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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비치, 혹시 천국인가요?

사우스 비치와 노스 비치의 3박 4일

집 앞에 바다가 있고 언제든지 입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버렸다. 여름별장 summer house의 존재 이유를 피부에 닿는 바닷 바람과 소금물의 현실감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은 타이밍, 특히 여행은 타이밍이다. 날씨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 해 기어이 마이애미 비치로 돌진했던 나는 벽화거리에 다녀온 날에도 바닷가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새로 산 비치드레스를 입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플로리다의 동해안 east coast에서 바닷물에 잠기는 일몰을 볼 수는 없지만 노을과 어우러진 오렌지색의 lifeguard hut을 배경으로 셀피를 촬영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입수를 해버렸다.



사우스 비치 도착한 날, 일몰


내일도 모레도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겠지만 오늘의 바다는 한번 뿐이다. 이 바다를 보겠다고 수만리를 날아오지 않았는가. 이 바다가 우리나라의 동해안과 많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바다의 날씨라는 게 원하는 만큼 청량하거나 낭만적이지 않기도 했지만 굳이 플로리다를 선택한 이유라면, 플로리다니까?


이제 달력을 또 한장 넘기기도 했지만 그 날도 이미 9월 말. 아직 덥다고는 해도 뉴욕이나 시카고에서는 이미 입수할 수 있는 '시즌'이 지나간 시점이었다.


붐비는 8월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바다가 아닌 곳에서는 너무 더우면 힘드니까 가을이 좋았다. 플로리다라면 입수하는 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카리브 해라서 더 좋았지만 일단 마이애미가 그냥 좋았다. 소박한 숙소여도 바닷가에 있어서 좋았고, 편의점 도시락도 좋았다. 한국어를 배웠다고 들려주는 컨시어지 직원도 좋았다.


진짜 물놀이를 위해 일찌감치 휴식을 시작했는데 그새 편한 침대에 익숙해진 몸이 불편한 침대에서는 뒤척이다가, 또 새벽기상을 했다. 바다가 코앞이니까 일출을 보러 나갔다. 아침부터 바람이 엄청났고 하루종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제대로 된 표정을 건질 수 없었지만 아침부터 바다를 보러 나와있는 자체가 행복했다. (자다 나왔지만 화장해주는 뷰티카메라의 도움을 받았다.)



사우스 비치 둘째날, 일출


작년 부산에서는 이 부분을 블로그에 작성했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대서양을 회상하는 그 타이밍도 절묘했다. 그때도 이미 9월 초였고 아직 팬데믹 모드여서 입수는 못했지만 산책을 핑계로 해변을 걷다가 다가오는 파도에 못 이기는 척, 발을 빠뜨렸다.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는 이 구역의 핫플이면서도 9월 말에는 붐비지 않았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바다를 즐겨찾지 않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기적으로 함께 여행을 가는 동반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규칙적인 '여름' 휴가를 써보지 못한 원통함에 더해, 그 시간 동안 여행 메이트를 확보하지 못한 설움도 있었다.


한편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사람에게 에너지를 많이 쓰고 소진되는 편 (51% 외향형)이라 여행이란, 목적이 휴식이든 공부든 혼자가 좋았다. 사람이 기준이라면 함께 놀러갈 수 있지만, 정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혼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마이애미는 혼자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부산도, 다른 바다도 이제는 얼마든지 혼자 갈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혼자 다니는 것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 미국이었고, 그 결과로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했던 사우스 비치의 둘째날 낮에는 그 모든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해변에서 비치타올 한 장을 깔고 혼자 태닝을 하다가 내킬때는 입수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변을 즐겼다. 다음 날에는 노스 비치에서 익사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3일 연속으로 바닷물을 마신 덕분에 제대로 지쳐서 숙면을 취했다. 더이상 바다가 그립지 않았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사우스 비치 둘째날, 태닝 중


바다의 한을 드디어 풀었다. 약간의 아쉬움은 마이애미 마지막 숙소에 있던 쾌적한 수영장에서 해소했다. 후에 휴스턴에서 또 이틀 동안 수영장을 즐길 기회가 있었고 후에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 거품목욕과 서울에서의 마지막 호캉스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좋은 날들이 멈추었다.


하지만 눈으로만 바라보던 지난 해의 부산 앞 바다도 있었고, 이번에는 방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지난 달에는 오랜만에 가까운 휴양지인 가평 물놀이도 재개했다. 가끔 찜질방(온천의 서울 버전)에 가고 싶지만 예전만큼 물놀이를 추구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마이애미에서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셨거나, 팬데믹에 완전히 적응을 해버렸거나.


어느 쪽이든 타이밍이 절묘해서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때 결심했던 마이애미 비치하우스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왕이면 보트까지 갖고 싶지만 집이 우선이다. 뭐든 관리까지 생각하면 피곤하니 머나먼 미래의 사소한 걱정은 하지 않겠다. 꿈의 존재만 즐겨도 되는 지금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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