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현 Mar 17. 2022

제로웨이스트, 미진하고 무심한

뭔가 미진한 게 남았다      


 제로웨이스트. 제로쓰레기. 낭비 없는 삶. 버리지 않는 삶. 나는 사실, 그것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출하고 미니멀한, 소박한 삶의 양식이 좋아 보이기는 하다. 어떤 것은 트렌디한 유행 같고, 이국적인 제품을 서치할 여분의 시간과 두 배 이상의 비싼 값을 치러야 가능한 일 같다.      


 나는 음식도 넉넉히 주문하는 편이다. 조금 모자란 듯한 알뜰함은 내게 미덕이 아니다. 조금 남을 정도의 배부름이 좋다. 고기도 좋아한다. ‘지구 육상동물 중 사람이 30%, 사람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 67%’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소름이 끼치기는 했다. 지구는 살생의 현장이고, 나는 언제나 그 현장에 있던 용의자이고, 앞으로도 그 피의사실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인륜에 의해 용인되는 죄이기에, 나는 아주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뿐이다. 나머지 3%만이 야생동물이라고. 문득, 사람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개와 고양이, 쥐, 비둘기 등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지구에 쓸모가 있을지는 늘 의문이다. 배달 주문 뒤 남겨진 플라스틱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하긴 하지만 이것들이 얼마나 재활용되는지는 모르겠다. 플라스틱에 든 우유는 사 먹지 않고, 종이 곽에 든 우유만 산다. 대형할인점에 탑처럼 쌓인 플라스틱 생수통은 볼 때마다 공포스럽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가 6개 이상 붙어있는 요거트나 요구르트도 사지 않는다. 대신 우유 하나와 불가리스 하나를 사서 큰 락앤락 유리통에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가끔은 바리스타 커피나 탄산음료가 너무 땡긴다. 진열대 앞에서 한동안 서 있다가 쇼핑카트에 무심한 척 넣고 만다. 몇 모금 마신 뒤엔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잠깐의 충동을 못 이겨, 백 년 이상 거뜬히 썩지 않을 무언가가 남았다. 뒷맛이 이내 씁쓸해진다.      


 바쁜 현대사회이므로 나를 위한 물건은 대개 쿠팡을 이용한다. 최소한의 사람 모양새는 갖춰야 하므로 립글로스와 립스틱, 아이라이너를 주문했다. 밤새 집 앞에 회색 비닐봉지 세 덩이가 쌓였다. 신발이 들어갈 정도로 큼지막한 비닐봉지에 손가락만큼의 물건이 겨우 손에 쥐어진다. 산 것은 한 줌도 안 되는데, 비닐은 아무리 뭉쳐봐도 중국 호빵보다 크다. 난감함은 이내 비닐류 재활용 쓰레기통에 함께 묻힌다.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갖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다 


굳이 이 밤에 누군가가 달려야 할 때

너를 이용하여 가만히 편리해도 되는지 

내 모든 의욕들을 깨뜨리고 싶다                           

                                                                           -김이듬 <게릴라성 호우> 中          



 다 쓴 썬스틱의 밑동을 포크로 살살 긁어 볼 위에 얹는다. 투명한 조각이 볼 위에 나뒹굴다 곧 펴지긴 하는데, 며칠이나 더 이렇게 파고 있을까 싶다. 아직도 밑동이 많이 남았는데, 이런 건 분리수거 해도 분명 재생되지 않을 텐데. 새로 산 썬스틱은 볼 위에 부드럽게 도포되고 나는 이내 만족하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더현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