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샀는데 읽지 못했던 책들, 읽은 책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책들이 있었다. 편혜영과 김연수, 최진영의 책이 있었다. 김애란 말고 다른 작가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히가시고 게이고로 넘어가다 스킵한 작가들이다. (오랜 기간 장식용이었던 플로베르도 그렇다.) 참으로 성글었던 (그럼에도 나름 책 마스터? 였던) 서른 즈음의 나는 의식, 아니 쾌락의 흐름대로 읽었다. 읽기를 놓지 않았다. 기어이 외국어를 정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김애란, 펼쳐보지 못한 채 반납했던 편혜영과 김연수를 읽었다. (최진영은 2023년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다.) 게으른 독자의 늦은 발견들, 반성의 무한루프 속에서 수상작과 수상작가 작품집과 리뷰(해설)를 탐독하며 나만의 작은 결론(?)을 내렸다. 한 작가를 비밀스럽지 않게 좋아하려면 네 편 정도 읽어봐야겠구나. 한판은 물론, 삼판도 성급하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122p, 홈 파티(김애란)
진화한 속물들의 유연성은 중간계급의 불편함을 더없이 깔끔하고 예의바르게 수용한다. -132p, 진화하는 속물들과 신新 보이체크의 반격(강지희)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경의 쓸모(김애란), <바깥은 여름>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34p, 포도밭 묘지(편혜영)
겨냥하는 눈높이가 한오만큼 야심차지 못했던 그들의 추락은 낙차가 적어 덜 비극적이지만 열패감과 굴욕과 고단함은 피할 길이 없다.
-45p, 운명의 수학(김화영)
모두 무사한데 자신에게만 불운이 닥치는 것, 김이 생각하는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 -저녁의 구애(편혜영),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다시 읽은 김애란이 네 편째, 편혜영은 두 편째다. 편혜영은 김애란의 에세이에도 등장하는데 궁금했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도 편혜영과 김연수 때문일 것이다. 아는데 모르는 작가.
어느 날 갑자기 끌려서 2022년도 수상작을 구입했고 며칠 뒤에 2023년도 수상작이 나와서 시간 역순으로 읽었다. (사슴벌레 무한루프의 시작)
중복 작가인 백수린은 시간순으로 읽었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너무 무서워. -235p, 아주 환한 날들(백수린)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빛이 다가올 때(백수린),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그는 틀림없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어봤겠지?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군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백수린),
<여름의 빌라>
백수린을 처음 만났던 날, 졸려서 울다가 먹먹해졌는데 다시 읽어도 이 작품은 먹먹하다. 애정을 전제로 수발을 드는 (때로는 강요당하는) 동거가 아니라 수발을 들다 애정이 담기는 과정을 앵무새 깃털처럼 가볍게 뿌려놓은 이 작품은 전혀 가볍지 않다.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항상 달을 생각하고, 방향을 생각한다고.
그때도 달의 방향을 생각했을 뿐이에요.
-73p, 진주의 결말(김연수)
이 소설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88p, 모든 이야기로부터의 자유(신형철)
창문 속이 아니라 그림 밖의 존재. 다리를 다시 짓고, 꽃을 꽂아둘 수 있는 사람. 추모하지만 결코 영정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사람.
-190p,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문지혁)
말도 안 돼. 반장 아닐걸요? 그 사람이 '강건너적-소설: 작가 초롱의 이중성' 같은 제목을 지을 수 있나?
-이중 작가 초롱(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보려 한 적이 있다. 허드슨 강을 끼고 맨해튼을 마주보는 포트 리에 한인타운이 있어서 구글맵투어를 했다.
결국 자유의 여신상을 선택했다.
강건너-에서, 맨해튼과 스테이튼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옛 이민국, 현 이민박물관이 있는 (앨리스 섬과 연결된) 곳, 리버티 주립공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