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앨리어스>와 <오펀블랙>
카멜레온 같은 여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배우는 바로 타티아나 마슬라니이다. 최근 마블의 <변호사 쉬헐크>로도 존재감을 널리 알리고 있는 그녀는 <오펀블랙>에서 단독 멀티캐스팅이 되었던 일인다역의 레전드다.
우리의 누미 라파스가 <월요일이 사라졌다(2017)>를 발표할 시점에 <오펀블랙(2013-2017)>은 이미 종영을 앞두고 있었다. 시대를 한참 앞서간 디스토피아였다. <오펀블랙>은 곧 10주년을 맞는다.
블로그를 막 시작했던 2년 전, 설날 연휴 한정으로 1일 1포스팅을 했다. 넷플릭스, 왓챠에서 엄선한 '명절 추천 미드'를 장르별로 소개한 포스팅이다. 그 시리즈의 첫 번째가 디스토피아인 <오펀블랙>과 <월요일이 사라졌다>였다. 이들의 프로토타입인 <앨리어스>를 디즈니플러스 덕분에 뒤늦게 발견했다.
업그레이드된 2023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평론>은 개별 작품에 대한 찬양(?)보다 작품들의 시대적 의미를 주목할 예정이다. 세기를 열어젖힌 <앨리어스(2001-2006)>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는 범죄스릴러를 시작으로, 21세기 드라마에서 발견되는 특이사항을 정리해 보자.
여성배우의 원톱 주연, 21세기 여전사 퍼포먼스의 원조인 <앨리어스>에서 제니퍼 가너는 수많은 '가명'을 부여받고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다. 당시의 패션은 지금 보면 너무 유치해서 같은 세대인 것이 창피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이후에 등장한 <오펀블랙>이나 <화이트칼라(2009-2013)>에서 변장술을 쌓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면, <앨리어스>의 프론티어 정신에 감탄하게 된다.
<오펀블랙>은 넷플릭스의 스트리밍이 종료된 상태이나(시청 가능한 서비스 제보 바람) 제작 중인 <오펀블랙 리부트>의 주인공이 바로, 마블의 <제시카 존스>라고 한다. 마블의 <변호사 쉬헐크>, <제시카 존스>는 물론 그 흔한 <스파이더맨>도 보지는 못했지만 여전사인 제시카 존스를 맡은 배우, 크리스틴 리터(Krysten Ritter)는 최근에도 봤다. 그녀는 바로 <가십걸>의 세레나 이모 '캐롤'의 아역이자, <길모어걸스>의 로리 친구 '루시'이기 때문이다.
<오펀블랙>의 주요 소재인 복제인간 이슈가 이전 시대의 <앨리어스>에서는 판타지에 가까운 미래기술로 등장한다. 자세한 방법은 그다지 과학적이지도 않지만, 인간의 DNA를 바꿔서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하는 (불법 유전자 복제) 기술이 등장하는데 이 시술을 받은 이들이 시드니 브리스토의 친구와 본인의 얼굴과 신체를 가지고 나타나서 모두를 교란시킨다.
<오펀블랙>에서 다소 불법적인 시술로 같은 배아를 잉태한 여러 명의 대리모는 쌍둥이를 대량생산했다. 시간이 흘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쌍둥이들이 도플갱어를 보고 놀라서 서로를 찾아 음모를 밝혀내는 디스토피아이다. 여기서 BT덕후*인 척하는 BT전공자**는 그저 웃지요. 극적인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탄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도 과학적인 오류는 수시로 발견된다. 몰입도와 작품성을 해치지 않는 선이라면 '시적 허용'의 맥락으로 넘겨야 한다.
두 작품의 중간지점에는 <캐슬(2009-2016)>이 있다. 성형수술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범죄집단이 법의학자와 형사로 성형한 누군가를 살해한다. 그리고 스릴러 요소가 많지 않은 시트콤에도 도플갱어라는 소재가 종종 등장한다. 인구가 많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특성상 외모나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을 보고 놀라는 경험을 상당히 보편적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해 본다.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마니아
**바이오소재공학(Bio Material Engineering)
<오펀블랙>의 오프닝에서 진짜 경찰 '베스'와 그녀의 자살을 목격한 마약상 '새라'의 운명적 만남에 시선강탈을 당했다. 이 치명적인 취향저격 드라마를 보느라 15시간이 순삭되었다. 가급적 주말이나 연휴에 시작하는 것을 권장한다.
특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쌍둥이들이 자신들의 외모가 같다는 점을 활용해서 서로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꿀잼이다. 이때 변장, 그러니까 분장팀의 포인트는 변장이 약간 어설퍼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베스'로 변장한 '새라'가 그랬듯이.
제삼자의 눈에는 '베스'로 보이더라도 가족, 찐친과 쌍둥이들을 포함해, 특히 관객의 눈에는 '너 베스 아니지'로 보여야 한다. <오펀블랙> 밈 중에는 이와 같이 '두 번 변장한' 타티아나의 사진 모음도 있다.
(핀터레스트 참고)
<오펀블랙>과 이후에 등장할 <킬링이브>를 보면서 또 다른 추론을 하게 되었다. 영국 출신의 BBC 아메리카에서 제작한 미국&캐나다 드라마는 미국 제작사의 다른 미국 드라마 전체(?)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었다. 좀 더 비인간적으로 잔인하고(거의 모든 악당의 뿌리는 나치즘) 드라마틱한 요소(달달함, 애틋함은 한국드라마가 최고지.)가 적고, 실험적인 요소(실험적인 스토리 또는 진짜 과학적인 실험)가 강하다는 점도 있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분위기의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앨리어스>만 해도 신화적 모성애, 부성애가 드라마를 지배하는데(그래서 그걸 역이용하는 '유럽 출신' 캐릭터들이 있음) <오펀블랙>은 보통사람(새라)의 평범한 모성애(새라의 모성애도 보통은 넘지만 미국 엄마들처럼 호들갑스럽지는 않으며 새라 자체가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닮은 츤데레 캐릭터)와 남의 모성애를 무시하고 실험하는 잔인한(나치의 후예일 것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비교적 미국과 닮아있는 몬트리올(?) 서벌브의 싸커맘 '앨리슨'의 경우 미드에서는 클리셰로만 존재할 스타일인데 <오펀블랙>에서는 적당히 우아하고 가식적이되 그런 특징을 작전에 활용하는 등 상당한 개성을 과시한다. 한 명의 배우가 일인다역을 하는 작품 외적인 조건을 전제로 캐릭터에게 상반되는 개성을 부여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로 교류 없이 성장한 결과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발현한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기승전모성애로 수렴하는 미국 드라마 속 여성들과는 다르게 <오펀블랙>의 쌍둥이들은 쌍둥이임을 알기 전에도 각자 본인의 아이덴티티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