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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ca Sep 23. 2016

커피 제대로 즐기는 법?

모르고 마셔도 충분히 맛있더라


이젠 말하는 입이 아프고 듣는 귀에 딱지가 떨어질 이야기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발상지이자 커피의 대명사고 자부심 그 자체다. 사실 직접 마셔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장 검색해봐도 그 찬사가 쏟아진다. '커피의 귀부인'이라는 비유는 이게 도대체 무슨 무슨 맛일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창하다.


사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이미 마셔봤다. 우리나라 사람들 연간 커피 소비량이 500잔에 달한다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프랜차이즈에서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포함한 블렌딩으로 커피를 제공하니 사실상 에티오피아 커피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핸드드립 잘한다고 소문난 카페에 가도 어김없이 에티오피아 커피를 팔고 있다. 커피를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쉽게 사 먹을 금액은 아니다. 게다가 종류는 왜 이리 많은지 예가체프, 하라, 시다모 세 종류만 있으면 그나마 양반이다. 코케, 모모라, 아리차 이건 또 뭔가 싶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하나같이 놀라 뒤집어진다. 한국의 물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들도 모르는 원두를 5불도 넘는 금액을 주고 마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 거의 모든 현지인들은 우리가 쉽게 마시는 스페셜티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르가체프면 이르가체프지, 아리차는 뭐하는 커피냐고 되묻는 경우가 허다하다.


뻔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자부하는 자국의 커피다. 어째서 현지인들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걸까? 에티오피아에서 9,164km나 떨어진, 에티오피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인들이 어째서?


뻔한 자답을 하자면, 에티오피아 커피는 국가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된다. 수출용과 내수용이 엄격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일정 등급 이상의 커피는 업자가 아닌 이상 맛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사실 현지인들에게는 내수용 커피도 결코 저렴한 금액이 아니다. 수출용 커피가 거래된다 해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가볍게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여정은 생각보다 길다. (Google Map)



그렇다면 현지인들은 우리가 그토록 극찬하는 감미로운 산미와 풍성한 아로마를 맛보지 못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절대 아니었다. 현지에서 내가 마신 커피는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맛과 깊은 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커피의 맛과 향이 등급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마셨던 내수용 커피가 한국에서 마셨던 그 어떤 것보다 좋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 기존의 등급체계에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한 경험이었다.


에티오피아 시다마에서 거래되는 생두의 소매가는 1kg에 3천 원에서 5천 원 남짓한 수준이다. 물론 우리가 구매하는 가격에는 운송비, 관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등급이 높은 커피가 더 비쌀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낮은 질의 커피를 값싸게 사서 그 어느 커피보다 맛 좋게 먹었다.



딜라가 3~4천 원 정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르가체프가 5~6천 원 정도로 가장 비쌌다.



양질의 커피를 정성스레 만들어 팔고 즐기는 사람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런 역설적인 경험으로 생각하는 바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고향에 가보니 사람들은 우리처럼 복잡하게 먹지 않더라, 충분히 맛 좋은 커피와 시간을 즐길 수 있더라, 때문에 굳이 어렵게 분석해가며 마시는 것만이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1년에 500잔이나 마시는 커피는 이제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극적인 식사를 위로하는 입가심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와의 가벼운 만남을 시작할 매개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커피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커피 제대로 즐기는 법'은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저렴한 커피의 품질을 폄하하는 사람도 줄었고, 밥 한 끼보다 비싼 커피를 욕하는 사람도 줄었다. (사실 욕 할만한 문제도 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과도하게 포장된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본주의까지 들먹일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인식이 시장에서 만들어진 틀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





고급진 어휘로 정성스레 포장할 필요가 있는 커피도 있다.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되었고 그에 따라 시장의 진보적인 발전을 이뤄진다면 분명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http://coffeetv.co.kr/?p=19767)

하지만, 적어도 일의 순서는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무조건 비싸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란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090214465933541)


"우리는 그냥 맛있고, 의식을 가지고 공급되며, 공정한 가격의 준비가 잘된 커피에만 관심을 가지면 된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나, 찬양하는 사람들 역시 커피가 왜 좋은지에 대해서 마치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것 마냥 억지로 미학적인 말을 쓰도록 하는 일에는 한발 물러나서 볼 필요가 있다. 커피, 그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인용 : http://coffeetv.co.kr/?p=9560)


알고 마시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게 커피다. 하지만 가끔은 모르고 마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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