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조마리, 이준호!
할아버지께서 사람이 된 두 천사에게 집을 맡기고 떠났다. 두 천사는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 한 장에 담긴 내용을 개봉했다.
<나는 긴 여행을 갑니다. 내가 없는 동안 집을 맡아 주세요. 이 이름을 사용하세요. 조마리. 이준호.>
두 천사 중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이 조마리가 되었다. 다른 한 천사는 남자의 몸을 가졌다. 이준호가 되었다. 사람이 된 천사가 영적인 기억은 갖되 능력은 잃었기에 할아버지가 왜 여자는 조 씨로, 남자는 이 씨로 정했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일종의 무력감을 느꼈는데, 사람이 되었음을 실감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이 잇따랐다. 이웃 사람들은 성씨가 다른 남녀가 같이 사는 모습에 지나친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 호기심에 먼저 예민한 반응을 보인 쪽은 조마리였다. 조마리가 의견을 말했다.
사귀기로 하자. 동거. 우리가 사람이 되었다고 그들의 삶을 모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서로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간섭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로 감정이 뒤섞인다면 인간처럼 싸우거나 관계를 망치게 될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규칙은 지켰으면 해.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미미한 계약들 말이야. 마리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할아버지의 방 책상에서 종이와 펜을 가지고 나왔다. 부엌 식탁 위에 올려진 a4 종이는 빠른 속도로 까만 지렁이와 개미들로 채워져 갔다. 마리에게 영적인 능력 대신에 글자나 표를 그리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마리가 하던 일을 미루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마리의 말과 행동의 연결을 보고 준호는 마리에 대해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마리의 눈이 몽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준호의 가설이 결론을 내렸다. 조마리는 복잡하다.
어느 때에, 가슴으로 바람 같은 종류의 재질을 갖고 있는 물질이 뚫고 들어 와 마음을 누르는 것 같아 누구에게라도 느꼈던 그대로를 말하고 싶은 욕구로 마리는 어쩔 줄 몰라했다. 조마리가 이런 마음을 이준호에게 설명하고 싶어도 그 마음은 부드러운 바람결에 따가워지는 마음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준호에게 어떻게 들릴지 몰라 걱정부터 되었다. <저기 이준호. 왜? 나 가끔 이상해. 왜? 바람이 따가워.> 준호는 이때 마리에게 전해 들은 따가운 바람 이야기에 자신이 서 있던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곧이어 미미한 계약들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준호와 마리의 상태는 찐득한 알에서 갓 태어난 아기 새의 모습과 비슷했다. 이 세계에 태어난 자신들을 위해 기도 해 줄 천사가 없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린 것은 준호였다. 복잡한 세계는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웰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