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Feb 26. 2023

미국 드라마 속 멜팅팟의 진화

미드 <모던 패일리>와 <브루클린 나인-나인>

범죄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의 경계는 엉뚱한 느와르 로맨스릴러 <캐슬>에서 이미 무너졌다. 판타지와 SF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처럼 로맨스와 심리스릴러(밀당에서 치정범죄까지)의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그리 로맨틱하지도 않은 '그냥 코미디'가 스릴러와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로코계열의 종합선물세트가 <볼드타입>이라면, 이와 같은 통합장르형 종합선물세트계의 선두에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있다.




<브루클린 나인-나인(2013-2021, 이하 브나나)>은 주요 직장배경인 NYPD*에서 혈연보다 징한 인연을 맺게 되는 <모던 패밀리>의 경찰서 버전이다. 다른 관할서의 NYPD에서 펼쳐지는 <캐슬>에는 고담(Gotham)시티 스타일 느와르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편 코미디가 스릴러를 압도하는 <브나나>의 구성은 오히려 그 옛날 <프렌즈>와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처럼 뉴욕인듯 뉴욕 아닌 세트장** 촬영분이 거의 전부다. 가족 드라마계열 시트콤들과 비교해봐도 고퀄 대화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프렌즈>, <모던 패밀리>와 특히 <길모어 걸스>는 영어공부용 미드 입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격 멜팅팟 시대를 개막한

모던한 프리쳇 패밀리


<모던 패밀리(2009-2020)>에서 모던, 그럼에도 패밀리가 되는 가장 큰 두가지 요소는 글로리아와 릴리의 (당연히 출신 국가와) 등장배경이다. 프리쳇 가의 장녀, 클레어보다 젊은 콜롬비아인 새엄마로 백인 중산층 금발 가족에 합류한 글로리아는 동네 일진 싸커맘들을 기죽이는 이 구역의 몸짱아줌마.  누나들과는 나름 사이가 좋지만, 아빠들과는 어색한 두 아들이 이루는 게이 커플이 베트남에서 입양해오는, 이 시리즈의 오프닝을 담당한 릴리(한국계 배우)는 한 동네에 사는 대가족의 내부에서 다인종 사회, 멜팅팟***을 구성한다.




*New York Police Department

**실제로 <프렌즈>의 실내 촬영 대부분이 이루어진 세트장은 LA에 있었다고 한다.

***Melting Pot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각각의 생활양식이 녹아드는 모습을 은유하는 용어다.

<모던패밀리>의 글로리아와 릴리


<길모어 걸스>, <위기의 주부들>과 같은 이전 시대의 드라마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사람들, 심지어 아프리칸-아메리칸 마저도 대부분 같은 인종끼리 가족을 구성하는 모습과 다르다. 더욱 다양한 인종이 촘촘하게 가까워지는 현상을 좀더 '모던'이라고 말하듯, 이 드라마는 그 상황을 비틀고 뒤집는다. 대체로 Control freak(통제광)인 프리쳇 백인들보다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글로리아와 릴리는 기존의 스테레오타입 단역에서 벗어나 (흑인으로 획일화되지 않은) 유색인종 여성으로 연대한다.


아무래도 비백인의 벽을 이미 느껴버린 유색인종 여성 집단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평범한' 금발 백인 여성을 구현한 클레어와 흑발이라서 더욱 매력적인 헤르미온느, 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너드' 앨릭스는 어쩔 수 없이 프리쳇 집안의 기둥이다. 허당이면서도 지성미가 탄탄한 글로리아, 앨릭스, 릴리의 케미가 특히 좋아서 좋다.



뉴욕 브루클린의

실제 인구분포를 반영하다


<브나나>는 혈연이라는 한계가 없으므로 구성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흑인 게이 경찰서장 레이먼드와 흑인 딸바보 강력반장 테리가 관리하는 99경찰서에는 라틴 아메리카계 여성 형사인 로사와 에이미, 바보인 척 하는 천재 유대계 형사인 제이크 등이 있다.


이 작품은 멀티캐스팅 또는 여러명의 핵심 조연이 등장하는 드라마 중에서도 2인 이상의 흑인이 레귤러로 출연하는 <화이트칼라(2009-2014)>, <범죄의 재구성(2014-2020)>과 함께 오바마 시대의 대표 스릴러라고도 할 수 있다. 코믹한 요소가 있더라도 진지한 스릴러에서 주요 역할을 맡은 경찰이나 법조인으로 흑인 여성 및 흑인 레즈비언과 흑인 게이가 '외롭지 않게' 등장한다는 것이 이 작품들의 포인트다. 이 역시 억지로 비율을 늘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다이하드>와 같은 20세기 경찰 영화에 등장했던 흑인 캐릭터와는 확연히 다르다.  



(좌측부터) 에이미, 지나, 로사


<브나나> 특히 라틴계 여성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유색인종의 (실제로는  의미없는) 참여로 생색내는 업계 관행을 풍자한다. <가십걸>에서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단역으로 등장했던 멜리사 푸메로는 <브나나> 센터인 제이크 페랄타와 결혼하는 에이미 산티아고 역을 열연한다.  커플은 서장 레이먼드를 친부보다  사랑하며 직장에 거의 올인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말도 감동  자체였지만 스포일러이므로 직접 감상하길 권한다.


<모던 패밀리>에서 글로리아의 친동생으로 출연했던 스테파니 비트리즈는 오프닝/엔딩 크레딧에 두번째로 등장한다. 그녀는 이 드라마가 강조하는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로서의 '인간의 조건'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는 진주인공 로사 디아즈 역을 맡았다. 로사는 극중에서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 살란데르( 추정되는) 코스프레를 한다. 피어싱은 안했지만 검정색 가죽자켓과 짙은 자주색 립스틱으로 피도 눈물도 없을  같은 시크한 형사임을 어필한다. 하지만 살란데르도 일정부분 그러했듯 로사의 스타일링 위장임이 드러났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본인이 '감성' 담당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로사의 스타일링 자체가 또다른 에피소드를 구성할 정도로 만화적 캐릭터이며 그 모든 커밍아웃을 지나왔는데도 여전히 약간은 폭주족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좌측부터) 로사, 제이크, 에이미


<브나나> 앨릭스 또는 헤르미온느 포지션을 맡은 모범생 에이미와  구역의 반항적 여전사인 로사는 글로리아 프리쳇과 같은 라틴계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 단호히 거부한다. 글로리아도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여성성을 무심하게 소비하는 극중 캐릭터들과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경고성 반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이미와 로사를 보고 있으면 한정된 포지션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특히 같은 인종) 여성들의 일상다반사가 웃프다.  


<브나나> 최근 시즌에는 임시 서장으로 아시안 여성이 등장한다. 아시안 여성이 타이틀 롤을 맡은 <킬링이브(2018-2022)>, 여성 주인공이 하차하면서 레귤러  유일한 여성 배우가 아시안 여성이  <블랙리스트(2013-2023)> 외에는 아시안 여성이 주요 인물이나 권력자로 등장하기 어려웠던 장르가 열리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이전 07화 뉴욕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을 다시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