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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29. 2024

나폴리 4부작을 단편으로 요약한 듯한 스케일

전하영 외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작가의 첫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를 여러 번 들었다놨다 하는 동안 젊은작가상 특별판과 최신판을 리뷰하면서 젊작덕후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전 14년 동안의 수상작품집을 전부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날 눈에 띈 2021년 수상작품집도 들여놓았다. 전원 첫 수상에 빛나는 일곱 작가들(김멜라, 김지연은 올해와 중복되며 박서련은 장편을 읽은 적이 있다.)을 뒤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동안 먼저 읽은 작품에 대한 감탄은 쿨링되다못해 희미해진 대신 완독을 앞두고 기어이 <시차와 시대착오>를 데려왔다.


전하영의 대상 수상작을 읽기 전부터 그녀의 소설집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빨려들어가던 중, 수상작품집의 완독이 빠를 것 같아 돌아왔는데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대상 수상작은 무려 본문만 50페이지인데다가 (읽고 잠깐 다른 리뷰를 편집하다 깨달은 사실이지만) 마치 나폴리 4부작을 단편으로 요약한 듯한 스케일이었다! 게다가 이 짱짱한 신인(이었던) 작가들에 대한 심사평은 또 어찌나 짱짱한지. 한 편 읽고 리뷰써야지하고 들어왔는데 어느덧 5시간째 셀프감금(?)을 하고 있다.




​먼저 읽은 작가들에게 충분한 감탄을 할 분량이 없다! 요약을 해보자면, 대상수상작과 박빙(?)의 승부를 겨루었을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단숨에 작가 정주행을 결심하게 한 작품이다. 한정현의 작품도 레퍼런스부터 만만치 않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연작소설에 포함된 일부인 것 같으니 해당 작품집은 꼭 읽어야겠다. 수상작으로 입문했으나 최신작(?)에 더 깊이 빠져버린 김혜진 작가의 향후 활동도 몹시 기대된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동안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렸을까 생각했고, 그게 뭐든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180p, 목화맨션(김혜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애정과 관심을 주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청란(김혜진), 계간 문학동네 2024 여름호


단편소설이 발휘할 수 있는 미학 중 하나는 서사를 통과하는 인물이 커다란 질적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는 찰나의 순간을 명징하게 그려내는 것이며, ‘청란’은 그것에 맹렬하게 집중하고 있다. -참새잡이의 방문(전승민), 계간 문학동네 2024 가을호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진실되게 사는 대가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부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141p, 사랑하는 일(김지연)


왜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걸까? 어쩌면……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할 수 없는 것만 가득한 날들 속에서……할 수 있어! 를 발견했기 때문에……  -반려빚(김지연),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엠비티아이 유형을 따져보자면 아마 K는 J 타입일 것이다. 철두철미한 계획형 인간. 그런 것치곤 피임은 제대로 못하는 편인 것 같긴 했지만 인간이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확한 비밀(김지연), 계간 문학동네 2024 봄호



올해 수상작을 언급하지 못했지만 역주행을 한 덕분에 양파같은 매력을 알게된 김지연 작가의 세번째 작품으로 역시 신작을 읽었는데 이왕 읽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그녀의 작품집을 구입하겠다고 결심한다. 단체로 리뷰하기엔 너무 큰 작품이었던 대상작은 전하영 작품집에서 더 언급해볼 수 있겠지?

​​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단지, 스무 살이었다. 유혹에 대한 면역이라곤 없는. -46p,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전하영)


현실에서는 그 불우한 처지를 구실 삼아 학대의 대상이 되곤 하는 뮤즈로서의 젊은 여성이 그 논리를 보장해주는 중요 계기로 기능한다. -66p, 예술성의 안개를 걷으면(오은교)


그런데 왜 그런 미혹으로 애인도 얻고 돈도 얻고 명예를 얻기까지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며 영영 상처받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란 말인가. -384p, 심사평(박민정)


예를 들어 그녀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온 힘을 대해 쓸모없어지려고 달려온 것만 같은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영향(전하영), <시차와 시대착오>



같은 작품이 세번째로 입고된 김멜라와 분량 안에 도저히 담을 엄두가 안 나는 박서련 역시 다시 소환할 기회가 있기를.


짧게 요약할 수 없던 문제작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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