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소설로 가는 도중 어딘가에서 표류중인
계획이 좀 생길만하면 계획을 뺏겨서 오늘도 세느강을 '지도'로 보면서 멍때린다. 그동안 계획을 잘 지켜왔다는 사실과 그래서 앞으로 잘 지킨다는 가능성은 별개다. 무엇보다도 나는 일단 아기호랑이를 그리고 보는 스타일이다.
호랑이 엉덩이만 그리느니, 작아도 완성된 개체를 그리고 싶다. 뭐 하나를 끝내주게 잘해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말 궁금한 건 이미 알고 있거나, 찾는 방법을 안다. 그러므로 내게는 로봇과의 대화가 지적 소통이 될 수 없다. 대신 찾아주는 역할을 맡아 초인적인 속도로 일처리를 해도 뉘앙스를 모르면 말짱 꽝이다. 무엇이든 물어볼만한 집단지성은 초록창인데 이미 아는 대답을 내놓는다.
로봇의 언어는 문법보다 맥락이 특히 거슬린다. 내가 '잘난 척 좀 하지마.'라고 말했던 순간 넌 안녕이다. 저게 인격체라면 그마저도 (내 체면 때문에) 못했겠지. 인간 전반은 이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 경험이 많다고 현명하지 않다. 기억력이 좋고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정답과 조합된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지 않는다. 인간이나,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이야 사용하기 나름인데 그 나름은 누가 만드는 걸까? 설마 부모님은 아니겠지. 환경은 당연히 중요하다. 가진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려서 그렇지.
고마운 것이었는데도 그 정도는 가졌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황했다. 항상 더 가진 사람들과 비교했고, 더 가진 사람조차 얼어붙게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나를 누군가가 남몰래 싫어하는 것까지 신경이 쓰인다. 난 완벽하지만, 넌 나를 사랑해야지. (완벽을 유지하는 것도 힘든데, 미움받을 기력이 어디있겠니?) 생각만해도 피곤한 그게 내 천성이다. 피곤을 부르는 천성.
팬데믹은 파리를 뺏어간 대신, 서재의 재건을 도왔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칼로리 소모가 매우 컸던, 춤을 제외하면 책을 사들이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춤에 여가시간을 많이 투입했을 당시에는 다른 창작활동은 꿈도 못 꾸었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거나 낮에 외출할 핑계로 책을 사러 다녔을 뿐 산 책을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를 11년 동안 묵혔다.
온라인 서점 다이아몬드를 달았을 때부터 책쇼핑에도 한도를 두고 자제해야 했다. 구입보다는 구경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책이 쌓이고 매번 책에게 공간을 내준다. 팬데믹 이후로는 책 들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운동인데 너무 큰 책을 사면 많이 못 걸을까봐 그런 책은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영어와 글쓰기는 10년 전의 계획에도 있었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영어와 소설쓰기 사이의 어딘가에서 꾸준히 표류하고 있다. 그동안 영어와 소설에 끊임없이 불을 붙이려 했고, 종종 다른 욕구가 폭주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영어 리부트 기간(2017-2019)을 거쳐 팬데믹 초기에 영어를 레벨업하고, 책스타그램으로 발을 넓히다 모국어로 복귀했을 때 독서근육이 부실했는데 그렇다고 어디가서 말싸움에 지지도 않았다.
아, 그래서 글쓰기를 영어로부터 독립시켰다. 영어블로그를 하다가 지치기도 했지만 아웃풋 욕구를 다양하게 충족시켜야 했다. 영어책을 열심히 읽는 동안 미루어 둔, 다른 언어로 쓰였지만 번역된 책들을 읽고, 인풋도 묘하게 바빠졌다. 온라인 친구들의 길고 짧은 이야기를 따라잡으려다 보니,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던 '독서'에도 결심이 필요했다. 최근 3년 동안 매일, '읽는' 계획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읽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읽는' 계획, 특히 주간 서평이 포함된 큰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에 '읽긴' 읽는다.
독립한 글쓰기는 자기만의 계획이 또 생겼다. 약 1년 동안, 한 달에 20편씩 새 글을 썼고(서평 반, 여행기 반) 그리 모아둔 덕분에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는 동안 기존 발행 글을 조금씩 손질해서 다시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블로그가 중심이라면 같은 콘텐츠를 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 블로그는 (방치된 상태지만) 영어가 메인이라 서평을 제외한 인스타, 브런치발 냅킨에세이는 공유하지 않는다. 아웃풋 욕구가 넘쳐서 초창기 냅킨에세이는 블로그에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블로그의 노출 시스템—정보 공유, 제품 리뷰 등이 강세이며, 나의 주력은 고급 영어—이 에세이와 안 맞아서 인스타로 복귀했다.
계속 재발행하는 글은 인스타에서 먼저 발행했거나, 인스타 버전을 요약할 목적으로 브런치에 선공개하는 글이다. 예전에는 서평을 블로그에서 쓰고 인스타 버전으로 요약했는데, 그러다 서평이 3만자가 넘어가고(인용문 포함, 인스타 분량의 15배) 서평 못쓰는 병에 걸렸다. 서평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몸져눕거나 쓸 엄두를 못냈던 것이다. 가끔 쓰는 여행기와 영화평도 길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런 장문의 포스팅은 오래 간다. 특히 '마이애미 여행기'는 해당 주제를 '가장 잘' 쓰겠다는 목표로 작성했다.
가장 큰 슬럼프—서평 못 쓰는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인스타 덕분이었다. 갓생열풍이 꺼지고 자기돌봄이 유행하면서(유행이라서 하지는 말고, 근데 해야하긴 한다.) 인스타 포스팅 억지로 하지 말라는 주장이 종종 보인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뭐든 억지로는 하지 못하는 지병이 있지만 블로그 글쓰기에 슬럼프가 왔을 때 인스타에 의존했다. 사진이 예쁘거나, 사진 속에 정보를 담거나, 그렇게만 해도 되니까. 그래서 인스타였는데....지금은 블로그만큼 공을 들여야 그나마 최소한의 관심을 받는다. 코로나와 폭풍독서가 지나간 1년 전, 썰욕구를 못참고 인스타에 냅킨에세이를 썼다.
그게 선견지명이 됐다.
서평이 아닌 산책에세이와 미국 여행기를 2천자 이상 쓰다가, '다음편에 계속'으로 맺고 연재물을 급시작했다. 그게 작년 5월 중순이었다. 서평 다음에 돌아오는 여행사진 캡션을 쓰다가, 'too long' 경고를 받고, 그 다음 주에 이어서 썼는데 또 'too long' 경고를 받았다. 워싱턴과 애틀랜타로 시작한 그 글은 한동안 묵혀두었고 여름에는 8부작 짐바브웨 여행기를 썼다. 미국여행을 더 잘쓰고 싶어서, 미국여행철인 가을에 쓰려고 아껴둘 겸, 여름에 써야 더 좋은 짐바브웨 여행을 쓰면서 연재물 트레이닝을 했다.
애틀랜타발 버스가 도착한 뉴올리언스로 돌아갔는데 4편에 걸친 대서사시가 됐고, 그 로드트립 다음에 어쩔수없이 메인코스인 시카고로 돌아갔다. 휴스턴발 비행기가 도착한 10월의 시카고가 아닌, 인천발 비행기가 도착한 9월의 시카고. 일부는 블로그애도 썼지만, 애틀랜타 셀피로 시작한 이 글의 감성은 그게 아니다. 핫플 투어라기 보다는 끝없는 미국 산책, 방랑에 가까운 전국투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