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유튜버가 꿈이었을 때

회사는 모든 것을 가져가고 꼬리 하나를 내주었지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인스타그램 7주년을 지나 8년차에 돌입했다. 감당할 수 없는 관심까지는 아니었으나 숫자로 사람/브랜드를 판단하는 이 세계에서 치이지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플을 설치하고 약 2년 동안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1. 시간이 없었고 2. 보여줄 셀피나 음식조차 (찍을 시간이) 없었고 3. 보여줄 만한 창작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음에도 현생에 치였기 때문.


같은 이야기인가?


왜 현생이 그렇게 치열했어야만 했던 걸까? 그때까지 나는 직장 생활이나 공들인 어떤 활동의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이 있다면)을 넘겨본 적이 극히 드물었고, 마이너스의 마이너스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보니(지금이 더 심하지만 그땐 배짱이 없었고) 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 기회가 생기기 직전에는 생활고 이상으로 사람의 피를 말리는 '성장 지연' 문제가 있었다.


취미생활과 몇번의 업종변경 덕분에 넓고 얕은 친분은 있었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고밀도의, 크리에이티브한(!) 인간관계에 갈망을 느꼈다. 회사는 해를 넘어 다녀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마도 회사를 오래 다녔으면 고인물 싫어증이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통하는, 지금 여기 내가 관심있는 것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직 인스타그램의 존재조차 몰랐다.


잠깐 성공한 계획덕후


새로운 공연팀과 축제 기획단에 합류한 이후 다시 사람을 만나는 활동이 즐거워졌다. 빼곡한 오프라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평일에는 잘 시간도 부족해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1년 넘게 걸렸다. (이건 또 다른 챕터에서 계속 될 예정) 그 해 처음으로 날짜가 미리 적혀있는(!) 플래너를 12월까지 썼다. 그 전까지는 최대 6개월이었다. 기록을 자꾸 놓치고, 허구헌날 과외시간을 바꾸는 아이들 때문에 시간표가 자꾸 지저분해지고 그런 내 현실에 질려서.


가장 바쁜 시간들이 지나간 후에는 악독한 시간들이 있었고, 아직도 회사에 적응해보겠다는 무모한 욕망을 버리지 못해 스펙만 보고 '인성은 별로일' 사람으로 취급하는 취업시장을 전전했다. 아니, 얼굴을 봐도 내가 도도할 것 같았으면 사진을 보고 탈락시키던가. 그것도 이십 대에 많이 겪어서 그리 놀랍진 않았다. 새로 찍은 증명 사진을 한 장 밖에 쓰지 못해서 아까웠을 뿐. 다음 해에는 여권 사진을 좀더 순한 버전으로 다시 찍었다.


취업모드에서 여행모드로


그러니까 채 10개월이 안되는 동안 취업모드에서 여행모드로 급전환을 했다. 그 사이에 1. 조직생활에 완전히 적응해봤고 2. 이게 헛짓거리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3. 인생경험이 되었고 4. 손익분기점을 거의 처음으로 넘어봤다. 퇴사 다음달 티켓팅, 그로부터 보름 후 여권 재발급, 여행을 반년 남기고 세상바쁜 백수놀이를 했다. 취업이 너어어어무 하기 싫어서 간신히 월세가 나오는 파트타이머를 두어달 하면서 보부상을 시작했다. 집꾸미기와 창업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다.


지금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낡은 주상복합 원룸 아파트는 거창하게 꾸미지도 못했지만 힘 닿는데 까지 해보고 약간 좌절했고 약간의 성취감과 약간의 사진을 확보했다. 나름 포부가 있었으나 그냥 내 공간을 더 쾌적하게 만드는 과정이었고 아직 큰 그림은 나도 몰랐다. 예매한 항공권의 날짜가 다가왔다.




댈러스로 순간 이동 :)


중간과정은 일단 생략한다. 인스타그램이 응접실이자 쇼룸이 된 7년의 과정과 앞으로의 미래를 말하려다, 그 7년을 시작하기 위해 지옥에서 (항상 불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허우적거렸던 2년을 돌이켜보니 잠깐 슬퍼졌다. 다시 7년 전에서 7개월이 지났던 시점, 6년 5개월 전으로 돌아가자.


A항공의 나름 특가 항공권을 득템해서 댈러스 경유 뉴욕행을 탔다. 시차때문에 14시간 이상 비행을 해도 1-2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 여행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국제선 여객기가 도쿄에서 임시 착륙 후 한참이나 수리를 하는 통에 뉴욕 가는 저녁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댈러스에서 계획에 없던 1박 2일을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동북아를 벗어나서 도착한 곳은 댈러스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말문이 막혀서 호텔 버스를 내놓으라고 바디랭귀지를 하면서 멘붕이 왔고 그럼에도 버스를 잘 탔고 그 후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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