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벽화마을, 미국 팝아트 맛보기
이쯤에서 앤디 워홀과의 인증샷을 소환해봐야겠다. 윈우드 벽화거리를 두 번이나 갈만큼 스트리트 아트에 빠져있었다. 그것도 그래피티보다는 팝 아트. 패션에는 과감했던 어머니가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사주신 마릴린 먼로 팝아트가 새겨진 청조끼 이후로 팝아트는 내 취향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태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고흐도 예술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 모른다. 불멸의 고흐에게 다른 모든 화가를 뛰어넘는 단 한가지 시그니쳐가 있다면 그의 광기 어린 색감이다. 나를 감싸안은 워홀의 시그니처, 마릴린 먼로와 귀를 자른 고흐 자화상 에피소드의 콜라보레이션은 또 그렇게 광기 어린 색채에 대한 열정을 조용히 성장시켰다. 소중히 간직하려다 도둑맞은 미키마우스 필통을 아직까지도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나의 물욕은 다름아닌 색채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첫번째 미국여행에서 미국적인 고퀄리티 벽화에 수차례 반했다. 그 중에서도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옛 공업지구 분위기는 어쩐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태생이 스타일리쉬한 사람들의 그 무엇인가로 인식되었다. 이 선입견은 브루클린 바이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 <영거>와 <섀도우헌터스>, <브루클린 나인-나인>등을 시청하면서 굳어갔다.
하라주쿠에서는 '오예, 쇼핑천국! 하지만 내게는 홍대가 있다'라고 생각한 반면 브루클린에서는 어쩐지 주눅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미 양국에서 뉴요커의 분위기를 뿜어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비-뉴요커의 관점에서 뉴요커는 매우 차갑고 까칠하기 때문에 실물이 실체보다 부드러워 보이는 최근의 나는 가보지도 않은 캘리포니아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두번째 미국여행은 카리브해 물놀이를 미국일주에 포함시키기 위해 동선을 뫼비우스띠처럼 비틀어서 마이애미행을 예약했고 해변 휴가를 3일 정도 유지하고 싶어서 올랜도마저 포기했지만 새로 이전한 노튼 미술관 방문 계획은 고수했다. 한편 진짜 쿠바도 아닌 키웨스트에는 별다른 모험심이 발동하지 않았다. 마이애미는 처음이니까, 시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고 바다와 리틀 하바나와 노튼 미술관에서 보낼 날들을 제외하면 겨우 이틀이 남아있었다.
그리하여 인스타그램으로 알게된 윈우드 벽화거리는 주요 목적지가 되었다. 전날 근처까지 왔는데 해가 져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전답사 느낌으로 야경을 채취했고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며 바다에 갈 짐을 맡겨놓고 낮에 또 와서 블록마다 산책을 겸한 벽화감상을 했다. 남은 이틀을 이곳에 올인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야 마이애미와의 케미가 제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보고 싶었던, 또는 가장 인증샷을 남기고 싶었던 벽화는 윈우드 월스 야외미술관 담장 안에 모셔진 <Hello Beautiful!>이었다. 가장 세렌디피티 포인트가 높은 벽화는 바로 이 구역의 남미스타일 옷가게에서 30초 전에 구입한 같은 그림의 티셔츠를 입고 돌아서서 만났던, <선글라스를 쓴 소녀>였다.
마치 다음 블록에서 그 소녀를 만날 것을 예견한 듯, 수천 벌의 다양한 의상이 가득했던 옷가게에서 그 소녀만 눈에 들어왔다. 야외미술관에는 그 티셔츠를 입었기에 그날의 나와 어울리지 않았던 부드러운 회색과 파스텔톤의 코끼리 벽화도 있었고 넋놓고 바라본 서로 다른 색감의 <흑인 소녀들> 고퀄리티 팝아트 벽화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전에 윈우드 버스정류장 앞 건강한 카페에서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고 벽화거리로 나서자마자 만났던, 고흐와 워홀이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워홀과 마릴린 먼로, 캠벨을 묶어서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마릴린 먼로와 캠벨을 그린 작가는 알지만 그게 워홀이고 워홀이 어떤 사람인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수호천사였던 마릴린 먼로의 영향으로 팝아트에 본능적으로 끌리면서도 정작 팝아트를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16년 전에 들었던 <현대 예술> 수업에서 기억나는 것은 잭슨 폴록, 렘 콜하스, 시뮬라르크 정도. 그마저도 툭 치면 콸콸 쏟아지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첫번째 미국여행 이후에 알게 된 에드워드 호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로 인해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읽다가 워홀까지 다시 보게 되었다. 이미 여러번 자랑했고 작년에 마지막(일 줄 알았던) 풀버전을 박제한 윈우드를 한번 더 리뷰하기 직전에 결정적인 정보, 그간 스쳐지나간 워홀과의 셀피와 비하인드가 업데이트 된 것이다.
그렇게 윈우드는 리뷰마저 세렌디피티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