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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Feb 09. 2023

뉴욕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을 다시쓰다

미드 <볼드타입>과 뉴욕 드라마 비틀기

뉴욕에서 일과 사랑을 치열하게 헤쳐나가는 (주로 싱글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섹스 앤 더 시티> 이후로 장르화되었다. 그러나 대런 스타의 여성 중심적 도시 서사가 '1%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볼드 타입>은 그보다는 많이 확장되고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라고 봐야한다.


직역하면 '굵은 서체, 굵게 쓰다'라는 의미가 되는 명사이자 동사(여기서는 명사)인 Boldtype은 전체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지만 시즌 1 초반의 한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굵게 자신들의 역사를 쓰고 거침없이 활동함을 의미하는 미국적, 상징적인 단어라 좀더 익숙한 '볼드체'라는 일상용어로 애매하게 외래어 처리를 해도 직관적 이해가 어렵지만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긴 하다.



*낸시 프라이저의 <99% 페미니즘>, 볼프강 M. 슈미트, 올레 니모엔의 <인플루언서: 디지털 시대의 인간 광고판> 34p에서 재인용

원제는 '더 볼드타입'이고, 명사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캐치 프라이즈인 <유고걸>이나 <걸스 비 앰비셔스>가 제목이었다면, 영어와 영어권 문화를 깊이 알지 못하더라도 캐치할 수 있겠으나 (드라마 첫방 당시의 내 상황-보기보다 영어를 못함-을 대입해 보는 중) 결정적으로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그 감성이 통하는 세대가 아니다.



요즘 뉴욕 언니들의 고민은?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의 밀레니얼(80년대생)버전인 <영거(2015-2021)>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볼드타입(2016-2021)>은 편집장, 경영진 세대인 70년대생과 인턴, 인플루언서 세대인 90년대생으로 양분된다.


<영거>에서 70년대생과 80년대생이 결국 하나의 이너써클로 대통합된다는 불가능한 꿈을 이루는 것과 다르게, <볼드타입>에서는 한때 신세대(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주로 90년대에 20대였던 분들은 현재 기성세대이므로)였던 이들이 '진짜 요즘 사람들'에게 세상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오해와 참견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이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볼드타입>은 기성세대를 묘사할때도 공정하다. 프라다를 입는 악마를 꼰대나 악역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의 치열한 인생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모든 배역에게 공정하지는 않다. 악마 중 하나로 묘사되는 서튼의 보스, 부편집장인 '아시안 여성'은 악역인 상태로 서튼의 부서 이동과 함께 아무 설명없이 사라진다.)



유사작 <영거>의 주인공들은 2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여성들


<에밀리, 파리에 가다(2020-2023)>의 에밀리와 닮은꼴 배우인 케이티 스티븐스가 맡은 '제인'이라는 젊은 작가는 <볼드타입>의 주요 배경인 여성 패션 잡지 '스칼렛'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예비 편집장으로 무럭무럭 성장한다. 다만 그 과정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녀가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현실정치와 임상실험 그 자체다. 유방암 유전자를 가진 페미니스트 여성작가인 제인은 21세기의 제인 오스틴을 상징하는 걸까.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 트위터)

전문가가 필요한 레거시미디어의

젊은 인플루언서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경로에 따라 <볼드타입>을 드디어 보게 해준 직전의 작품, <두 인생을 살아봐>에서도 주인공 릴리 라인하트*의 친구를 맡은 아이샤 디는 '캣'이라는 소셜미디어 디렉터다. 관리자급 연차를 가진 프리-밀레니얼 세대(70년대 이전 출생자)가 커버할 수 없는 영역,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간부급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다. 그런데 흑인 혼혈, 양성애자라는 (잠복하고 있던) 정체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대혼란에 빠지는 인물이다.


캣은 최신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다양성'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이런 트렌드를 그녀 본인이 극중에서 비판한다. 슬래셔무비를 대놓고 놀리는 슬래셔무비인 <캐빈 인더 우즈>의 칙릿 버전이 <볼드타입>일지도 모르겠다.       



*미드 <리버데일>의 주인공인 '베티 쿠퍼'로 널리 알려진 배우다.

**스칼렛 공식 계정에 발언하는 사람이 캣이고, 따라서 그녀는 개인 계정에도 막말을 하면 안 된다.

캣, 서튼, 제인의 끈끈한 우정도 킬링 포인트


유사작품인 대런 스타의 뉴욕 드라마 <영거>의 바로 그 주인공, 20대인척 하는 40대 싱글맘 라이자를 맡은 브로드웨이 스타배우는 서튼 포스터*다. 그녀와 동명의 배역, 서튼 브레이디를 맡은 메건 페이의 데뷔작은 무려 <가십걸(2007-2012)>이다. 블레어와 척을 방해하기 위해 대장몬스터인 조지나를 지원하는 친구 역할의 단역으로 데뷔했다.



패션계 열정페이를 고발하다


<볼드타입>에서 서튼과 리처드의 비밀연애는 스릴러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주요한 메시지인 '세대 갈등과 통합'을 상징한다. 리처드 역의 샘 페이지는 무려 <가십걸>에서도 주인공 세레나와 비밀연애를 했다.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만난 세레나와는 사제관계였지만, 극중 또는 실제의 나이 차이**는 서튼과 더 크다. 그 모든 시련을 겪어냈는데도 이 커플은 <브루클린 나인나인(2013-2021)>의 에이미와 제이크처럼 '부모되기' 이슈로 역대급 갈등을 겪는다. 서튼의 커리어와 방황, 여자들의 우정을 리처드가 계속 지지해왔기 때문에 그의 유일한 소원이 원망스럽진 않다.


서튼은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자리잡기까지 부편집장의 비서와 수석 스타일리스트의 비서 겸 패션 디자인 아카데미의 학생을 거쳐 자아실현에 성공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5년 동안 인턴***생활을 하고 비밀연애중인 남친의 경제적 지원을 물리치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쪼개어 디자이너 연수를 하는 등 그 이상의 희생을 감내한 인물이다.


대런 스타의 히로인, 에밀리와 라이자도 각자의 고충이 있었지만 그녀들의 커리어에는 우연적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현실속의 평행세계에서 수고하는 그녀들이 와닿지 않고 그저 그 우연한 성공(?)들에 주로 빈정상할 뿐이다. 시카고 여자가 파리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갑자기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시나리오-그게 말이 돼??-를 80년대 이후 출생자가 썼을 리가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미드 <브루클린 나인나인>에서 브로드웨이의 거물로 언급되었으며, <길모어걸스: 한 해의 스케치>에 까메오처럼 등장하는 배우다. 뮤지컬이나 기사가 아닌 <영거>로 접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 페이지가 등장하는 <가십걸> 시즌 4에서 세레나는 20, 그가 맡은 교수 역은 30 초반 정도인데 <볼드타입> 시즌 1에서는 서튼이 20 중반, 리처드는 40 초반으로 등장한다. 사제관계에서 띠동갑 전후의 나이차이는 크지만, 이제는 성인들의 만남이므로 사내연애일때 15 이상의 나이차는 그리 놀랍지 않다. 또한  페이지는 같은 인물이지만 여자친구인 세레나 역의 블레이크 라이블리보다 서튼 역의 메건 페이가 4 이상 어리다. 메건의 데뷔작인 <가십걸>에서 세레나가 재수할 , 이미 석사 학위 보유자라고 뻐기며  배스를 골탕먹인 그녀가 실제로는 19세였다. 그때도 (아닌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정황상으로는) 어시스트였다.   


***비서 역할을 하는 인턴의 공식 직책은 어시스트다. 경호원을 겸하거나 고위 관료를 담당하는 전문 비서직이 아니라 일개 잡지사의 부편집장이나 수석 스타일리스트를 보좌하는 어시스트는 박봉의 계약직이다. 특히 열정페이로 악명이 높은 패션계에서는 이런 '어시'들의 열정을 착취해서 협찬을 받고 광고비를 따내는데, 수입을 가져가는 사람은 리처드와 같이 가끔 회의나 하러 오는 이사진이다.  


이들은 대표님 대신 프랑스에 파견된 광고회사 일개 사원과 출판사 일개 인턴이다. 패셔너블해야하는 결정적 이유도 없는데다 명품을 휘감을 돈도 시간도 없는 배역이다. 프랑스에간 에밀리는 마치 미국집을 팔아서 프랑스 백화점을 털었을 법 한 난해한 패션을 에피소드마다 반복한다. 나이를 속이고 재취업한 라이자는 어려보이는 브루클린 히피 스타일을 추구하기에 돈보다는 특히 시간과 체력이 많이 드는 패션이다. 그녀의 실제 나이와 생활의 고충을 따져보면 (40대의 몸으로 킬힐 신고 인턴 생활을 하는 틈틈이 벼룩시장을 털었다고?) 이것도 말이 안된다. 이건 그냥 제작진이 제 2의 '캐리 브래드쇼'라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려고 오버-스타일링*한 것이다.


패션 스타일리스트라는 유일무이한 커리어에 사활을 걸었던 <볼드타입>의 서튼 브레이디는 정작 자기 옷에 그렇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이와 드랙퀸을 포함한 '스칼렛'의 모든 주요 인물은 당연히 패셔너블해야하고, 패셔너블하지만 패션 이상의 직업윤리가 있다. 그들의 패션은 드라마의 개연성과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표현한다.


여성주의적 여성패션지를 지향하는 '스칼렛'의 현 편집장의 지휘에 따라 이들은 마침내 '크고 마른 몸'이라는 패션계의 불문율까지 내동댕이친다. 보통사람보다 크지만 몸에 비해 골격이 가늘면서도 끊임없이 식이요법으로 그 라인을 유지해야 하는 전문 모델 위주의 화보를 뒤엎고 신체조건의 제한없는 일반인 모델 위주의 화보를 재촬영한다. 말로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자'고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시도를 하기 위해 존재했다.  

(다음편에 계속)



*애초에 다른 친구들보다 가난한 캐리가 글을 팔아서 좁디좁은 집에 신발을 사모으는 것도 허황된 설정이지만 그때는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대충 넘어갔다. 지금은 노오력 하는 사람은 따로있는데 별 거 안하고 혜택을 받는 벼락스타가 등장하면 대부분의 2030세대가 분노하고 그 즉시 소셜미디어에서 활활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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