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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Sep 09. 2024

두 천사(4)

애벌레

  햇빛이 잎사귀들을 반짝이게 하는 날에 마리는 어떤 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안절부절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고정된 연두색 애벌레의 몸에서 흐르는 액체를 보고 미지로부터 날아온 충격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이런 의지 동결이 몸에 작용하는 힘을 통해 사람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빌라 단지를 둘러싼 화단 위에 오색의 꽃과 풀이 여름 햇빛의 자비를 받아 기름진 색깔을 내고 그 아래에 사는 애벌레는 공짜로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삶이 가벼운 무게라 짐작했다. 삶이 공짜라고 여긴 것에 대한 벌로 어린 애벌레가 칼에 찔렸다. 

  사실은 그 호사는 공짜가 아니라 곤충들이 온종일 상납하는 노동의 대가였던 것이다. 마리는 그 세계를 높은 곳에서 관망하는 즐거움에 잠시 빠져 있었다. 곧 마리의 정신이 흐름을 바꾸어 정신의 공기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슬픔은 그 사이에,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슬픔은 지독한 최루탄 같았다. 마리는 방독면도 없이 최루탄이 가득 찬 뿌연 공간 안에서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애벌레를 가지에 못 박은 나무를 들여다보았다. 나무는 몸이 휘지 않았다면 일종의 기둥이었다. 몸의 절반은 기둥이고 절반가량이 옆으로 휘어 나뭇가지와 잎이 축 늘어져 허리가 휘어버린 늙은 나무였다.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가 휜 나무에게 남성성을 부여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듯, 할아버지를 원망하듯 나무를 싫어했다. 애벌레에게 느낀 연민의 슬픔은 마리의 가슴을 압박했다. 


  멀리 피해있던 동무가 얼음에서 땡으로 구원하듯 준호가 나타나 마리를 불렀다. 조마리. 왜 또. 뭐가 슬픈데.  마리가 숨을 크게 들이켜 쉬었다. 단지에 나무가 몇 그루 있는지 알아? 여덟 그루야. 일곱 그루는 곧게 하늘로 뻗었어. 여기 서 있는 나무만 한쪽으로 휘었잖아. 준호가 끼어들었다. 그러게. 이것만 수형이 특이해.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그게 슬퍼? 들어봐. 처음엔 휘어진 모양 때문에 신기하고 나도 모르게 끌려서 가까이 왔는데, 여기 봐봐. 애벌레. 마리의 눈에서 동그란 석류알 모양의 눈물 방울이 왼쪽에서 한 방울, 오른쪽에서 한 방울 흘렀다. 또르르 소리가 준호의 귀에 닿았다. 준호가 얇은 손가락으로 애벌레를 찌르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애벌레를 들어 올렸다. 힘이 남은 어린 애벌레가 꿈틀거리자 마리는 겁을 먹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준호가 어떤 나뭇잎 위에 애벌레를 올려놓았다. 준호의 손에 애벌레의 몸에서 흐른 액체가 자국을 남겼다. 언제 그랬냐는 듯 꿈틀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지려는 애벌레를 보던 마리의 눈빛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바뀌어 있었다. 마리의 눈 밑에 남은 눈물 자국만이 사건을 증명하고 있었다. 준호의 손에서 액체가 사라진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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