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07. 2024

바로 그 알 수 없음이야말로

김멜라 <제 꿈 꾸세요>

오랫동안 이런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을 기다려왔다. -추천사(편혜영)


때로는 벽 뒤에 있을 때 더 달콤한 것들도 있는 법이니까. -초월사랑-괄호 열기(성해나),

Axt 46호(2023, 01/02)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

-340p, 작가의 말



상실과 거부, 금기와 무기력을 깨진 유리조각처럼 이어붙여 오색창연한 파노라마 작품으로 선보이는 김멜라의 소설들은 각각의 심화 주제에 충실하되 시간과 날씨와 계절에 따라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장면을 연작으로 보여준 모네의 그림처럼 맥락이 있다. 가장 최근에 수상한 ‘이응 이응’으로 입문한 직후 어리둥절했으나 이어서 ‘제 꿈 꾸세요’를 읽고 만개한 호기심으로 김멜라를 탐독하게 된 이유다.


역대 수상작인 ‘나뭇잎이 마르고’와 ‘저녁놀’까지 읽었을 때는 다시 어리둥절함이 호기심을 압도했다. 분명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내 발랄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는 화자의 목소리가 나의 무기력과 대비되는 일시적 불협화음의 시기를 거쳤다. 그동안 이 무기력을 담담하게 파헤치거나 평온해 보이는 문장 속에 예리함을 꼭 맞게 넣어둔 작가들을 남몰래(혹은 공개적으로) 덕질하며 오페라핑크 맛 로맨스를 잠시 미뤄두었다.


네 편 쯤 읽으면 저자와의 궁합을 알 수 있다는 (철 없을 때? 선언한) 공식이 깨졌다. 한참 뜸을 들여서 읽어낸 다섯 번째 작품인 ‘설탕, 더블 더블’에 와서야 이 맛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간의 버퍼링을 보상하듯 나머지 작품들은 달콤하게 애처롭고 치밀하게 즐거우며 내 머릿 속 또다른 유리문을 열어제꼈다. 슬픔을 고통스럽지 않은 환상으로 부활시키는 시도를 거듭하는 동안 탁월함 그 이상을 성취해 낸 저자에게 무한한 감동과 대리만족을 느꼈다. 알 수 없음에도 존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 존재를 느낀다. 사랑은 존재를 영속시킨다.




그런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언젠가 자신이 신을 찾게 될 거라는 믿음이나 언젠가 예술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하게 되는, 영혼에 새겨진 주름 같은 것이라고. -80p, 나뭇잎이 마르고


저 여자가 엘리 마음을 펼치고 있구나. 말린 꽃잎이 따듯한 찻물 안에서 잎을 펼치듯 저 여자가 우리 애 마음을 펼치고 있어. -195p, 논리


낮에도 밤에도, 나는 잘 죽는 걸 목표로 살고 있어. 그러니까 아직은, 살아 있어.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기쁘게. -247p, 코끼리코


나는 나라는 존재를 빈 괄호로 두고 싶었다.

-295p, 제 꿈 꾸세요



‘알 수 없음’은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의심, 새로운 앎에 대한 기대를 만드는 역동적이고 창발적인 계기다. -335p, 해설_빈 괄호를 그냥 둔 채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일(오혜진)


하지만 바로 그 알 수 없음이야말로 퀴어의 자연이다. -몸짓의 진화(전승민),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그러고 나면? 그 열린 틈으로 뭐가 들어올지 어떻게 알지? -이응 이응,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어떤 죽음은 시큼한 자두 냄새가 났고, 어떤 죽음은 다락방 먼지 냄새를 풍겼다. 어떤 죽음에선 풀물이 든 낫에서 맡을 수 있는 젖은 들판의 냄새가 났다.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Axt 44호(2022. 09/10)



​작년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제 꿈 꾸세요’와 최근 수상작인 ‘이응 이응’ 사이에 도시괴담 테마 단편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가 있다. 작년 말(문학동네 117호)에 나온 현호정의 신작 ‘청룡이 나르샤’와도 연결되는 이 작품에서 <제 꿈 꾸세요>의 ‘작가의 말’에서 본듯한 존재가 존재감을 뽐낸다.


내가 그랬잖아.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고.





이전 17화 올해의 소설, 올해의 작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