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숙한 초딩의 과학소녀 프로젝트 이야기
그림그리기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천재였음(?)을 잊어갈 무렵 과학의 달 4월에 과학경시대회 학교 대표가 되었다. 나는 '과학'을 사랑한 것일까, 과학을 잘 하는 '나'를 사랑한 것일까? 유년기의 장래희망도 돌고 돌아 한번씩 뒷목 잡게 찾아오긴 했다. 그러나 믿을 것은 과학 뿐이었던, 아니 그보다도 과학처럼 멋있는 것을 어느 정도는 잘 할 수 있어야 천재가 아닌 삶도 용납이 될 것 같았다. 당시에는 천재가 아님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과학만을 잘 하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기 바란 것은 아니다. 나는 수채화에 감을 못 잡고 문화샌터에서 데셍과 크로키를 배우다 마침내 특별활동 으로 '회화부'를 선택했다. 그 해 내내 특활시간에는 몬드리안처럼 구성만 했고, 그 엉성한 무한반복의 힘으로 구성의 '신'을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작품은 디즈니의 <백설공주> 모작이기도 한 팝아트(?)였다. 내 디즈니 사랑의 코어는 다람쥐—또는 그냥 쥐—라는 것을 최근에 <신데렐라> 3부작을 보면서 깨달았지만, 징글징글한 해피엔딩이 여전히 찡한 이유가 무얼까 궁금해하면서. 포스터용 물감으로 <백설공주> 모작을 그리던 시절에는 공주만화, 순정만화를 좋아했지만 대외적으로는 가요 프로그램이나 가수들의 패션을 좋아했다. 덕후들이 당당하지 못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덕후들 축에도 들지 못했다.
내가 나름 공들여 구현하고 있던 '미래 과학자'라는 캐릭터는 공주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것이 대외적인 이미지였다. 돌아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순간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실제 취향 사이에 더 많은 허영심을 끼워넣고 살았다. 지금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폴리아모리라서 비혼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당연히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걸 알아들은 그 친구가 더 신기했다. 내가 설명을 잘했나? 왠지 모두가 미숙해보이는 한국 나이 말고, 대략 생일이 지나서 막 12살이 된 6학년 소녀들의 대화였다.
한 명은 '내가 결혼은 안한다고 **을 안하겠니?'라고 말하고 다른 한 명은 '그래, 너는 그러겠지.'라고 말한다. 툭하면 청혼자가 나타나는 나폴리 4부작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지 않나? 심지어 그 시절 나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무한반복한 편지를 받고 쌍욕을 한 적이 있다. 누구 허락을 받고 날 사랑하고 난리람? 난 내가 좋아하는 애들 관찰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조숙한 여사친들과 크게 싸우지 않으면서 과학 성적을 유지하면서 수학 심화반 수업을 추가로 듣고, 진짜 하교를 하면 그림도 그리고 TV도 보고 게임도 해야 하는데.
그 시절부터 대학교 저학년까지 연결되는 약 8년 동안의 이미지 만들기는 사실, 고정관념 깨기에 가까운 브랜딩이었을 것이다. 비공식적인 내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 모범생으로 보일 것'이다.
한국 청소년들은 나름 모범생들에 대한 존중이—적어도 그 시절에는—있었지만 그럼에도 모범생이긴 싫었다. 모범생이었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갈 곳은 옥상 뿐인 세상이지 않았나. 극장에 가면 학생할인을 받으려고 학생증을 내밀고 언니들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영화를 봤다. 어쩌면 앞이 보이지 않는—누군가가 대신 계획해주고 먼저 모범을 보인, 둘째로 태어난 이들이나 학자 집안의 자녀들과 다르게—그러나 반쯤은 강요된 공부라는 진로에서도 언제든 굴러떨어질 준비를 부지불식간에 본능적으로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 '예비 개천용'님은 과학고에 떨어졌다고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잠깐 공부에 흥미가 떨어져서 갑자기 체대타령을 했을 뿐.
어렵게 어렵게 마음붙일 곳을 찾았다. 아니, 마음을 어딘가에 조금만 붙이고 내면세계로 파고들었을지 모른다. 동기가 확인되지 않은 행동이 많다.
청소년기 허영심은 성적에 대한 불안보다 크다.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모범생이 될까봐 두려운 것, 은 아주 조금이었고 대부분은 잘 나가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제로 잘 나갈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잘 나가는 아이들이 만만하게 볼만큼 순진하거나 순진해보이고 싶지 않았다.
한편 지금은 1도 관심없는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나의 이십대를 홀랑 가져가버린 관능적인 음악을 이미 좋아했고, 그런 음악과 잘 어울리는 옷은 더 좋아했다. 한번 TV에 뺏긴 시선은 책으로 돌아오기 어려웠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사극 덕후였기에 노는 척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대하드라마 원작소설 도장깨기를 했다. 이 책들이 집에 그냥 있어주셨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자 특권—이기도 했고 동시에 슬픔이기도 했지만—이었는지 그땐 잘 몰랐다. 책은 많아도, 책이 많기에 그 안에서 고르되 그 안에 없으면... 그래서 제인 오스틴보다 키이라 나이틀리를 먼저 알게 됐다.
아직도 대외적으로는 '미래 과학자'였지만—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프로필이었을까? 과학 집착은 더 일찍 시작됐고 그 심리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실제로는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 K-pop 아이돌 지망생이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