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컨 매든 <여행자의 어원 사전>
원주민들이 쓰는 애칭 '모라모라Moramora'가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모라모라는 '서두를 필요 없다'라는 뜻이다. -215p, 마다가스카르
여행은 공부를 촉진했고 공부는 여행지 목록을 한없이 늘려놓았다. 지난 세기부터 거의 30년째 계획만 하고 있는 (다녀오지 않은) 유럽 여행 덕분에 나라, 도시별 소설과 여행기, 역사적 기록들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두 가지 버전으로 소장하고 있는 J.네루의 <세계사>는 아직도 완독을 못했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읽게 된 데는 30일 간의 미국여행(1)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행덕후 덩컨 매든이 쓴 <여행자의 어원 사전>의 동선을 따라가다 남아메리카-스페인-중앙아프리카-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에 새롭고도 오랜 흥미가 솟구쳤다. 이 책에서 쏟아지는 미니 세계사와 다양한 언어에 정신이 없어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찾기도 했는데, 덕분에 스페인어가 진출한 세 대륙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발자취와 언어의 확장이었고 여행 집중 기간 이후로 셀프 어학연수가 가능해졌다. 그 무렵 팬데믹은 언어 속에서 유영하는 새로운 여행을 창조했다. 영어덕후 시절 구입한 마크 포사이스와 팀 마샬의 원서는 (마이애미를 회상했던) 부산에 동행했다. 시간이 지나 영어책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에 <어원 사전> 시리즈를 다시 만나 새삼 이 책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조금 나중이다. 이름은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이고, 그것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진보를 기록하는 서사로서 흥미 요소다. -17p, 들어가며
베스푸치는 그 모습에 베네치아를 떠올리고 그 지역을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의 '베네치올라'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을 스페인어로 하면 베네수엘라가 된다. -63p, 베네수엘라
네덜란드가 수리남을 차지하는 대가로 영국이 점령한 북아메리카의 작은 마을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리던 그 마을은 오늘날의 뉴욕이 되었다. -72p, 수리남
스페인이 자리 잡은 반도는 원주민 이베레스족의 이름을 따 이베리아반도라고 불렸다. 이베레스족은 기원전 6세기 무렵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남유럽의 지브롤터로 놀라울 만큼 짧은 뱃길을 통해 건너와 정착했다. -152p, 스페인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으로 독립국이 되었지만 토착 주민들의 삶은 달라진 게 별로 없었고, 권력은 계속 미국계 라이베리아인에게 독점되어 있었다. 영어의 제1공용어화, 기독교와 일부일처제 도입, 이성애 중심의 서구 문화 추종, 미국 모델의 정부 구성은 문화적 분열과 미국계 인종의 우월 의식을 나았고, 그 결과 수십 년 동안 시민들의 불안, 전쟁, 가혹한 독재가 이어졌다. -184p, 라이베리아
리빙스턴은 세계 5대 호수에 들어가는 이 자연의 경이에 '호수 호수'라는 이름을 지은 셈이었다.
-203p, 말라위
우리가 아는 사하라Sahara사막이 여기서 왔다. 그러니까 사하라사막은 본래 뜻이 '사막 사막'인 셈이다. 재밌게도 동아시아의 고비Gobi사막도 마찬가지다. -221p, 사우디아라비아
아제르바이잔은 동유럽과 서아시아에 걸쳐 있어서 과연 이곳이 어느 대륙 소속인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다. -225p, 아제르바이잔
<아메리카 인간 유전학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날 몽골 제국 영토였던 땅에 사는 모든 남성의 8퍼센트, 그러니까 1600만 명 정도가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Y 염색체를 보유하고 있다.
-251p, 몽골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원주민이 아니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마오리라 부르지도 않았다. 마오리는 '평범한'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유럽 식민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284p, 뉴질랜드
나라 이름은 영토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에 지리와 역사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여기서 '침략사'를 발견하고 '독립운동'을 목격한다. (호화롭지 않은) 여행을 하다보면 지역 주민들의 다양함에 놀라고 (상대적으로) 편협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 흔하다. 그런데 독립운동 하면 또 한국이다. 엔딩 없는 역사는 바로 이곳에 숨쉬고 있다. 발이 어디에 있던, 영혼은 전세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