구간이 있다. 게다가 20년 전이 아닌가.


지금 이 책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흐름을 탄 이유와 당시에 문학상을 받은 이유는 아주 다를 것으로 예상해 본다. 게다가 부커상은 내가 미는 상이지 않나. 아니, 내가 받고 싶은 상이다.




한국 아저씨들이 20세기에 쓴 책에서 한숨을 쉬게 했던 뉘앙스가 없지는 않다. 언제, 누가 썼든 안 이상하면서도 훌륭한 책도 많다. 가끔 이상한 책이 더 인정받고 잘 팔렸던 게 문제. 천명관 작가도 '한국' 아저씨들의 책을 읽었겠지만 그 문법보다 마르케스에 가깝다. <고래>가 등장할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정보라 작가와 비슷한 리듬감을 선호한다.


판소리체는 가끔 너무 능글맞기도 하지만 나 역시 사설시조와 같은 만연체를 즐겨 쓰다가, 이제 내가 어지러워서 토막 낸다. 어려서 총명한 동시에 내 (보편적) 무지를 몰라서 내 글에서만큼은 문법이나 맞춤법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와 천명관 작가가 내 나이에 쓴 책을 보고 있자니 새삼 존경스럽다.


나는 7줄짜리 문장을 언제 써봤더라?     




그때부터 그녀를 충동질하고 아무 때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게 만드는 그 수상한 바람은, 크고 넓은 것에 무턱으로 매료되는 습관과 더불어 평생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60p



노파의 운명을 전달받을 예정인, 두 번째 주인공 '금복'은 생선장수를 따라간 바다에서 '고래'를 보고, 부두를 장악하는 여장부가 된다. <파친코> 1부와 비스무레한 배경으로, <임꺽정>을 대놓고 패러디한 '걱정'이 생선장수로부터 금복을 데려가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칼자국의 여자가 된다. 가진 것이 힘뿐이었던 걱정이 힘을 잃고 군식구가 되어, 금복은 두 남자와 함께 사는데...


몇 년 후 춘희가 태어났다. 금복의 서사가 화려하지만 춘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존재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사로잡혀 끝없이 방랑하던 금복은 갓 태어난 춘희를 데리고 노파의 국밥집이 있는 평대로 온다.




평대는 가상의 공간이다. 무려 한국전쟁이 있었던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대략 한반도 중남부의 어느 곳이지만 마콘도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사실주의와 판타지를 동시에 취한다.


이것은 허풍이며 소설이 아니라고 반응한 평론가들의 문장은 허풍이며 소설이 아니다. 다섯째 줄에서 마르케스를 감지하고 괜히 궁금해서 해설을 들췄다가 한 줄만 읽고 본문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해설에도 마르케스가 나오는 걸 알게 됐지만, 이런 허풍 같은 평론을 쓴 사람들은 마르케스를 적어도 '재미있게, 진지하게' 읽지는 않은 것 같다.


혹은 주류와 비주류 문학에 대해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도 이 작품이 발표 당시 문학상을 받게 된 정황이 매우 궁금하다.         




그녀는 고래의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들었고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195p


코끼리는 여느 짐승들과 달리 영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서쪽에 있는 한 나라에서는 신으로까지 숭상을 받고 있는 터에 코끼리가 단지 동물이라는 이유로 수송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코끼리를 신으로 모시는 그 나라와 심각한 외교분쟁을 빚을 수도 있을 터인데, 만일 그런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순전히 철도를 관리하는 관청에서 져야 할 거라는 매우 강경한 어조였다. -218p



평대에서 춘희의 새아빠 노릇을 하고 금복의 인생작인 고래극장을 함께 만들게 되는 文과 지난 금복의 은인들이 모여서 대가족을 이룬다. 고래에 사로잡힌 금복이 멀리하는 춘희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코끼리 '점보'도 합류한다. 점보는 큰 거시기를 상징하는 고래의 대응물로, 엄마 금복이 좋아하던 거구의 남자 '걱정'을 비과학적인 이유로 닮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딸 '춘희'에게 심리적인 안식처가 된다.


금복의 서사는 계속된다.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은 별도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춘희의 사연이 시작되는 '사건' 후 본격적으로 춘희가 전면에 등장한다. 노파나 금복의 업보를 아무 이유 없이 물려받은 춘희는 화석처럼 굳게 자리 잡은 고통(445p)을 안고 점보와 개망초가 가득한 꿈을 꾸며 오랜 세월을 버텨낸다. 삼십 대 중반이 훌쩍 넘은 춘희는 벙어리에서 병아리가 되어 드디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춘희의 시점을 통해, 저자는 여성의 눈으로 관찰한 남성의 모습을 다시 남성의 눈으로 관찰한다. 이 해석은 번역을 두 번 해서 원문과 달라진 텍스트를 보는 것 같지만, 적어도 잘못 번역된 문서 이상의 역할은 해냈다. 서술자의 젠더가 특정되지 않았고, 서술자를 무성에 가까운 남성 혹은 남성에 가까운 무성이라고 상정해도 <고래>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그 서술자는 주로 남성성을 풍자한다. 그 남성성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추녀였던 노파가 누구보다 남부럽지 않은 애인을 얻었다. 금복은 재색을 갖추어 세상을  가질  있었지만 결국 오만,  자체가 되어버렸다. 모르게 섬세했던 춘희는 죽을 때까지 성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다만 사랑하는 사람의 욕구 해소 과정을 참아주기만 했다. 노파는 미녀도 갖지 못할 대물을 취했으나 정식으로 사랑받지 못했고, 춘희는 일생의 사랑이라 할만한 인연은 있었으나 쾌락을 느끼기에는 상처가 깊었다. 현생은 로맨스가 아니기에, 해피엔딩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남들이 모르는 각자의 고통을 안고 행복한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것도 쉽게 판단할  없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 속에서 살았다. -526p

 


춘희가 남겨놓은 벽돌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 이야기의 형식으로 <고래>는 전설을 가장한 소설이다.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면, 무엇이 소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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