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디어가 특별했는데, 대략 이런 구조였다.
대학생들 -> 고등학생들에게 무료로 멘토링
기업 CEO들 ->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멘토링
즉, CEO는 대학생에게. 대학생은 고등학생에게 선순환적으로 멘토링을 해주는 구조였다. 프로그램 이름은 한국장학재단 코멘티. 나는 당시 롯데그룹의 사장을 역임한 이종규 멘토님께 지도를 받았었다.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은 이랬다. 각 기수마다 10명 내외의 멘티들이 선발되었고 매년 새로운 기수들이 뽑혔다. 나는 4기로 뽑혔는데 나를 담당한 멘토님은 1기 때부터 쭉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상태였다. 즉, 내 위로는 3개의 선배 기수들이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시 이 멘토링 모임의 선배 기수였던 한 형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종규 사장님은 매 여름마다 모든 기수를 모아 1박 2일로 캠프를 개최했었다. 때문에 선배 기수들과 같이 모이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형을 그 때 만났다. 당시 그 선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선배와 후배들 사이에 깊게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대학교 2학년이라 하니 그 형이 회사에 취업 할 생각을 하지 말고 빠르게 다른 길을 모색하라는거다.
왜 그래야 하냐 물었더니, 내게 프린트 된 A4 용지를 건넸다. 만약 자기가 대학생인 과거 자신을 만나면 이 글을 꼭 건네줄 것이라고. 이 모임에서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 일부러 프린트 해서 가져왔다고. 당시 그 형이 내게 건네줬던 A4 용지에 적혀 있던 글은 이후 내 삶의 태도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 글은 아래와 같다.
<청춘페스티벌 김어준 강연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가?”>
제가 최근에 여러 매체를 통해서 상담을 합니다. 지난 5년간 주로 20, 30대에게 메일로 고민 상담을 받았습니다. 하루 평균 20여 통, 지금까지 수만 통을 받았는데 결국 그 중 7할은 똑같은 얘기에요.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상태인데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앞으로 뭘 할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앞가림도 바쁜데 그 사람들이 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는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는 이유는 내가 알아요. 왜 모르느냐. 라캉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약간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유명한 사람들은 쉬운 말을 어렵게 합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엄마를 만나겠죠, 보통. 그리고 그 엄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아이가 웃었는데 엄마가 좋아해. 그럼 자꾸 웃어. 걸었는데 엄마가 박수를 쳐. 그럼 아이가 자꾸 걸으려고 해요. 말을 했는데 가족들이 박수쳐주면 자꾸 말을 하려고도 하죠. 누구나 겪는 발달과정이에요. 나이가 먹으면 그 대상이 엄마, 선생님, 친구들, 친인척, 사회가 되기도 하죠. 학교 들어가서 공부 잘하면 선생님들이 칭찬합니다. 그럼 자꾸 공부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아이가 태어나서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이란 겁니다. 가장 먼저 하는 게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고 그렇게 사회를 배워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분이 되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성장하면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이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엄마가 원해서 하는 건지, 선생님이 칭찬해주니까 하는건지 친구들이 너는 이 정도는 해줄 거라고 기대하니까 하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해요.
이렇게 구분이 안가는 그 상태에서 성인이 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서른, 마흔이 되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닫습니다. 이때까지 했던 게 사실은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죠. 어떡해요 근데, 인생 돌아가서 다시 살수도 없잖아요. 자기 욕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거고,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알아.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궁금한거지. 불안하니까.
20대, 30대 여성들이 보내는 메일의 절반 이상은 또 이런 메일입니다. 어떤 남자가 있다. 오래 사귀었다. 미래가 불안하다. 근데.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가 말은 잘 안통할지 몰라도 조건이 좋다. 누구랑 결혼해야 하나.
수만 명이 보낸 메일 중, 바뀌는 거라고는 그 남자들의 직업 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랑인가요, 조건인가요? 이런 얘기죠. 사실 이 질문도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왜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아까랑 똑같은 이유인데, 어떤 사람은 모피를 입고 명품가방을 들고 넓은 아파트에서 외제차 타면 조금 사랑이 부족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반대로 재벌가에 시집을 가도 사랑이 부족하면 이혼해야 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사랑이냐 조건이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거죠.
그럼, 이 질문은 사실은 이런 거죠. “저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대신 말해주세요.”라고 저한테 묻는거에요. 내가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어서 다른 모든 사람의 욕망을 제쳐두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나하고 일대일로 만나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서 다른 사람한테 계속 묻는거에요. 내가 언제 행복한지 말해주세요. 바보같은 소리에요. 남들이 내가 언제 행복한지 어떻게 알아.
청춘한테 필요한 첫 번째는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는 거에요.
두 번째. 그러면 자기가 정말 욕망을 알았다고 칩시다.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 보면 자세히 나와 있어. 내가 쓴 책. 핵심만 얘기하죠.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돼야 한다. 일대일로 자기하고 마주서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았다고 칩시다. 어렵게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았어요. 그 다음 해야 될게 뭐냐.
그 일을 그냥 하는 겁니다. 바보 같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다른 사람들한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는 겁니다.
그 일이 실패했을 때 자기가 못난 사람이 안되려고 말입니다. 원래 워낙에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실패했어도 내가 못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한테 퍼트리는 걸 제일 먼저 합니다. 열심히.
그런데 그러다 자기가 설득이 되요.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그래서 주변에서 왜 아직 안하고 있냐 물어보면 화를 냅니다. 너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마침내 안하게 되죠. 그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안 해도 되는 일, 어차피 못하는 일, 다들 실패하는 일이 돼서 그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냥 끝나 버립니다.
어떤 일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에요. 예를 들어보죠. 제가 10대 때 아라파트를 만나고 싶었어요. 아라파트가 누군지 아십니까? 요즘으로 치면 빈라덴 정도 되겠네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피엘로의 의장. 뮌헨 테러라던가 각종 세계적인 테러를 주도했던 70년대 날렸던 테러리스트 두목이죠.
아라파트를 제가 10대 때 외신란에서 보고 그 사람이 만나고 싶었어요. 이유는 나도 몰라요. 그러지 말라는 법 없잖아. 아무도 나한테 그래선 안 된다는 말도 안했어.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디 있는지 알아야죠.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도 못 찾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찾나. 그런데 20대 중반이 되던 해, 94년도로 기억하는데,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그리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인 아라파트, 그리고 미국 대통령 클린턴, 이 세 사람이 만나서 중동 평화회담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뭘 약속했냐하면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되도록 도와주겠다. 협정을 맺죠. 평화협정을. 그것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습니다. 그게 외신란에 났어요. 그리고 그 결과 아라파트가 전 세계를 떠돌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거예요. 성경에 여리고서라고 있죠. 그 동네로 돌아온 겁니다. 드디어 94년 제가 아라파트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아라파트를 만나러 간다니까 내 친구들이 미쳤다고 해요. 그리고 저의 대답은 "아라파트가 나더러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하니까 바로 보러 가야 되겠다." 보러 갔어요. 꾸역꾸역, 산 넘고 물 건너서 이스라엘로 가서 검문소 몇 개 넘고 어렵게 어렵게.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서 사람들한테 아라파트를 만나야 되겠다고 하니까 "네가 왜 아라파트를 만나냐?"해서 리스펙트. 리스펙트 한다 나는.
결국 그 사람들이 저를 차에 태워서 아라파트 집 앞에 내려줬어요. 그 집 앞에 내리고 나서야 제가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라파트에게 할 말이 없구나." 그 전에는 몰랐어요.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한 겁니다. 하고 싶으니까 그냥 간 거예요. 만나고 싶으니까. 그런데 그 집 앞에 갔더니 그제서야 깨닫는 거죠. "내가 할 말이 없구나." 그래서 아라파트 집, 회백색의 2층 양옥이었는데, 집 벽에 기대서 사진을 한방 찍고, 그리고 돌아왔어요. 그 다음부터 아라파트가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아라파트 만났다고 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어쩜 그럴 수 있냐?" 얘기하는데, 저는 그런 경우가 참 많았어요.
10대 때 사하라에 가고 싶었어요. 책에서 봤는데, 어떤 커플이 사하라를 횡단했답니다. 나도 크면 횡단해야지. 그래서 20대 중반에 사하라를 갔습니다. 트럭을 타고 한달 넘게 횡단하는 그런 코스였는데, 첫날 사하라를 이렇게 쭈욱 횡단하는데, 모래가 많아요. 계속 모래입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아무리 둘러봐도 다 모래야. 그래서 제가 물어봤죠. "앞으로 계속 모래냐?" 그랬더니 "앞으로 계속 모래다." 모래는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저는 내려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 번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어디를 가고 싶다, 뭘 하고 싶다해서 그걸 시도해 보지 않은 적은 없어요. 물론 그렇다고 다 된 적은 없죠. 세상에 그런 것은 없어요. 아라파트도 못 만났잖아. 그 집 앞까지 갔다 그냥 왔잖아.
그런데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일을 그냥 하는 겁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실패했을 때 타격이 어떠한가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는 겁니다. 그게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게 삶에 후회를 없애줘요. 삶에 하고 싶은 일도 찾았고 그냥 하면 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럼 언제 해야 되느냐 당장.
지금.
당장.
제가 배낭여행을 갔을 때예요. 그 때 그지였거든요. 배낭을 메고 원래는 하얀색이었으나 더 이상 무슨 색인지 알 수 없게 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죠.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이랑 오페라 하우스 사이에 오페라 대로라고 큰 길이 하나 있어요. 그 대로를 걷다가 왼쪽 편에서 양복점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이전까지 양복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양복점에 걸려있는 양복을 보고 저도 모르게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마치 내 것인 양, 그 양복을 꺼내서 입었습니다. 그리고 양복만 입으니까 안 어울려서 와이셔츠도 하나 꺼내 입고 넥타이도 하나 꺼내 입고. 구두도 하나신고 이 모든 일이 한 30초 안에 일어났어요. 마치 내 옷을 맡겨놨다가 찾는 것처럼 후다닥.
그런데 다 입고 보니 너무 멋진 겁니다. 얘가. 그래서 난생 처음 양복을 사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가격을 봤더니 우리 돈으로 12만원 정도였어요. 그때 제가 두 달 더 있어야 했는데 120 몇 만원이 남았었어요.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옷을 벗으려는데 다시 보니까 공이 하나 더 있어. 120만 원 정도야. 이제까지 내가 태어나서 샀던 모든 옷을 합친 거보다 더 비쌌지만 그 옷을 벗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평상시라면 벗고 나왔겠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니까. 그런데 거울 속에 있던 아이가 너무 멋있어서 저 아이를 두고 나갈 수가 없는 거에요.
그와 함께 나가야겠다. 그래서 주저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전 재산인데, 사고 나면 한 푼도 없는데, 아사할 수도 있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이 남은 120만원을 남은 두 달 동안 하루 2만원씩 대단히 합리적으로 계획적으로 쪼개서 잘 소비하면 그럼 그날 하루 굶지는 않고 다음날도 굶지 않겠다, 그 다음날도 예측 가능한 잠자리가 있다. 그러면 그날 하루하루 쌓이는 행복이 있죠. 그 행복을 60일치 다 더하면 이 양복 샀을 때 행복보다 큰가?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아요. 1번 제외.
그래서 두 번째. 만약 내가 지금 돈 없어서 이 옷을 못 사. 나중에 30대에 돌아와서 그 때 돈이 좀 있을테니까 양복을 사면, 그럼 내가 스물다섯에 놓친 이 행복은 그때 가서 돌아 올 건가? 서른다섯의 행복은 서른다섯의 행복인거죠. 스물다섯의 행복은 그때 사라진 겁니다. 내가 누리지 못하고. 2번도 제외.
세 번째. 두 달은 아직 안 왔잖아. 그렇죠? 아직 안 왔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그 양복을 샀어요. 120만원을 주고 그 양복을 사서 그걸 입고 파리에 뤽상부르 공원이라고 있어요.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 양복은 보스였어요. 당시만 해도 이름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두목. 뭐야 촌스럽게. 그러나 제 생각에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한 사람이 입었던 양복으로는 최고가가 아니었을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직전까진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어떡하나 이제. 돈은 5만원 남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행 다니다가 숙소 삐끼를 하면 되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거 아르바이트를 하자. 당장 로마를 갔습니다. 어떤 펜션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돈 내고 나오면서 주인에게 제안을 했어요. 내가 지금 갈수도 있고, 아니면 기차역으로 가서 손님 세 명을 끌고 오면 그 방에 나도 재워줘라 공짜로. 만약에 다섯 명 이상 데리고 오면 한 사람 추가 분부터 나에게 커미션 얼마를 줘라. 그리고 아무도 못 데리고 오면 나는 그냥 가겠다. 주인 입장에선 와이낫이잖아요?
기차역으로 가서 제 생각엔 최소 3명은 데리고 오겠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날 한 시간 만에 30명 데리고 왔어요. 왜? 난 보스를 입었잖아. 거기서 일주일 있으면서 관계가 역전 됐어요. 호텔 매니저가 제발 떠나지 말라고 했죠. 그 당시 전 수중에 50만원이 생겼습니다. 이 50만원이 생기자 내가 왜 남의 장사를 해주고 있나 했어요.
그래서 떠오른 게 뭐였냐면 그 때가 91년이었는데 동부권 개방 직후였어요. 당시에는 숙소가 부족했습니다. 헝가리 체코 이런 나라들이. 그래서 체코로 갔어요. 체코에는 주인들이 살다가 집을 시즌에 통채로 내놓는 게 있었어요. 호텔이나 민박이 부족하니까. 그런 집 하나를 골라서 그날 하루 묵고, 일주일 동안 쓰겠다고 말하며 50만원을 줬어요. 그리고 2주째도 내가 50만원 당신한테 줄 수 있으면 한 달 계약을 하자고 했죠. 주인 입장에서는 와이 낫이잖아요? 하루하루 다른 사람과 계약하는 것보다 한 번에 한 사람한테 주는 게 편하니까, 저는 그렇게 그 집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이번에는 동양인만 상대하지 말고 마구 잡아들이자. 그래서 역에 가서 기차에서 내리는 배낭객 중에 반반한 남자 놈을 잡아서 "내가 앞으로 한 달 동안 너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줄 텐데, 내 밑에서 일해라." 했어요. 안 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보스를 입었는데.
그래서 그 영국 친구를 고용하고 둘이 알바를 시작했죠. 대박이 났습니다. 일단 다른 데 보다 가격이 쌌고 젊었으니까요. 한 달 정도 삐끼 사장을 했는데 매일 잘 먹고 잘 쓰고 그러고도 제가 체코를 떠나는 날 수중에 천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건 보스를 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에요.
제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삶의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당장 행복해져야 된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고 열심히 뭔가를 모으거나 준비하거나 혹은 미뤄두거나 해서 나중에 행복해질거야. 행복이란 게 마치 적금을 들 수 있고 나중에 인출해서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행복은 그 순간에 영원히 사라지는 거에요. 그 나이로 돌아가서 그 때 그 행복을 다시 살릴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당장 행복해지셔야 하는거죠.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내 욕망이 뭔지,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자기하고 대면을 해야 되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서. 그리고 그 일을 그냥 해요. 그런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실패도 하고 작은 성공도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 당장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행복이란 게 저축하거나 적금 들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 지금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걸 유보해 두냐고. 미쳤어? 그러면 그게 잘 사는 겁니다. 잘 사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인거죠. 훌륭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고.
제가 할 얘기는 여기까지가 끝인데 그럼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되는거냐? 이 얘기를 해드릴게요. 어떤 기관에서 전 세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40대 때 사람들을 조사 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한 가지 있었어요. 한 가지 일을 20대부터 시작해서 40대까지 꾸준히 해서 40대에 성공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전혀 상관도 없는 일들을 많이 했답니다. 무작위로.
보통은 사람들이 그 일을 20대부터 꾸준히 해서 성공을 해서 40대에 이루었을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여러 분야에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추려봤더니 20대와 30대에 서로 아무 상관없는 일들을 여러 가지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순간에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주저 없이 뛰어든 겁니다. 그러다가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또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미루지 않았던 거에요. 그러다 30대 중반, 어느 시점쯤에서 자기가 잘하던 일을 깨달은 거죠. 그로부터 10년간 그 일을 했더니, 결과적으로 유명해져 있더라는 겁니다. 정해진 보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비정규직이에요.
제가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는 말씀해드릴 수 없는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이유는 말씀 드렸어요. 그러니까 욕망의 주인이 되십시오.
어쨌든 행복하게 사시기 바라고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인생 졸라 짧아요. 그리고 웃긴게 굉장히 계획들을 많이 해요. 계획만큼 웃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 리가 없어요.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가장 사람에 대해서 비웃을 게 그 부분이죠. "계획을 세웠어 이것들이" 그렇게 될 리가 없죠. 그러니까 행복한대로, 닥치는대로 사세요.
내가 이 글을 접한게 2014년이다. 그리고 이후 내 삶의 궤적을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을 접한 이후 진짜 이것저것 다 하면서 꼴리는대로 살았다. 원래는 나 또한 대기업 취업이 당연한 목표였다. 내 주변의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코멘티 선배가 건내준 이 글이 큰 울림을 줘 이후 자유로운 영혼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유럽에 가고 싶으면 날라갔고, 어느 여름날은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고 날라갔다. 그 때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었는데 무작정 오사카에 도착하고보니 ‘조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사카 공항에서 시내까지 나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하더라. 몰랐는데 섬에 있더라고 공항이. 그래서 지나가는 아줌마를 붙잡고 구걸했다. 무전여행 왔는데 공항이 섬에 있는 줄 몰랐다고. 불쌍했는지 표를 하나 끊어줘서 오사카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도착해서보니 배가 고팠다. 어쩔 수 없이 또 구걸을 했다. 나의 대책없음에 스스로 감탄을 하면서. 수십명에게 까이기를 거듭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니 어떤 누나가 밥을 사주더라. 그 누나는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다. 한국이 좋아서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을 다녀왔다고. 그렇게 밥을 얻어 먹고 주차장에서 노숙을 하다 관리 아저씨한테 쫓겨났다.
이 때 오사카 시내를 비루하게 걷다 악기 들고 버스킹 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 없었다. 통 안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해보이던지. 그 때 깨달았다. 아 무전여행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거구나. 결국 이 즉흥 무전여행은 며칠 만에 막을 내렸다. 오사카에 있는 대한민국 영사관에 찾아가 유니온뱅크라는 제도를 통해 친구한테 긴급 송금을 받았다. 고생을 크게 했던 여행이지만 그만큼 깨지며 배운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외에도 내가 대책 없이 자유로운 영혼처럼 행동한 일들이 한 두개가 아니다. 김어준의 강연에 영향을 받은 후 내 모토는 즉흥과 마음가는대로가 됐다. 물론, 꼴리는대로 사는 것이 가져오는 단점과 치명타들도 존재했다. 세상에는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달성해야 하는 일도 분명 존재하니깐.
다만, 전체적인 총계로 봤을 땐 즉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것과 비교해 큰 손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더라. 물론, 계획을 세우지 못해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은 아쉽다. 하지만 무엇이든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깐.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다음은 김어준씨가 쓴 책 <건투를 빈다>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게 뭔지, 그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었는지” - P.3
“어떤 선택도 비용까지 포함하는거다. 그리 선택했으면 그 선택으로 생긴 분란까지 감당해야 하는 거다. 욕 먹어야 한다면 욕먹어야 하는 거다. 세상, 공짜는 없다.” - P. 486
결국 내가 겪는 많은 문제는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대가를 마땅히 지불해야 할 뿐. 실제 공짜처럼 보이는 것도 막상 들어가보면 알게 모르게 모두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꼭 금전만이 비용이 아니다. 내가 날려버린 시간, 소모되는 감정,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마저 모두 대가에 들어간다. 이를 사람들이 평상 시 의식하지 않고 산출하지 않아 그렇지.
예를 들어 나만 해도 즉흥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신 로스쿨에 입학하고도 변호사 자격증을 아직까지 못 땄다. 해외에 나와 백수 생활을 하며 꿀 빨면서 살고있는 대신 커리어가 박살나고 있다.
다만, 나는 이 대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최대한 감당하려고 한다. 물론 가끔은 나도 대가를 회피하고 싶고 공짜로 개꿀 빨면서 무언가를 얻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살다보면 간헐적이나마 대가 없이 얻어지는 행운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길게 보니 이것도 대가가 따르더라.
예를 들어, 복지 혜택을 과도하게 받은 사람들이 결국 공짜에 중독 돼 인생 전체를 말아먹는 것이 이런 경우가 되겠다. 알고보니 그게 사실은 공짜가 아니었던거지.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자라온 배경이 있기에 어릴 때부터 이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고 자랐다. 이 사람들은 당장의 공짜만 바라본다. 실제 장기적으로는 스스로가 엄청난 대가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인데도. 근로 의지의 박탈, 직장에 나가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 박탈, 자립심 박탈, 안락함을 얻는 대신 도전을 포기하는 비용등 수도 없이 많은 비용이 지불됨에도 의식하지 못한다. 단기적인 시야에서만 공짜지 장기적으로는 전혀 공짜가 아닌 것이다.
나 또한 즉흥적이고 재밌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왔고, 지금도 몇개는 여전히 지불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대가에 대해 스트레스 받고 스스로 불안해질 때도 많다. 때문에 글로 정리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얻는게 있는 만큼 대가를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
공짜 심리야 말로 장기적으로 인간을 좀 먹는 사고다.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어 갈 생각을 하지 말자. 그딴건 없다. 노력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했을 때 그 사람이 받는 감정, 시간, 금전, 기회비용의 소모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