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국 사진가분들 중 개인적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몇 분이 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을 꼽으면 <밤의 집> 손은영 작가님과 건축물 사진 작업을 많이 하시는 정지현 작가님인데요.
작년에 나온 책 <<정지현 프로젝트 8>>은 8명의 필자가 정지현 작가에 대해 쓴 것입니다. 평론과 인터뷰, 함께 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회상까지 한 명의 작가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어서, 책을 읽고 나니 작가의 사진 세계를 조금은 더 알게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지현 작가가 도시 건축이라는 큰 틀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책에 실린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작가가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상을 찍고,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표현 기법이 더 원숙해지고 있는 것도 같고요.
채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물질과 구조의 대면, 삶의 마디 기록하기>,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에서 출발해 도시 전반을 아우르는 풍경의 기록자로 이행하고 있는 정지현은, 건축물과 몸으로 관계 맺기라는 설치적, 행위적 요소를 통해 '다르게 보기'라는 미술의 본질을 실천한다. 일상적 시선에 균열을 내는 실험을 지속하며, 우리 삶의 마디마디를 기록하고 성찰하게끔 한다. 그 행위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정지현 프로젝트 8>>, 그레파이트온핑크, 2022, p. 125
꾸준함이 무기라고 말하는 것이 진부할지는 모르지만, 오랜 시간 한 가지 주제에 천착했기에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파트 키즈'라는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한 작업이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작가는 알았을까요?
앤디 세인트루이스(미술평론가), <정지현: 이미지, 대상, 공간>, "정지현은 생성과 파괴의 과정 중 두드러지는 순간을 선택적으로 포착하고, 그가 끝없는 사색의 대상으로서 촬영하는 덧없는 현실을 무한히 영속시킴으로써 건축 구조물이 변화해가는 과정의 목격자 역할을 한다. (......) 반면 정지현의 주관적 접근 방식은 촬영 대상 건축물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구축된, 시각적 재료를 바라보는 그의 미묘한 감수성에 기대고 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현대 건축의 과거와 현대를 기록해 온 작가의 최근 두 작업보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정지현 프로젝트 8>>, 그레파이트온핑크, 2022, p. 141
청계천 삼일빌딩 리모델링과 아모레 퍼시픽 사옥 건축 과정을 담은 프로젝트를 보면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시간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골조가 올라가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건물이 완성된 이후의 풍경까지, 과정과 결과를 모두 담은 그의 작업은 한 건물의 출생 기록입니다.
서지은(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정지현의 Construct - Reconstruct - Deconstruct>, "여기서 정지현은 객관적 관찰자로 건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건축 사진가인 동시에, 주관적 시선을 담아 세계를 재창조하는 창조적 사진가라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수행하는 두 역할은 완전히 분리되기보다는 작업 안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정지현 프로젝트 8>>, 그레파이트온핑크, 2022, p. 173
정지현 작가의 이미지가 단순한 건축 사진이 아닌 이유는 서지은 큐레이터의 표현처럼 작가의 "주관적 시선을 담아 세계를 재창조"하기 때문일 겁니다.
책을 읽고 나니 보고 싶은 그의 작품이 더 많아졌습니다. 작년 스위스 한옥 전시에서 예전 작업을 조금 볼 수 있었는데,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요.
참고로 오는 2월 18일까지 강남에 있는 송은문화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정지현 작가도 20인의 후보 중 한 명으로 참여 중입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한번 가봤으면 좋겠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슬프네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시간 내어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