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의 소설에서 규정되지 않는 느슨한 관계는 어딘가로 이행되어야 하는 미달된 단계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언제나 어떠한 제도, 관습,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수많은 욕망과 분노, 애정과 좌절이 뒤섞인 정동이 드러나는 형식이었다.
-비평과 사랑(인아영), 계간 문학동네 2023 겨울호
‘망명 이후’를 상상해보는 임솔아의 소설들은 섣불리 과거와 화해하거나 고통을 극복하는 결말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여전히 조금은 불안해하며 돌아갈 곳에 어김없이 한 사람을 남겨둔다.
-집, 아픈 몸, 망명 이후(강도희),
계간 문학동네 2024 여름호
무리에 섞이기 위해 자신을 죽여봤던 사람들이 모여 작은 전시를 열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서로 응원하지 않는다. 공감하지 않는다. 먼저 괜찮으냐고 묻지 않는다. 손을 맞잡지 않는다. 스크럼을 짜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 몸을 옆 사람 몸 옆에 두어 잠시 같이 있어줄 뿐이다. 개념이나 편견을 덧씌우지 않은 맨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추천사(이미상)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여성 화영, 우주, 보라, 정수는 현대미술 작가 또는 비평가이고 그들을 불러모은 석현은 장애남성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생존 연기’를 터득한 화영과 시선강간이 무엇인지를 아는 석현에 이어, 남성은 아니지만 남성을 사랑하지도 않는 우주가 등장하면서 흥미로움의 피치를 올렸으나, 장편이되 옴니버스 형식인 이 책을 잠시 쉬고 단편 투어를 하는 동안 가독성이 높았던 1, 2부를 잊고 숙제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살았다.
수개월이 지나 불면증과 다른 숙제(?)를 피해 다시 집어든 날 3, 4부에도 빠져들었다. 배신하고 못되게 굴었던 양육자나 사수 들과는 다른,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수면 아래 발차기로 멘탈을 혹사시키던 보라와 과몰입의 화신인 정수는 반대방향에서 몰아치는 태풍 같았다. 여자아이들 세계에 특히 적응하기 어려웠던 화영이나 우주의 괴로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성애자 특유의 못난 청춘을 보냈기에,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당한 사소한 배신이 귀여울만큼 혹독한 시련을 거쳐온 보라와 정수를 보고 있으면 숙연해진다. 감히 공감한다고 할 수 없을만큼. 그렇다. 이들은 공감을 유도하거나 강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감하는 척을 기대하는 소셜프레스조차 제거된 공동체 비슷한 걸 이룬다.
섞이기를 여러번 포기했다. 그러는동안 계속 (모난 돌이니까) 정을 맞을 수 없어서 무리를 리드하거나, 무리가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어떡해야할지에 대한 아주 작은 실마리를 전달받은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마치 아주아주 두꺼운 유리벽도 언젠가 깨어질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아주 작은 실금과 같은 작품이다. 아직 많은 사람이 알아본 건 아닐지라도, 본 사람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단서이다.
다정한 관계였지만 깊이가 없었다. 지속성도 짧았다. 그래서 끝까지 다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74p
여자아이들은 바비 인형 놀이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동시에 바비 인형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바비 인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서로가 그것을 알았다. -108p
내 마음 같지 않은 애인이나 꿈과 상관없는 직업을 택한 나. 이보다 보통의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을까. 보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우주는 이제 잘 알았다. -156p
정수는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감히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320p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에이드리언 리치를 알게 됐다. 작가들은 매번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고 재등장한다. 작년 서울국제작가축제 출연진이어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알게 된 임솔아 작가는 제13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