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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02. 2023

떠날 준비

오늘도 마음만 바쁘다

마음이 바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미 떠나버린 마음은 허공에서 나를 자꾸 재촉하며 하루 종일 두리번거린다. 싱숭생숭이라기엔 조금 무겁고, 설렌다기엔 상큼함이 많이 모자란, 그렇지만 심란하다거나 속 시끄럽다거나 하는 말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기분. 덕분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멀미하듯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는다.


떠난 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러다 네팔 여행 직후에 썼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소 긴 여행 후 돌아온 내 집이 소중해서,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도 내 방에는 난방 텐트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대청소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동안 지켜왔던 청소 루틴조차 잃어버렸다. 매주 한 번씩은 반드시 하는 손걸레질을 건너뛰어도 아무렇지 않던, 머리카락이나 조그만 날벌레 시체 하나둘 정도는 그냥 지나치는 나를 본 어느 날. 그만 알아버렸다. 아니 인정해야 했다. 아, 나 이 집을 떠나고 싶구나. 떠나려고 이미 마음을 먹었구나.


때마침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가겠다는 말을 언제 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잊어버린 척, 혼자 괴로워하던 시기였다. 집주인은 계약을 연장하겠느냐고 물었다. 다음 거주할 집은커녕 지역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구구절절 사연을 풀어놓으며 양해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 이사를 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미뤄왔던 집주인과의 연락을 해치우고 후련한 기분은 정말 순간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지 아직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에 다음 입주자가 구해졌다. 집을 내놓은 지 고작 열흘 째 되던 날이었던가. 집을 보러 온 첫 번째 사람이었다.


마감일을 현실화시키면 결정이 짧아질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집 주위를 홀로 배회하던 마음은 이  집과의 이별을 공식 선언한 후로 서울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내가 자꾸만 서울에서 멀리  떠나 사는 꿈을 꾸는 것은 혹시, 서울에서 잘살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을 ‘전원으로 돌아가자’라는 능동적 의지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최승자, <어느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 의혹을 가지고 돌아왔다. 조급함이 더해져 더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 나와 함께 살아주는 생명체들은 늘 위안이 된다.

정신을 차리고 싶어 집을 둘러본다. 지난 2년 동안 불어난 살림에 한숨이 절로. 기한 내에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하면 이 짐을 다 어디에 두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할  일은 많은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적은 상황. 그나마 냉장고, 침대, 세탁기 같은 대형 가구나 전자제품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일부터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씩 정리를 시작한다. 먼저, 덩치가 큰 조립식 가구들. 하나씩 분해해서 가능한 부피감을 줄여야 한다. 이사 D-10 무렵부터 하나씩 하면 되지 않을까? 옮기는 일과 보관장소는 이사 D-3일까지는 어떻게든 정해지겠지. 그 사이에 전동 드릴 사용법을 익히고(그렇다. 조립할 때 맨손으로 했다. 물집과 손목 통증을 얻었다), 수납공간 밖으로 쫓겨난 물건들을 담아둘 박스와 노끈, 쓰레기봉투를 구비해야 한다.


이번엔 없애야 하는 것들에 눈길이 닿는다. 냉장고와 싱크대에 쟁여둔 음식은 이미 먹어 치우는 중. 수입이 없는 덕에 쌓는 것보단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서 큰 노력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PASS! 다음은 각종 수집물(?). 피클을 담는 데 유용하게 잘 썼던 파스타 소스병, 그와는 달리 쓸데없이 모아둔 와인병 같은 것들이다. 번거롭지만 외출할 때 조금씩 들고나가면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이것도 통과!


문제는 화분이다. 페트병으로 만들어둔 화분이 무려 다섯 개. 페트병을 분리수거해서 버리자니 식물들이 아직 성장 중다. 그 안에 담긴 흙도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다. 동거 식물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지만 그들은 답이 없고, 나는 매일 마음이 바뀐다.(쓰고 보니 대화가 아니라 식물들에게 사형 예고를 한 거구나)


혼란한 마음, 더 혼란한 글


마음이 시끄러울 때면 글을 썼다. 일기장 또는 소셜미디어에 비공개 모드로. 떠도는 생각을 문자화해서 객관적으로 보고 나면, 조금씩 진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혼란이 더해진 기분이다. 글이라도 써보려고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은 탓이다.


아무래도 당분간, 적어도 일주일은 더 멀미에 시달려야 할 모양이다. 지방에서 사무직 일자리 구하기 프로젝트에 이어, ‘일과 나를 분리하기’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려 했는데 과연 가능할까. 이 모양이라면 출발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다 써버릴 듯싶은데, 나는 과연 주저앉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제때 이사할 집은 구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 내 몸 하나 뉘일 곳은 있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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