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다비가 우리 집의 불청객은 아니었지만 다비는 불청객처럼 보였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고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보는 나 마저 불편하게 만들었다.
다비는 모든 두려워했다. 여느 개처럼 멍멍 짖는 대신 다비는 흑흑 흐느꼈다.
실연당한 이처럼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다비의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우울한데 너도 우울하면 어떡하니'
모든 강아지는 사랑이라며 동네방네 내가 애견인임을 떠들고 다녔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강아지를 찾고 있었나 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강아지란 찾기 어렵지 않다. 강아지들은 대체로 행복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휘적휘적 흔들면서 조그마한 털복숭이 머리통을 헤실한 미소와 함께 들이민다. 그리고 나는 보통 그런 강아지들에게 필요 이상의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 나에게 다비의 모습은 낯설었다. 다비는 다리 사이로 꼬리를 감추고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가까이만 가도 다비는 몸서리를 쳤다. 다비의 머리통을 쓰다듬을라치면 다비는 강직된 표정으로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강아지를 학대한 적이 없었지만 마치 내가 학대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한 감정이 울컥 생기기도 했다.
다비를 다시 보호소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임시보호를 자처한 것은 나였다. 다비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되돌려 보내는 건 섣부르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나는 다비의 행복을 조급하게 바라기보다는 다비의 안전과 안정을 지켜주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지만 불안정한 다비와 함께 하는 것은 놀랍게도 기쁨의 연속이었다.
다비는 매일 같이 용기를 냈다.
항상 겁에 질려있는 다비가 조용히 사료를 먹기 시작할 때, 산책을 나갔을 때 비련의 주인공처럼 흐느끼지 않고 천천히 나무 기둥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다비의 작은 용기에 크게 기뻐했다.
행복한 강아지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적인 일이었겠지만, 다비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비가 보여준 용기는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 것이라 나는 더욱 기뻤다.
늘 카펫 위에 웅크리고 있던 다비가 어느 날 내가 요리를 하던 부엌까지 걸어온 날은 나와 다비의 거리가 그만큼 좁혀진 날이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은 다비의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다비가 나타나 내 침대 위로 사뿐히 올라왔다. 원래 그래야 한다는 듯이. 여기가 내 자리라는 듯이.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내가 너무 기뻐하면 다비가 다시 도망가버릴까 봐 조용히 환호를 질렀다.
그날부터 다비는 나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다비의 애교가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발치에서 자고 있는 다비를 쓰다듬으면 다비는 갑자기 개구쟁이가 되었다. 항상 웅크리고 있던 몸을 쭉 늘여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곤 했다. 다비의 뒹굴거림이 나는 고마워서 나는 최대한 오래 다비와 이불속에서 머물곤 했다.
다비를 데려왔을 때 나는 우울함과 외로움에 지쳐있었다. 다비를 보았을 때 나는 내가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나는 다비처럼 웅크리고 있고 싶었고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
어느 날 나는 다비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
다비야.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늘 불안해하고 늘 걱정하는 삶은 너무 힘들어. 나도 알아.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지 않다는 걸. 괴로운 일들이 우릴 힘들게 했다는 걸. 무엇보다 내가 나를 매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는 걸.
하지만 다비야. 이렇게 해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 세상엔 나쁜 일도 많지만, 좋은 일도 늘 함께 해. 너는 더 좋은 일들을 마주하며 살아갈 자격이 있고 너 스스로가 그걸 의심해선 안돼.
다비는 눈을 끔뻑이며 조용히 내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는 것을.
다비는 이미 나보다 훨씬 용감한 강아지라 나의 조언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비는 나에게 매일 용기를 가르쳐준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어렵고 힘든 순간은 끝도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다비의 용기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여태껏 행복한 강아지는 많이 보았지만,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있는 강아지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어쩌면 강아지라는 존재는 단순히 행복하고 무해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나 보다. 강아지에게서 용기와 회복력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다비는 가르쳐주었다. 행복은 내가 조급한 마음으로 찾는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작은 용기를 내는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다비가 입양처를 찾았습니다. :)
다비야, 행복해야 해.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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