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블로거와 산책에세이

계획적 에세이 쓰기의 코어는?

사전에 가까운 영어 포스팅도 120편 이상, 그중 110편은 매일, 연속해서 작성해 봤다. 썸네일은 <오늘의 문장>이라고 말하는 그 시리즈는 미국 대학원 입시영어 GRE에 포함된 어휘, 중에서 토플 이상의 레벨만 선정한 어휘의 예문과 해설이다. 어휘 중심이고 알파벳 순이라 사전이라 부르지만, 예문이 불러오는 스토리와 연관된 작가, 예술가는 물론 미드와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당연히 미국여행도 소환되고, 여행기에서 생략한 썰도 상당수 포함된다. 특히 여행썰은 여행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부터 <오늘의 문장>을 썼기 때문에 오히려 영어사전이 여행기를 촉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영어블로그에 매진했던 게 2년 전이고, 나의 블로깅은 부산여행에서 절정을 맞고 동면에 들어갔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영어포스팅을 쓰다 보니, 정작 쓰고 싶었던 여행기를 자주 쓰지는 못해 워케이션을 갔는데, 잠이 안 오는 틈을 타서 여행기간의 반 이상을 블로깅만 하다 보니, 여행 후에 번아웃이 왔다. 비가 와서, 약간의 혼술과 약간의 산책을 제외하면 방안에 머무르는 게 좋았고, 또 언제 파도소리 들으며 글쓰기를 해보겠냐며 마이애미를 회상했다.


여행직후, 바캉스 후유증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불면증이 계속됐고 셀프-블챌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포스팅의 글자수는 늘어났지만 주기가 길어졌다. 가끔 길게 쓰거나, 하나의 글을 며칠에 걸쳐서 쓰는 것도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매일 쓰는 루틴에 대한 갈증과 의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루틴은 성취감을 주니까 성취감에 대한 욕망일지도.




그 무렵 영어사전을 쓰던 루틴에서 체계가 시작된 것 같다. 인스타 플래닝을 언제 시작했는지 되돌아보려고 메모장을 스크롤했더니 그 무렵의 계획욕구가 흘러넘친다. 그러니까, 9월 초에 부산여행을 다녀왔고 복귀 이후 매일 쓰지 않았지만 추석연휴 스터디카페에 둥지를 틀고 당시로는 2년 전의 추석여행기를 몰아 썼다. 그러는 동안 인스타를 점점 조였다. 서평을 인스타에도 잘 쓰는 법을 연습했고 인스타라는 채널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독서기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그 해 연말부터 인스타 플래닝을 했고 연말 독서결산으로 소위 '떡상'도 경험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년은 인스타의 해, 였다.


계획적인 인스타 1일 1포는 미접종자 격리, 접종직후 격리, 그럼에도 감염, 이라는 고비를 거쳐 정확히 매일은 아닐지라도 한동안 페이스를 유지했다. 인스타 기록습관 덕분에 독서가 탄력을 받아 2일 1책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어책, 그것도 고전을 연속으로 매주 클리어했다. 그 후로 영어책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하도 오래 안 읽었더니 근질근질해서 셜록 홈즈 단편을 읽었다. 읽다만 해리포터와 파친코는 어쩐지 승부욕이 안 생겨서, 조금 어렵지만 재미있는 걸 읽기로 했다. 홈즈를 며칠 읽다가 코스모스 읽어야지.




그 1년 전 폭풍 독서의 결과는 풍성한 냅킨에세이로 이어졌다. 이틀에 한 번, 2천 자를 꽉 채운 서평을 쓰면서 서평을 안 쓰는 날에는 산책에세이를 점점 길게 썼다. 어느덧 연재물이 된 산책에세이는 여름 내내 계속되었고, 추석연휴쯤 완전히 자리 잡았다. 다시 추석이라, 다시 추석부터 시작하는 그 에세이로 브런치북 공모전을 준비했다. 공모전의 좋은 점은 응모를 하는 그 순간 '책'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모든 이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그 원고의 80%를 최근에 다시 편집했는데, 당시에도 먼저 써두고 후반작업을 여러 번 거친 원고들이 지금은 또 여러 번 수정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럴까 봐 연재물을 못쓰고 이십 년 가까이 조각글만 썼는데, 최근 1년 동안 5만 자를 훌쩍 넘는 브런치북 두 권을 엮었다. 공모전 한 달은 완전 달렸고, 현생의 다른 문제로 바빴지만 틈틈이 다음 책을 준비해서 연말부터 갓생모드를 재개했다. 그러니까, 오리지널 갓생 1주년 무렵에 진화된 갓생이 시작됐다.


인스타 길들이기를 유지하면서 두 번째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다음 기획들을 활성화시켰다. 하던 것을 계속해서 조회수를 뽑을 수 있지만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하기 싫다. 내 계획은 원래 있었는데 로직의 눈치를 봐야 해? 신경은 쓰이지만 어느 시점 이후로는 내 계획이 나를 완전히 장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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