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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Jun 29. 2024

소녀들은 금지된 것을 원한다

손보미 <사랑의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은 그들과의 대화와 사건들이야말로 그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증표라고 새롭게 의미화한다. 그렇게 거짓에 가까운 첫사랑은 필요에 의해 기꺼이 '발명'된다.



해설_소녀들의 사랑과 위대한 유산(강지희)




<사랑의 꿈>에 수록된 손보미의 대표작 '불장난' 역시 계간지에서 스포를 너무 많이 당해서 초독의 짜릿함을 놓치긴 했으나, 이 책을 구입하기 전 <젊은작가상 10주년 특별판>에 실린 '폭우'를 읽고 이미 읽은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끝없는 밤'을 다시 읽었다. 우선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폭우'와 달리-그럼에도 '폭우' 역시 '대상' 수상작이다-최근작인 '끝없는 밤'과 2019년 이후에 발표된 <사랑의 꿈> 수록작은 일단, 길다.


​모종의 시스템에 의해 특정 분량으로 수렴되는 단편소설 평균 분량의 약 2배를 자랑하는 손보미의 노벨라는 화자가 자신의 화술을 뽐내는 동시에 '진짜 욕망'을 탐색하는 과정을 생생하게-또는 극도로 교묘하게-편집해서 보여준다. 가식적인 현대생활이라는 카펫을 뒤집어 그 아래에 숨겨놓은 일탈과 수치에 관한 진실까지 탈탈 털어놓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수치를 말하고 있는 '내'가 조금이라도 덜 수치스러울 수 있도록 잔꾀를 부리면서 그 사실 자체를 폭로하여 진실성을 획득하는 능청스러움도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변덕스러움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러한 진술의 번복이야말로 가벼운 일탈을 스릴러처럼 읽게 되는 요소다. 악의나 악행을 무려 '진실하게' 고백하려는 욕구와 그럼에도 품위를 잃고 싶지 않은 욕구는 속마음을 기꺼이 '들키고' 싶게 한다.




소녀들은 2차 성징 이전에 부조리를 인식한다. 순응하도록 훈육을 당하거나, <사랑의 꿈>의 소녀들처럼 붕괴된 가정에서 자기 코가 석자인 부모의 짐이 되거나, 잦은 전학으로 관계가 더욱 불안해지고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누군하는 단지 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본다. 그래서 양우정 같은 동년배조차 '타자'의 지위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선망의 대상이 된다. 집안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문밖을 나서면 이리저리 치이는 내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남녀노소 모두의 인정을 받고야 말겠다는 불가능하고 원대한 꿈을 품었다.


결핍이란, 끝없이 파고들면 프로이트적인 해석을 하게 되지만 따지고 보면 사회적 문제다. 언제까지 엄마 탓만 할 것인가. 엄마의 소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 할머니의 소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다.


​이건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발언권을 동등하게 줄 수 없다. 계모, 숙모, 고모 등 모계 사회의 암묵적 금기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적 스케일이 필요하다. 역사는 좋아하는데 눈치가 없다면? 눈치를 장착하거나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이 표현은 본질에서 훨씬 멀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어떤가? 내가 그녀를 부추겼다.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바로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38p, 밤이 지나면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배!)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왜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84p, 불장난


또래의 학교 선생들-특히 여자 선생들-을 보면 가끔 가슴 한구석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삶에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어떤 것이 아주 잠시 동안 살아났다가 다시 죽임을 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157p, 사랑의 꿈


그 더럽고 지저분한 세계를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은 그 세계 바깥에 있고 싶다는 열망이 반영된 행위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 열망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240p, 해변의 피크닉


나는 그 이야기 속 사실들을 될 수 있는 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늘어놓고 싶었다. 그 사실들로 지어진 작은 집에 창문을 내고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그 안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한 후 진정한 의미를 건져올리고 싶었다. -306p, 첫사랑




​처절한 질투를 넘어선 남다른 여성에 대한 동경과 맹목적 사랑이 각 소녀의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사랑이 부끄러워도 그 폭죽같은 감정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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