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하는 사람에서 벤치마킹 당하는 사람을 목표로
여성 예술가가 브랜드는 커녕 어딘가에 끼워팔기조차 안 되던 시대에 태어났다. 창의적 활동 중에서 흥미를 가졌던 분야에서 재능 또는 재력 부족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기에는 근성이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국영수를 너무 잘 했다. 가정 형편은 한 마디로 똑 떨어지지 않는다. 남의 집이라고 쉽게 재단하고 싶지 않지만 내게 좌절을 안겨준 몇몇 사건을 종합해보면 나만큼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들 중 대부분은 형편이 좋았다. 딱 한 명, 지금은 많이 미안한 친구가 반대의 경우다. 머리는 더 좋고, 형편은 훨씬 나빠서 아주 곤란한 처지였던 걸 어린 나는 몰랐다. 내 코가 석 자였고, 내가 좀 둔했던 시절에 만난 그 아이는 너무 조숙했다. 딱 나폴리 4부작의 '릴라' 같은 아이였다. 소문에 따르면 영재로 픽업이 됐다던데, 그 소문이 내 근처에 와서 편집된 건지 오는 길이 험난했던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책으로 세계를 넓혀야 했기에, 세계 위인과 한국 위인 중에서 '모성애'가 부각되지 않는 유일한 여성이었던 마리 퀴리를 벤치마킹했다. 그마저도 그 시절엔 마리가 아닌 마담 퀴리로만 불렸다. (한편 100전 전 라울 뒤피의 그림에는 '마리 퀴리'로 표기되어 있다.) 물론 남자 위인 중에도 능력만 보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닮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젠더가 걸림돌이 될 만큼 남성들의 전유물인 영역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누굴 닮고 싶었는지 기억을 훑어보면 아인슈타인은 아니다. 베토벤도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지금도 아인슈타인과 베토벤이 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보다도 이단이거나 괴팍해서가 아니다. 헤어스타일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런 헤어스타일을 허락한(?) 장본인, 그러니까 사회적 시선과 그에 맞설 수 있는 특권 같은 것들이 있다. 정신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이나 베토벤보다는 석가모니를 닮고 싶었는데 이 분도 헤어스타일이 문제다. 농담이 아니다. 이건 거대한 장벽이다. 모범생이 되기 싫은 14세 소녀에게 이보다 더한 장벽이 어디있을까?
마치 헤어스타일 따위를 신경쓰면 절대로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하는 듯한 위인들의 초상화는 잘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고 책을 읽던 소녀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더 어렸을 때는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었지만 빠른 사춘기 이후,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는 습관이 생겼다. 주변의 어른 중에서 멋있는 사람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인간 관계가 뻔한 어린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은 아이돌 가수였다.
틈새를 공략하면 길이 뚫린다.
진리는 아니고, 노력과 운이 시너지를 내야 한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명품이나 플렉스를 싫어하지만 인간 아이콘 브랜드인 코코 샤넬을 발견해서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됐다. 아이돌 잡지에서 패션 잡지로 이행하던 시기에 샤넬이 롤모델이 됐고, 명품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었다.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고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욕망들이 시너지를 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욕망들 사이에 미묘한 승패가 갈려서 당사자인 나는 의문의 1패를 했다. 원하는 학교의 원하는 학과(단과대학)를 지원할 수 없었고 학교와 전공을 갑자기 바꿔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어르신들 덕분에 학비도 아끼고 모두가 행복했다고 치자. 내 이름이 새겨진 아름다운 케이스에 내가 만든 제품, 특히 분자구조가 복잡하고 색깔이 아름다운 재료들의 팔레트 같은 것이 들어가기를 원했다. 어린 시절 내가 본 샤넬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고, 결과적으로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어려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원했던 전공과 가장 비슷한 학과에 진입했고, 알고보니 빡빡한 '가지 않은' 길 대신, 다른 공부를 다양하게 했다.) 하지만 인간 아이콘 브랜드가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 먼 길을 돌아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화장품 회사 경영이나 연구개발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인간 아이콘 브랜드가 되고 싶었던 거다. 남편 성이 아닌 (아빠 성이긴 하지만) 내 성으로 노벨상을 받던지, 회사를 차리던지 아이돌이 되던지. 시간이 지나고 그나마 가능성이 남아있던 '회사 차리기'는 나름 계속 진행중(!)이지만 브랜딩까지 어찌어찌 한다 해도 경영이 문제였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 경영이라는 분야에 운과 노력을 올인해 성공할 확률은 자기 분야가 확고한 이의 노벨상 수상보다 희박하다.
실패는 두렵지 않다.
이미 그 실패의 한가운데에 있으니까. 실패를 겪는 과정에서 롤모델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과학소녀의 볼드모트였던 월트 디즈니는 서른이 넘어 스토리텔링의 대가로 이정표가 됐다. 잘 하면 비슷해질 수도 있는 '하이틴 스타' 사라 미셸 갤러(2000년대)와 블레어 월도프(2010년대)를 벤치마킹했다. 캐릭터나 실제 배우가 35세 이상인 진짜 멋진 언니도 많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이제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 아이콘인 예술가 언니, 오빠들 중에서 인품과 브랜딩의 모범이 되는 분들이 많다.
한편 미묘하게 내가 더 부러움을 느끼는 작가나 예술가는 대체로 90년대생이다. 젊음이나 성장환경이 부럽지는 않다. 그러면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이 더 부러워야 하는데 그것도 잠깐이었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또래 집단에게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왠지 쿨할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남의 떡 문제일 수도.
멋진 언니, 오빠들은 자신의 시그니처를 10년 이상 갈고 닦았거나 그에 준하는 폭넓은 활동을 했다. 그들을 존경하지만 부럽진 않다. 그들은 응당 인정받을 만한 경력을 쌓았다. 나는 경력을 스스로 파괴했기에 부러워할 자격이 없고,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그 활동을 꾸준하게 못했을 뿐 다른 모든 것을 했기에 미련이 없다. 영어 림보에 10년쯤 갇혀있었을 때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부러웠지만 사고와 소통의 넓이에서 바이링구얼이나 멀티링구얼을 따라올 자가 없다. 그들이 나를 부러워하는게 맞다. 미국에 대해 하도 뒷조사를 하다보니, 난 어차피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끝났을 운명이다. 그러므로 이번 생이 행운폭탄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모국어도 못 뗐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