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처음 복싱을 시작할 때는 업무 이전 시간인 7시~9시, 점심 12~14시, 저녁 18~20시 중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점심 두 시간이 운동시간이다. 집에서 작업하는 때도 운동시간은 지키고 있다.
아침에 운동을 해보니 몸이 덜 풀려 있기도 하고 출근 전에 운동하는 관원들이 많아서 활기는 있지만 반면 번잡함도 있다. 더군다나 에너지를 한창 쓰고 업무를 시작하다 보니 뭔가 한 듯해서 뿌듯하기는 한데 허기도 지고 하루가 개운하다기보다는 피로할 때가 많아서 피하게 된다.
저녁에 가는 경우는 가장 드물지만 점심 운동을 놓친 경우에 다녀온다. 아무래도 아침에 느껴지는 관원들의 부지런함보다는 일과를 마치고 온 사람들의 여유로움 때문인지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다. 마치고 나서의 상쾌함이 퇴근길에 오르면 사그라드는 느낌이 있어서 잘 맞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니 자신한테 맞는 리듬을 찾고 환경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점심시간을 선호한다. 운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운동하고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식사를 하고 오후 작업을 시작했는데 운동에 집중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고 식사를 하기에도 급하다. 뭔가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운동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되고 나서는 아예 식사를 이른 아침과 이른 저녁으로 옮기고 점심에는 여유 있게 운동만 한다. 업무시간에 두 시간을 써야 하니 다른 사람보다는 일과를 일찍 시작해서 전체 작업시간의 균형을 맞추어 놓는다. 아쉬운 점은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서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가끔 하는 식사자리가 더욱 소중하게 와 닿기도 한다.
내가 하는 두 시간의 운동패턴을 적어 놓는다. 기록을 해 두는 이유는 복싱장에 가서 기분 나는대로 운동을 하다 보면 변화를 알 수도 없고 소중한 시간을 내서 가서 딴짓만 하고 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지키려고 하는 중이다.
12:00 사무실에서 출발. 17층 건물에 있는 회사들의 점심시간이어서 엘리베이터 3대가 만원일 때가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불규칙해서 11층부터 1층까지 걸어 내려간다.
~12:10 복싱장에 도착.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10분이 걸린다. 가는 길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바로 건널 수 없으면 교대역 지하보도를 이용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12:15 운동 준비. 사람들과 인사하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 입고 글러브와 줄넘기를 챙겨 복싱장으로 나온다. 관장님과 사범님은 낡은 노트에 출석한 관원의 이름을 적는다.
~12:20 스트레칭 : 발-다리-허리-어깨-팔-목 순으로 가볍게 풀어준다.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진행 중인 작업들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오늘은 운동을 어떻게 할지 떠올리면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12:35 근력운동. 몸에 땀이 살짝 나는 정도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순서는 아래와 같다.
- 하체운동 : 중량 스쾃(12회 3세트)-레그 익스텐션 머신(12회 3세트)-레그 컬 머신(10회 2세트)
- 복근 운동 : 크런치(12회 3세트)-레그 레이즈(12회 3세트)
- 가슴운동 : 펙텍플라이(10회 1세트)
- 등 운동 : 렛풀다운(12회 2세트)
- 어깨 운동 : 덤벨(12회 2세트)
- 팔운동 : 푸쉬업바 또는 아령(15회 2세트)
~ 13:30 : 복싱 라운드에 맞는 운동
- 2라운드(줄넘기 또는 스텝뛰기) : 복싱 스텝에 맞게 몸을 준비하는 단계다. 마치고 반지와 시계 그리고 안경까지 내려놓고 핸드래핑을 마친다
- 2라운드(섀도우 복싱) : 가능하면 가벼운 아령을 잡고 하는데 스파링용 글러브 무게에 익숙해지는데 좋다.
- 2라운드(미트치기) : 내가 지금 다니는 복싱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관장님 또는 사범님은 모든 관원과의 미트를 한 번도 거르지 않는다. 처음 왔건 오래 다녔건 이 시간을 가지는데 그날 몸 상태나 변화를 곧 알아차리고는 얘기를 해주신다.
- 6라운드(샌드백치기) : 내 경우에는 샌드백을 강하게 연타로 치는 편이다. 스파링 체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고 체력이 소진돼서 그로기 상태가 되는 걸 피하고 싶어서다. 가만히 매달린 샌드백이라고 해도 치는 만큼의 충격이 나한테 다시 오기 때문에 3라운드 넘어서면 숨쉬기도 힘들고 그만큼 땀도 많이 흐르는 시간이다.
- 3라운드(스파링) : 기회가 돼서 관원들과 스파링을 할 기회가 생기면 위에 샌드백치는 라운드를 줄이고 스파링으로 대신한다. 내 나이에 비슷한 체급이 많지 않아서 체급이나 나이 차이가 나도 서로 조심하면서 각자 필요한 부분을 보강하는 시간이다. 정말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은데 마치고 나면 제일 재밌는 시간이다. 입에는 불편한 마우스피스를 물고 머리에는 헤드기어를 껴서 심적으로 위축되고 긴장된다. 샌드백용 백글러브보다 크고 무거운 스파링용 글러브를 끼고 운동하기 때문에 3라운드가 상당히 길다. 초기에는 1라운드만 뛰어도 그로기 상태였는데 이제 겨우 3라운드를 버틸 정도의 체력이다.
- 2라운드(몸풀기) : 운동을 마치고 나면 턱걸이, 딥업 또는 싯업 기구로 가벼운 근력운동을 하면서 달아오른 몸을 진정시킨다.
~13:50 운동 마무리. 복싱을 마치고 샤워를 끝내면서 몸무게를 재는데 체중계 사진을 기록해둔다. 몸무게와 체형이 변하는 걸 보면 좋다. 땀에 젖은 옷들을 세탁해서 건조대에 걸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온다. 이 시간은 오후 작업을 미리 짚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 14:00 사무실에 도착. : 복싱장에 왔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사무실로 돌아간다. 1층 로비에서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11층까지 계단으로 오른다. 4층 정도 오르면 늘 후회한다. 다리가 너무 힘들다. 다시 내려갈 수도 없어서 꾸역꾸역 11층에 도착하면 물 두 잔을 마시고 오후 작업을 시작한다.
이렇게까지가 복싱장에서 일어나는 하루 두 시간의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루에 두 시간. 나한테는 이 시간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건축활동의 상징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2020년 3월 7일
(주)포럼디앤피 대표 건축가 이인기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 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 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 건설사업의 전 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 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 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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