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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15. 2023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을 곱씹다

정치의 계절, 'Less Fortunate people'을 생각하다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일은 하기 싫고, 바쁘지도 않은, 계절에 맞지 않은 비가 이틀째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연말의 금요일 오전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마우스를 휘둘렀고, 두 눈은 앞에 놓인 모니터 두 대를 분주하게 오갔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진 뒤통수마저 바쁘게 도리도리 굴러다녔다. 하나 실상은 살짝은 집중력을 내려놓아도 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하지만 시간이 소요되는 업무를 하는 중이었다. 


바빠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키보드 위 왼손과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 그리고 모니터와 모니터. 그 사이 어디쯤에선가 상념이 삐져나왔다. 난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신세한탄은 엉뚱하게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에 가닿았고, 더 난데없는 쪽으로 뻗어나갔다. 뒤구르기를 하면서 보아도 긍정적으로는 읽히기 어려운 문장이 불현듯 나에게 위로로 다가온 것이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잡념에 사로잡혀 일을 잠시 멈췄다. 생각의 꼬리를 잡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어제 보았던 유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인 <최재천의 아마존>의 연말특집에 출연한 최인철 교수(서울대학교 심리학과)가 말이 원인이었다.


그는 '한국 소멸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초저출생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가리키는 표현인 'Less Fortunate people'(운이 좀 안 좋은 사람들). 그 사람이 처한 경제적인 문제가 당사자의 능력이나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운 Fortune이 부족한 탓이라고, 그들이 처한 상황의 책임을 개개인에게만 돌리지 않는 의미였다.


원했던 직업을 갖는 데 실패하고 고향인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소소한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타박할 때가 있었다. "너는 노오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거다!" 현재 나의 소속과 직업(중소기업, 단순 사무직), 귀여운 연봉, 주거 상황(지방에서의 전세살이)에 대체로 만족하면서도 말이다. 물론, 애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떤 재능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탓에 주위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이 느껴질 때(과잉반응일지도)면, 내 삶에 대한 의심이 찾아오고 불안에 흔들리곤 한다. 그런 나에게 최 교수의 말과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습도 괜찮다고, ' 내 탓이 아니라고'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이 이제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이어나갈 방안에만 몰두하며 이합집산하느라 바쁘다. 언론은 그들의 거취 문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사들로 온통 뒤덮여있다. 그러다 YTN 뉴스에 나온 국민의힘 대변인이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는 "평생 정치를 업으로 해온 사람에게 출마하지 말라고 한다면, 쉽게 결정으시겠냐""자신의 일인 것처럼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그 문장 속에 '정치'라는 행위에 대한 고민, 선출직이라는 직업의 무게, 직업윤리, 소명의식 따위는 없었다. 그들에게 정치그저 사적인 일이라는 자기 고백 뿐이었다. 


개인적인 일에 대한 소문들, 온갖 가십만 난무한다. 가십은 요란하고, 시끄럽고, 시선을 빼앗는다. 이제는 그런 가십을 그만 보고, 듣고 싶다. 부디 내년에는 정치가, 언론이 Less Fortunate People에게 행운을 찾아다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그런 고민으로 채워지길 바라본다.


하지만 알아. 아마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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