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맨해튼의 반딧불이>
지난해 여름, 뉴욕은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쓰여진 2019년 가을에는 나도 뉴욕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가끔 혼자인 게 지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혼자인 게 편한 곳이었다. 뒤늦게 이 책을 데려와 읽고 있을 때 그녀는 다섯 번째 뉴욕을 여행하고 있었다.
올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 작가의 <사랑의 꿈>을 읽고 그 여운에 사무쳐 어텐션북을 전자책으로 읽다가, <맨해튼의 반딧불이>에 수록된 짧은 소설(단편보다 짧고, 중편에 가까운 손보미의 노벨라보다는 훨씬 짧은 소설) 중에서 <사랑의 꿈> 연작으로 연결되는 작품이 있다는 언급을 발견하고 궁금한 마음에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연작으로 묶이거나 나름의 연관성으로 모여있는 네 개의 파트를 순서대로 읽지는 않았다. <사랑의 꿈> 시리즈의 화자(표제작의 화자는 연작소설 전체 화자의 어머니인 셈이지만)가 처음 등장했던 ‘크리스마스이브’를 읽고 이 작품이 포함된 ‘맨해튼의 반딧불이’ 파트를 가끔 읽었다. 실제 표제작은 그냥 ‘반딧불이’였다. 이 파트에 특별한 작품들이 실려있지만 모르고 읽어야 더 재미있기에 그게 뭔지는 생략한다.
그저 계단의 수를 잘못 센 것뿐이었다. 올라갈 계단이 더 있는 줄 알고 발을 내디뎠는데, 혹은 내려갈 계단이 더 있는 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발을 헛디딘 거였다. -47p, 불행 수집가
나는 처음에는 우리가 이 세상 누군가 한 명쯤은 자신을 한때 특별하게 만들어주었고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쾌락을 준 것을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기를 바라서일 거라고 추측했었다.
-66p, 아보카도의 진실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이야? 살이 찌는 것을 예민할 정도로 걱정해서 매일매일 운동을 하고, 옷의 전체적인 색감을 맞추고, 아무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가르마 따위에 신경 쓰는 것은 그이지 내가 아닌데! -126p, 하이힐
하지만 나는 그 순간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의 죽음 때문에 마음 아파 했던 그 시간들이 어느 순간, 마치 소나기가 그치고 해가 비치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내게서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죽음들이 사그라져서 아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75p, 축복
짧은 소설에는 해명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많다. 이해하려고 하면 답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아서, 지면이 부족해서 설명을 생략한 듯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어쩌면 <사랑의 꿈>과 같이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 무려 연작으로 구성된 확장판이 나올지도 모르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사랑의 꿈>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손보미 작가의 이번 수상작이자 지난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끝없는 밤’과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폭우’에서도 우연과 아이러니와 죄책감과 욕망은 계속된다.
나름 최신작(?)인 ‘천생연분’이 실린 계간지를 받은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3일차인 오늘(9월 8일) 저녁에 손보미 작가도 만나볼 예정이다. 금요일 개막강연에 다녀와서 ‘천생연분’을 읽으려 했으나 아직 못읽었다. 강연 전 반짝서점에서 신간을 구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