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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Feb 05. 2023

팜 파탈 러시아 언니들 미인계

미드 <앨리어스>와 <블랙리스트>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전담반은 '우체국'이라 불리는 창고형 사무실에서 레딩턴의 '블랙리스트'를 수사한다. 전담반에 파견된 FBI 정예요원들은 범죄계 대부인 레이먼드 레딩턴의 번호를 '닉's 피자'로 저장해두고 그와 공조한다.


프로토타입인 <앨리어스>보다 훨씬 성공한 <블랙리스트>는 배경이 FBI로 바뀌었지만 리메이크로 보일만큼 <앨리어스>와 닮았다. 시드니 브리스토가 이중스파이였을때 CIA에서 그녀를 호출하는 방법은 '조이's 피자'냐고 물어보고 전화를 끊는 것이다. (아직 휴대전화보다 집전화를 많이 쓰던 시절이다.)


<블랙리스트> 주인공인 레이먼드 레딩턴과 엘리자베스 킨


가짜 CIA에서 진짜 CIA로 영입되는 괴짜 해커 마샬은 FBI 전담반의 아람으로 부활했다. 이 사이에 등장한 주요 해커인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드 <리벤지>의 놀런 로스가 천재 너드인 동시에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양성애자인 것과 대조적으로, 마샬과 아람은 정통 찐 모범생이며 당황하면 주절거리는 스타일**이라 이 유형의 대표인 <가십걸>의 댄 험프리와도 상당히 닮아있다.



미인계는 실화인가?


냉전시대 소비에트 연방의 KGB 스파이는 미인계로 유명했다고 한다. 유튜브에 등장한 미국 국정원 CIA 특수분장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소련과 달리) 미국에서 파견한 스파이는 그렇게 반인륜적이고 치명적인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크리에이터의 막연한 추측이나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21세기 미드에서도 특히 여성요원의 위장근무가 미인계를 포함한다. 장수한 FBI 프로파일러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에밀리 프랜티스, FBI 뉴욕 지부 엘리트 범죄수사 드라마 <화이트 칼라>의 여전사 다이애나 배리건과 (극중에서는 이성애자 남성이지만 여성친화적인 미소년이라 미남계가 주특기인) 주인공 닐 카프리를 포함한 가상의 FBI 요원 상당수가 미인계로 시청률을 올렸다.



*리스베트는 패션 테러리스트로 원작에서도 패션 센스가 없고 인테리어 취향도 없다고 묘사된다. 주로 올블랙 바이커 룩에 피어싱과 스모키 화장 등 고스족의 패션을 마구자비로 수용하는 편.

**놀런은 패셔니스타로 주변 여성들만큼 화려한 컬러의 세미 수트를 즐겨 입는다. <가십걸>에도 등장하는 사우스햄튼 지역은 드레스코드가 화이트인 파티도 있고, 고급 휴양지라 밝은 색으로 드레스업 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놀런이다.

<앨리어스> 주인공인 시드니&잭 브리스토 부녀


알고보니 러시아 언니였던 CIA 특수요원 시드니 브리스토는 미인계를 포함한 변장술의 달인이고, 시드니와 아주 비슷한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살아온 엘리자베스(리즈) 킨은 수사방법이라기보다 범죄계로 넘어가서 수사를 혼란시키는 방법으로 미인계를 활용한다. 리즈가 비교적 순수했을때, 좀더 고수인 여성요원 사마르에게 미인계를 당했던 남성요원 도널드는 오랜 파트너인 리즈와의 썸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지만, 리즈에게 우호적인 여성주의자 여성의 눈으로 봐도 도널드는 둘 다에게 당했다.


미인계가 나쁘다거나 그래서 여성요원들이 능력이 부족한 차원의 설정이라기보다는, 잘생겼지만 고지식한 도널드가 '이게 뭐지?'하고 프로세싱하는 동안 그보다 좀더 이기적인 여성들이 한발 앞서간 것으로 보인다. 영어로 outsmart라고 할만한 상황.



미국 스파이가 된 딸이 은유하는

러시아 엄마들


무엇보다도 시드니와 리즈의 러시아 엄마들은 진짜 러시아 스파이라서 이 분야의 프로다. 일부러 '딸'을 낳은 건 아니겠지만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아서 정착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 전체가 미인계였던 러시아 엄마들은 독하다. 반면 그 딸을 맡아서 키우는 아빠나 수양부, 삼촌들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딸바보'다.


'미국' 드라마이기 때문에 러시아 여성에 대한 다소 과한,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는 로봇같은 설정이 허용되는 듯 하다. 그러나 북한 여성을 대상화하는 한국 영화, 드라마가 늘 찜찜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설정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친부에 의해 블랙위도우 스파이로 '팔려갔다'고 주장하던 리즈 엄마 카타리나의 비밀*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시드니의 엄마와 이모들은 역대급 빌런인 동시에 시대를 앞서간 구세대 여전사**들이라 미워하기도 어렵다.



*드라마가 아직도 방영중이라, 리즈가 죽었는데도 카타리나, 레팅턴과 리즈의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엄마들의 활동 기간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드라마 제작 시기가 다르므로, 여성 캐릭터에게 요구하는 자질과 여성 배우의 활약 범위가 확연히 달랐지만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카타리나 아역과 함께 출연한 가브리엘 만(배역은 스포일러)


리즈 킨은 여전사 리스베트의 이름을 가졌으나 레딩턴과 카타리나에게 휘둘려 무리한 범죄계 입문을 시작으로 동료들을 차례차례 실수하게 하는 미인계 설정이라 팬심은 못내 아쉽다. 하차한 사마르가 미인계의 화신이었고 리즈는 여성성을 그다지 부각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남편인 톰 킨의 사망과 딸 아그네스 출산 후 그녀의 인생은 더 복잡해졌다.



FBI 비밀조직에 진출한

한국계 여성요원


하지만 사마르 하차 후 이구역의 다니엘 헤니*처럼 등장한, 한국계 미국인 엘리나 박 요원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녀는 사마르 뺨치게 수상한 과거를 암시하고 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아 도널드와 엮일 가능성**이 0에 수렴하니 안심이 된다. 안타깝게도 박 요원은 최근 시즌에서 시간을 건너뛰고 유부녀로 등장한데다 그것도 모자라 한번의 유산을 거치고 벌써 두번째 임신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느와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역대급 한국계 배우가 연기하는, 한국계 여전사를 지켜보는 증인이 되었다. 주연이었던 리즈까지 하차한 상태에서 전담반의 유일한 (게다가 미인이지만, 미인계 스타일은 아닌) 여성요원 엘리나의 활약이 이 시리즈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대표적인 FBI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 비교적 늦게 합류한 한국계 배우

**도널드가 워낙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리즈를 보내고 같은 슬픔으로 연대하는 도널드와 엘리나의 우정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리즈가 도주하던 시절 레딩턴 대신 도널드를 죽일 뻔 했는데, 그때 엘리나가 무표정한 농담으로 도널드의 몸매를 칭찬한 적은 있다. 매번 당하는 도널드에게 약간의 사심이 있어서 괜한 방어본능이 생겼음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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