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연작소설집, <한밤의 시간표>
머나먼 동유럽,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정보라의 '귀신이야기'가 돌아왔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멀티링구얼이자 세계적인 작가, 백인 남성들은 상상도 못할 한국 여성 특유의 정서까지 제대로 관통하고 있는 저자는 우리(?)의 K-컬쳐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헬조선인) 지금, 톨스토이의 저 유명한 문장을 패러디한다. 이미 수없이 팬인증을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장르문학이라는 어불성설을 한번 더 풍자해야겠다.
그러니까, 그 '장르문학'으로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을 빌려 디스토피아일수도 있고 사변소설일 수도 있는 '있을 법한' 미래 역사, 또는 '있을 법한' 괴담에 대해 '너무 재미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속좁은 독서가가 아직도 있다면 그냥 도태되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서워서 못 읽는 건 논외) 대체 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저급하다고 생각하는지 납득이 안되지만, 예쁜 여성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추론해볼 수도 있겠다.
흠집을 내는 것이다.
자기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못하니까, 문학성에 재미까지 갖춘 작가들의 수입이 더 많고 독자층이 더 넓은 것에 배가 아픈 것이다. 자기들이 매력 관리를 못하니까, 허리가 휘어지게(feat. 캐럴라인 냅) 매력 자본을 쌓아야 하는 여성들이 인기가 더 많고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하는 것에 배가 아픈 것이다.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비아냥도 이런 맥락이다. 자기관리와 브랜딩을 못하는 자들이 떼쓰는 것이다.) 이 문장에 라임을 맞춰서 사설 시조를 쓰는 대회가 열린다면 며칠 밤을 새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토끼가 주인공인 <저주토끼>만큼 귀엽지만 강렬한 <저주양>과 옛날옛적, 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푸른 새>, 이제는 '연구소'가 된 상록캠퍼스의 괴담을 소환하는 고양이까지.
연구소 연작소설이다.
누적할수록 꿀잼인 건 말모!
그렇게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에 그 구정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아들 가진 엄마는 길에서 손수레 끌다 죽는다느니 하는 말의 의미는 모두 같았다. 가장 만만한 구성원의 피와 골수를 빨아먹어야만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된다. 그렇게 모든 역기능 가족은 비슷한 형태로 역기능적이다. -132p, 양의 침묵
살인 자체는, "왜 안 만나줘"가 결부된 모든 사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혹은 그러하다고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우호적으로 결론 나듯이) 우발적이었다.
"왜 안 만나줘"를 외치며 남자들은 자신의 소유라고 점찍은 여성의 집에 찾아가 흉기 난동을 벌이기도 하고(2021년 4월), 자신이 직접 만든 폭발물을 터뜨리기도 하고(2020년 10월) 혹은 피해 여성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살해하기도 한다(많다). "왜 안 만나줘"를 주장하는 남성의 여성 살해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므로 죽은 여자가 남자를 만나러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남자가 반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죽어 있든 살아 있든 "왜 안 만나줘"에 대한 답변으로 여자가 만나러 와줬으면 응당 기뻐해야 할 일이다. -197p, 고양이는 왜
인간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은 아주 한정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래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세상일이 돌고 돈다고 말은 하지만, 무엇이 돌고 어떻게 돌아오는지 인간은 종종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219p, 고양이는 왜
그러나 연구소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서운 공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연구소라는 공간은 많은 서사물에서 악의 공간이자 비판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해왔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가설을 압증하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을 실험용 도구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통해 연구소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이성이 살상 무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매트릭스>에서 <기묘한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연구소가 지금 제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목적과 연구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그곳에서 이뤄지는 일들의 핵심에는 인간 지성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46p, 작품 해설(박혜진)
한 장의 손수건이 소유를 위한 집착의 대상이자 핏줄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생계의 수단으로 기능하며 변주되는 내내 변하지 않는 사실은 가족이라는 낡은 이념입니다. -254p, 작품 해설(박혜진)
상처입고 학대당한 동물은 인간을 은유하는 동시에 인간에 의해 훼손된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 스스로가 동물과 다르다고 여기는 오만함은 타인의 생명을 나의 것보다 하위에 놓게 된다. 그 괴담이 이 괴담과 합동삼각형처럼 일치하는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나를 위해 세계를 훼손할 수 있는 자들은 오늘도 곳곳에서 너무도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그런 자들에게 훼손당한 이들은 오늘도 고요속의 외침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