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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추억들

가십걸, 블레어의 계단과 마담X

뉴욕의 핫스팟은 2007년에 등장한 <가십걸>의 영향을 받고 있다. <가십걸> 팬들이 기념한다는 '가십걸의 날'을 뉴욕 시장이 좋아한다는 소문도 있다. 카더라 뉴스는 접수하지 않는데 <가십걸>에 대한 가십이다보니 정색하진 않겠다. 독서가들의 독서일기 위주로 팔로우 하고 있는 지금이, 짧고 간헐적이었던 유튜브나 페이스북 시절보다는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십의 민족, 사피엔스의 역사를 집약한 <가십걸>은 명작이다.


뉴욕 드라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섹스 앤 더 시티>는 2006년에 정주행을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어른이 되면서 특히 자본주의 칙릿에는 손이 가지 않았지만 또 다른 뉴욕 드라마 <화이트 칼라>를 남기고 작년에 돌아가신 윌리엄 거슨을 다시 보기 위해 언젠가는 재주행을 할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내부의 홀


<섹스 앤 더 시티>와 <영거>,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대런 스타 감독은 '때묻지 않은' 앤저뉴 여주인공 스타일을 내세운다. 왜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지는 알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가십걸>의 블레어는 이미 다녀온 뉴욕이 그리워서, 차오르는 분노를 영어공부로 승화했을 정도로 내 스타일이다.


<가십걸>의 평행세계인 <상속자들>을 설계한 김은숙 작가님도 블레어 같은 여성 캐릭터를 애정하는 듯. 그럼에도 한드의 여주인공은 아기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져야 하겠지만. <상속자들>의 박신혜와 김지원, <시크릿 가든>의 하지원과 김사랑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원의 인생작은 <황진이>라고 생각한다.)


블레어의 계단에 다녀왔다. 이미 3년 전에도 왔었던 곳이다. 그 때는 2달러를 내고 기부입장을 했었다. 내가 핫스팟을 찾아다녔다기 보다는 핫스팟이 나를 찾아왔던, 첫 여행에서 센트럴파크의 큰 호수를 산책하고 뮤지엄의 아시아관을 한량처럼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메트로폴리탐 뮤지엄 정문, 블레어의 계단


귀국 후 머지않아 블레어에게 반했고, 이렇게 그리워할 줄 알았다면 그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며 다음 여행에도 뉴욕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포함시켰다. (두 여행 사이에는 제주 대신 갔던 오사카와 뜻밖의 아프리카 등이 있다.) 마침내 다시 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에는 블레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아직도 블레어를, <가십걸>을 소환한다. 내가 뉴욕 시장이라도 <가십걸>이 효자상품이라며 쓰담쓰담 했을 것이다.


그리운 것은 계단만이 아니었다. 미술관을 분명히 다녀왔는데도 기억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유명한 작품을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루브르 관광객의 대부분은 '모나리자'만 보고 나온다고 한다.


만약 메트로폴리탄을 처음 갔을 때처럼 별 생각없이 루브르를 갔다면 나는 그 '모나리자'마저 놓쳤을지 모르지만 인파에 휩쓸려 그 앞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섰을 확률이 크다. (방금 모나리자를 '모나지마'라고 타이핑한 것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에드워드 호퍼, <Tables for Ladies>


작년 예술의 전당 피카소전은 입장 줄도 어마무시했는데 전시실 안에서도 콩나물 시루처럼 들러붙어서 (심지어 팬데믹 기간인데!) 감상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의 내한 전시는 가급적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피카소는 부산에 있는 갤러리 카페 '아트케이'에도 있다.


명화에 집착하지 않는 편. 그러나 메트로폴리탄에서 사전트의 <마담X>를 놓치고 왔다는 건 진심 억울했다. 첫 여행 이후, 예술서점과 온라인 서핑으로 알게 된 (그러나 이미 볼 기회가 있었던!) 에드워드 호퍼와 존 싱어 사전트에게 빠져들었다. 메트로폴리탄에도 있지만, 호퍼의 자매미술관은 (그런줄도) 모르고 껍데기만 실컷 봤던 휘트니였다. 올리비아 랭이 휘트니에서 봤다는 그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시카고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눌러 앉은 덕분에 다시 온 미국에서 본 첫번째 작품으로 기록됐다.



존 싱어 사전트, <마담X>


사전트의 <마담X>는 엽서 버전으로 10년 넘게 동거 중인 그림인데 첫 여행에서 놓쳤다. 스무 살에 만나 21년째 절친인 대학 동기가 서른 살 생일에 써준 엽서. 바로 <마담X> 미니어처였다. 이 그림은 일명 파리의 '끈나시 스캔들'로 사전트를 추방하다시피 한 문제작이었다. 그런데 마담의 얼굴과 몸짓에서 에드워드의 반려자 조 호퍼가 보인다.





아름답고 도도하지만

어쩐지 고독한.

니 생각하다가 손에 잡혔다.


서른.

이 귀한 시간.

살아주어 고맙다.


-2012.5.5.



계획없이 미술관에 다녀온 후회로 3년동안 계획을 세우고, 시카고와 플로리다에서 실습으로 단련한 후 돌아왔다. 작품별 전시실 위치까지 파악했던 건 아니지만 매표소에 있는 층별 안내도 활용법은 알고 있으니까 찾을 수 있었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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