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과 다른 책들
미쳐있었다. 손보미에게 미쳐있었고, 강화길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오래 좋아하다 오래 잊고 있던 김애란에게 재입덕하면서 제대로 미쳐있었다.
젊은작가상 10주년을 기념해 43명의 역대 수상 작가들이 추천한 '우리가 사랑하는 젊은작가상' 7편이 2010년대를 요약했고 젊었던 그들은 이제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소장중인 다른 작품집과 리뷰까지 비교, 대조해보면서 팬심을 증폭시켜봤다.
당신은요? 당신은 그 아이를 버려두지 않았어요? 나를 버려두지 않았어요? -95p, 폭우(손보미)
당연했다. 죽은 사람들은 영상을 올릴 수 없을 테니까. -끝없는 밤(손보미),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불장난(손보미), <사랑의 꿈>
예술작품만큼 불투명한 것은 없고, 그것에 기꺼이 속아넘어가는 그만큼 우리는 예술로부터 한없이 중요한 것을, 우리가 매달리는 삶의 그 문제를 배울 수 있다. -배움의 단계들_손보미, <불장난> 읽기(이희우), <문학동네(계간지)_2023 겨울호>
https://brunch.co.kr/@swover/429
시련을 통한 깨달음과 성장이 손보미의 작품에서는 좀더 치명적이다. 목숨이 달린 재난, 그에 못지 않은 위급 상황에서 구질구질한 줄 알았던 불륜이나 불장난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욕구로 재조명된다. 리뷰를 생략한 '끝없는 밤'을 재독하고서야 비로소 이를 깨닫고 <사랑의 꿈>을 사러 달려나갔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완독하기 전이다. 그 야릇한 제목은 강화길의 고딕스릴러에 찰싹 달라붙는다. '호수'가 보여준 '다른 사람'이 처녀귀신처럼 따라다녔고 젊은작가상 10주년 직후에 대상을 수상한 '음복'을 재독했다. 그녀와 고모와 시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다른 여자'가 되어버린 내가 짜증나서 울었다.
'그런 사람'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줬는데, 민영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26p, 호수-다른 사람(강화길)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해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음복(강화길), <화이트 호스>
하루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죽을 때까지. 많은 여성들이 등골 빼 먹는 남편이나 아들놈보다, 자기보다 팔자 좋은 여성의 험담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는다. 대체 왜. -'그런 여자' 되지 않기? 그런데 '그러면' 좀 어때_강화길 <화이트 호스> 리뷰(산책덕후 한국언니), 브런치북 <정체성을 탐구하는 심화독서>
https://brunch.co.kr/@swover/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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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평소 우리가 어떤 냄새를 풍기며 살아왔는지 환기시켜줬다. 37p, 물속 골리앗(김애란)
거기 있는 걸 없는 척하고 없는 걸 있는 셈 치는 건 연극의 중요한 약속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가식이나 위선과는 다른 거였다. -홈 파티(김애란),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침묵의 미래(김애란), <바깥은 여름>
https://brunch.co.kr/@swover/442
아는 맛이라고 안전할 리가. 연초에 리부트한 윗세대 작가들도 중년이 되어 읽어보니 달랐다. 헤세, 전경린, 공지영도 그렇고, 심지어 강화길은 (윗세대는 아니지만) 고작 1년 만에 재독했는데, 달랐다. 동세대이자 대선배인 김애란의 소름 포인트를 재발견했으니, 그것은 '홈 파티'의 후반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