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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Dec 19. 2022

여전사의 탄생

미드 <앨리어스>와 영화 <밀레니엄> 3부작

우리 시대의 아이콘 중 하나인 '제이슨 본'을 등장시킨 <본 아이덴티티(2002)>와 <앨리어스(2001)>의 핵심 키워드는 CIA다. 또 다른 아이콘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등장시킨 시리즈의 서막,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하 <밀레니엄> 시리즈)와 <앨리어스>의 핵심 키워드는 (구) 소비에트 연방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와 <제이스 > 시리즈 역시 닮은꼴이다. 소설이 원작인  시리즈는 시대를 앞서간 매력적인 스토리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충분히 확보했다.   인기가 너무도 많아서 저자의 사후에도 다른 작가에 의해 후속작이 나왔다.   원작은 3부작이므로 일단 3부까지 추천한다. 특히 <밀레니엄> 3부작은 스티그 라르손의 사후 저작권 문제도 있다.




*영문 제목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밀레니엄> 시리즈의 여전사 리스베트 살란데르


<앨리어스>와 <밀레니엄>, 곧 메인 작품으로 이 글에 등장하겠지만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블랙리스트(2013)>에서도 반복되는 시나리오는 가족 중에 구 소련 KGB 출신 스파이가 있다는 것이다. 혈연이 스포일러, 인 작품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생략한다.


로버트 러들럼의 원작 소설이 80년대부터 존재했던 <본 아이덴티티>의 영화 버전이 개봉을 앞두고 있었을 때, J.J. 에이브럼스*의 드라마 <앨리어스>가 방영을 시작했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원작이 등장했다. 스티그 라르손의 유일한 작품이자 유작인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테니, 원작 리뷰는 인생 리뷰로 아껴두고 영화로 넘어가 보자.



사이버 범죄 수사의 등장


<앨리어스>에서 CIA의 유능한 해커 '마샬'이 SF적인 마술을 한참 보여주고 있을 때, 스티그 라르손은 이런 미국적인 너드(말 많고 창백한, 운둔자형 모범생)의 이미지를 무색하게 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소녀 '리스베트 살란데르'에게 사진 기억력이 있는 천재 해커라는 아주 트렌디한 능력을 부여한다.


이들은 <블랙리스트>의 아람, <크리미널 마인드>의 페넬로페, <리벤지>의 놀란 등 21세기 수사의 결정적인 한 방을 책임지는 캐릭터로 진화한다. 리스베트와 그녀의 해커 후예들은 이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녀와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가 등장한 이후로 특히 미국에서 그동안 희화화되었던 범생이들도 점차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21세기 여전사의 프로토타입


<밀레니엄>의 등장 이후, 방구석덕후 러시아언니**인 리스베트는 스웨덴의 국민 캐릭터 삐삐와 올블랙 로커를 콜라보한 듯한, 외롭고 강인한 버전의 러시아계 스웨덴 여전사로 21세기 여전사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시나리오는 <앨리어스>와 더 많이 비슷한 <블랙리스트>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킨(엘리자베스, 애칭 리즈는 이름도 리스베트와 같은 어원이고 해당 캐릭터는 시즌8까지 등장 후 하차했으나 여전히 주연이다.)의 무채색 패션에서도 그녀가 보이고, 러시아와는 별 관련이 없을 줄 알았던 <킬링 이브>의 이브(산드라 오)와 빌라넬의 썸에서도 리스베트의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썸녀인 미리엄(중국계 여성)과 그녀 자신의 관계가 연상된다.


여전사 누아르보다는 시트콤의 성격이 강한,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로사 디아즈는 의도적으로 리스베트 캐릭터를 구현(코스프레)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로사는 해당 작품을 언급한 대사도 했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실제 성격과 남들에게 보여주는 성격이 다소 다른, 즉 보호색을 입은 것으로 밝혀진다.



*김윤진이 출연해서 잘 알려진 <로스트>의 작가이기도 하다.

**산책덕후 한국언니(=필자)의 패러디, 산책덕후 영국언니(=버지니아 울프, 엘리자베스 베넷)의 패러디의 패러디.

<앨리어스>의 여전사 시드니 브리스토


전설적인 작품 <크리미널 마인드(2005)> 이후로 범죄 스릴러 미드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린,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링(범죄 수사의 기법)과 수사관 본인의 개인사와 연관되어 누명을 썼다가 그로부터 벗어나는 시나리오는 시대를 앞서간* <밀레니엄>의 핵심적인 사건이다. 다만 이 엄청난 책이 영화가 되는데 10년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원작 소설 영상화의 빛과 그림자


미국에서 알아주는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과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배우 누미 라파스가 등장하는 <밀레니엄(2009)> 3부작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핀처 감독은 1부를 영화화한 뒤, 스티그 라르손 사후 다른 작가가 이어간 작품의 영상화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누미 라파스***가 등장하는 스웨덴 영화는 3부작 전체가 제작되었고 영화로서의 작품성보다 원작에 충실한 드라마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쓰는 이 글은 드라마 <앨리어스>와 소설 <밀레니엄> 3부작을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연쇄살인범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범죄 심리학이 발전하고 자리잡은 것이 20세기 말이고 미국 드라마 등의 시리즈로 인기몰이를 한 것이 21세기 초다. 한국에서도 <살인의 추억>과 같은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실제 사건 시기와 영화라는 컨텐츠, 오락거리 이상의 진지한 작품으로 재조명된 시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큰 차이라기보다는 유의미한 차이.


*데이빗 핀처는 2010년작 <소셜 네트워크>로 유명하지만 2002년작 <패닉룸>과 1999년작 <파이트 클럽>, 특히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1995년작 <세븐>이 그의 시그니처를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밀레니엄> 1부와 핀처 감독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는 <세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미 라파스의 대표작으로 2018년작 <월요일이 사라졌다>와 2011년작 <셜록 홈스: 그림자 게임>을 추천한다.

누미 라파스


스릴러에서 여성 배우의 원탑 주연이라는 과감한 행보를 보여주었던 <앨리어스>의 생사를 쥐고 있었던 시드니 브리스토 역의 제니퍼 가너는 기록적인 다면성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스파이들의 미인계는 추후에 따로 언급할 예정이다.) 한편 <밀레니엄>의 세계관(북유럽-선진국-판타지를 파괴하는 극사실주의)을 전 세계의 인기 콘텐츠로 키워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누미 라파스가 맡아서 다행이다.


데이빗 핀처는 필자가 2005년에 언론정보학과 전공수업(본인의 전공은 아님) 과제로 제출했을 정도로 오래된 연구, 덕질의 대상이었다. 한편 핀처의 영화들보다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훨씬 더 사랑하기에 <밀레니엄> 미국판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번은 봤다. 기억이 흐릿할 때 보면 괜찮다.


<밀레니엄> 스웨덴판도 두 번은 봤다. 스웨덴판은 약 2000페이지 분량의 책 세 권을 러닝타임 7시간 9분으로 요약한 버전이다. 책으로 3부작을 다 읽는데 40시간 이상 걸리는 분량이지만 4번 이상 읽었다. 영어판은 원서읽기 트레이닝을 위해 읽었을 때 6개월(약 300시간)이 걸렸다. 지금 읽으면 100시간 안에 완독할 것이다.


영화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원작 소설을 읽고 상상하면서 울고 웃었던 장면이 더 생생하다. 시리즈 영화나 드라마 애청자라면, 스릴러를 선호한다면 누미 라파스 버전으로 3부작 모두를 7시간에 볼 수 있는 스웨덴판을 추천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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