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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Jun 25. 2023

아직 갓생 못 살던 예비 산책덕후의 루틴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가 대신 산책해주던 시절

인생이라는 거대한 은유 속에서 내 육신을 빌어 밥벌이를 하는 사람과 내 영혼을 빌어 덕질을 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한동안 삶의 질을 위한 일정량의 재물 투자와 일정기간의 systemizing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가상현실과 현실현실이 공존하는 이 세계에서 육신을 지속하기 위한 행위는 먹고 (치우고) 자는 것으로 충분한 날이 많은데, 실은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운 날이 대부분이다.


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일단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생존인가 덕질인가) 정신력이 조금 괜찮을 때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하고 (혹시 당신도 4개의 음절로 된 글자를 타이핑할때 두번째와 세번째 자음이 뒤섞이시나요? 실제로 책과 브런치스토리에서 많이 발견하는 오타의 사례이자, 부지런히를 부리전히, 라고 쓰고 놀랐던 사람의 호기심) 있는 힘껏 집중력을 쥐어짰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 탈진할까봐 사소한 잡무(주로 독서계획류)는 생각나는 대로 처리하고, 밥을 시키고 밥을 기다리면서 남아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고(가장 아름다운 사례는 국내서를 읽는 것이지만 주로 이 시간에는 밥먹을 때 볼 미드를 켜놓고 리마인드 하거나 인스타에 들어오는 편)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잠시 숨을 돌린 후) 상을 치우고, 남은 에너지로 소화를 시키면서 눈을 계속 뜨고 있을지, 를 잠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생각'이 가끔 너무 길어져서 하루종일 생각한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뒤적거리기(어딘가에서 끝없는 스크롤)만 하는 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끝없는 생각에 빠져들기 전에 중요한 일을 해야하고, 항상 넥스트 레벨을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은 점점 많아지거나 빨라지고, 그 중요한 일도 알고보면 끝없는 (아마도 내 능력보다 살짝 벅찬) 계획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중요한 일이 끝나서 쉬는 게 아니라, 더이상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는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야 쉬는 것이다.


그 쉬는 시간은 대체로 진짜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밥을 먹기 전 또 다른 중요한 일을 할지, 밥을 기다리면서 조금 가벼운 일을 할지를 결정(이 빠를수록 좋지만 정말 오래걸리는 날도 있고)하는 시간이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아침(이 아닌 날이 더 많지만 기상 직후)에 세수를 하고 커피를 내려서 커피향을 신호삼아 독서하는 '하루의 시작'을 가급적 고수하려고 (다른 말로 데일리루틴, 또는 모닝루틴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식사 스케줄을 적어놓지 않으면 먹는 행위마저 자꾸 잊어버린다.


물론 자는 행위도. 그래서 대체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종일 책(또는 덕질하는 무언가) 속에 파묻힐 생각을 하는 날이면 먹고 자는 행위는 콤보가 되어 저 멀리 잊혀져 있고 정말 도저히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라는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먹고, 남은 에너지를 모아서 잘 준비를 한다. 생각해보니 잘 준비를 하는 행위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이것은 수면의 질, 결국 삶의 질과 직결되는 행위이므로. 불면증과 대상포진의 시너지로 잠을 못자면 며칠동안 고생하는 사람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지칠때까지 안 먹고 안 자는 사람 치고는) 건강하다. 아니, 견고하다고 해야하나. 물론 먹을 때도 (미드를 보긴 하지만) 나름의 준비를 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먹는 행위를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역시 까다로운 입맛과 소화기관의 시너지로 식사를 망치면 상당히 오랜 시간 고생하는 사람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건강하다.




더 많이 읽고 쓰기 위해서 생각과 계획을 줄여야 하지만, 생각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종일 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주문이다. 차라리 더 재미있는 책을 빨리 채워놓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산책하면서 생각을 하면 좋으련만, 산책덕후 영국언니들 덕분에 대리만족하고 있지모람.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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