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Dec 26. 2023

올해도 이만큼 늙었습니다

나의 2023년 = 에이징 솔로력이 +1 되었습니다

사람은 계단식으로 늙는다는데, 나에게는 올해가 딱 꺾여 올라가는 그런 해였던 것 같다. 체력도 급락하고, 이젠 얼굴에서 제법 나이가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추레하면) 20대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봐도 중년의 얼굴이다. 몇 가지 모먼트가 있었다.

 



# 첫 번째 

 전주로 이사 올 무렵이었다. 넉 달의 백수생활을 마치고, 다시 출근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갑자기 몸이 미친 듯이 부었다. 딱히 많이 먹은 것도, 고칼로리 음식을 먹은 것도,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부었다. 많이. 얼굴부터 손발다리 온몸이. 그런 상황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태에 익숙해졌을 무렵, 갑자기 부기가 빠져있었다. 그때 얼마 안 남은 젊음도 함께 빠져나갔다.

 

# 두 번째

 10월 말에는 생전 처음으로 주행 중 차 사고가 났다. 가해 차량 잘못이 100%. 후방 범퍼가 으깨졌는데, 나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외상은 전혀 없었고, 출장에서 돌아와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뼈에도 이상이 없었다.


 헌데 사고 사흘 뒤에 갑자기 운전 울렁증이 돋았다. 식은땀이 나고 가속페달만 밟으면 멀미처럼 어지러웠다. 옆 차선 차에, 마주 오는 차량의 라이트에 자꾸 화들짝 놀랐다. 한의원에서는 전형적인 차 사고 후유증이라고 했다. 약을 먹고, 꽤나 오래 병원에 다녔다. 3주 정도 지나자 차차 놀란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괜찮아지자 갑자기 몸이 아팠다. 처음에는 오른쪽 손목이었다. 마우스 클릭을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았다. 다니던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더 아팠다. 손목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이번엔 오른쪽 목과 어깨가 아팠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런 줄 알고 며칠을 버텼다.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열흘 넘게 잠을 설쳤다. 뻐근하지만, 수면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어깨와 목 통증이 사라지자, 다음으로 오른쪽 골반에 통증이 왔다. 한동안은 걸을 때마다 허벅지를 두드려야 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 스트레칭과 요가에도 골반의 불편함은 계속됐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골반의 통증은 이제 제법 괜찮아졌다. 운동할 때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 모든 증상이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는 걸, 골반 통증이 시작된 후에야 알았다. 사고 후유증이 이렇게도 뒤늦게 올 수 있구나.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걸.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나이가 들어 회복도 더디다고 생각하니 살짝 서러웠다.


# 세 번째

 거의 십 년째 반복 중인 헤어스타일 루틴이 있다. 추석 무렵에 숏컷으로 자르고, 봄과 여름에는 계속 길러서 한 여름이면 질끈 묶기. 기계로 머리 말리는 걸 싫어하는데, 겨울엔 드라이기를 안 쓸 수 없으니 빨리 말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다. 여름엔 모가지에 털이 안 닿게 묶어야 시원하고.


 무튼, 숏컷을 할 때는 항상 앞머리를 내렸다. 소위 말하는 '사이드뱅' 혹은 '시스루뱅'. 헌데 불현듯 앞머리가 어색했다. 늘 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어려 보이려고 애쓰는 느낌이랄까. 결국 아침마다 짧은 앞머리를 자연스럽게(흘러내리지 않게) 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는 나이 기준으로) 곧 앞자리 수가 변하기 때문인지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 더 화가 나는 건, 내가 후지게 행동했음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나는 언제쯤 중년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질까. 몸은 늙더라도 생각은 늙지 않게, 제대로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괜찮게 나이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 2023년의 12월 마지막 주.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을 곱씹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