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여행일기 1
금쪽같은 백록담.
그 모습을 보기 위한 계획은 이미 5년 전부터였다.
작년에 아이와 호주를 다녀왔기 때문에 올해는 사실 여행계획은 딱히 없었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코에 바람을 쐬어주고는 싶었으나 속초나 강릉 쪽으로 짧게 갔다 올까 싶기는 했다.
"6학년 되면 한라산 다시 오자며~"
아이가 여름 내내 휴가를 안 간 것에 상당히 불만스럽다는 듯이 매우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나 1학년 때 약속했잖아. “
사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아이에게 ADHD 검사를 받게 했다. 결과는 아이는 ADHD였다.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아이가 초등학교 가자마자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해 여름방학 때 아이에게 성취하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한라산 백록담을 보면 어떨까 하는 목표를 세웠고,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한라산에 도전했다. 8살인 아이는 그때도 물론 아주 아기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다. 우리는 성판악 코스를 선택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이가 어려서였는지 우리는 그때는 정상을 정복하진 못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가려면 정오 전에 마지막 휴게소에 진입해야 하는데, 아이와 나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때는 중간에 정상을 포기하고 ‘사라오름’을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을 오를 수 없는 대신에 선택한 사라오름은 이것을 위해서 한라산을 등반했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매우 아름답고, 아이와 천천히 걸으며 즐기기에 좋았다. 사라오름에 반영으로 투영되는 경치를 보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와 얘기했다. 우와. 우리 테오는 여기까지 온 것도 굉장하잖아. 지금 8살인데 말이야. 그러면 6학년 때쯤이면 그때 우리 제주도 한라산에 다시 오자. 그때는 꼭 백록담까지 가서 이왕이면 날씨도 좋아서 보고 오자라고 얘기했었던 것이다.
역시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다. 그렇게 5년여 시간이 흘렀고, 나는 아마 그 사실을 잊었었나 보다. 그런데, 아이가 기억한 것이다. 그리고 1학년 때 한라산을 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온 아이는 이후 학교생활 5~6년 동안 난 한라산도 갔다 왔다고요 라는 자신감으로 만나는 선생님이나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엄마 그때 못 갔던 정상, 6학년 나 졸업하기 전에는 간다 했잖아... 하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는가.
머나먼 해외도 아니고, 그래 다시 맘먹으면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드는 제주도인데.
그래서 다시 여행 계획을 잡았다.
이번에는 꼭 정상탈환이 목표이다. 날씨까지 좋아서 백록담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아이에게 큰 성취의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제주여행의 목표, 한라산 정복이다. 우선, 한라산 등반전문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주에는 5~6개의 한라산 등반 전문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어느 금요일 저녁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제주행 비행기 티켓만 끊어도 등반을 할 수 있도록 등산화는 물론이요, 등산배낭, 스틱, 등산복, 심지어 등산장갑까지도 모두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가 가능하다. 그리고 새벽에 출발할 때, 성판악이나 관음사 등산로 입구까지 고객들을 데려다준다. 여기서 데려다만 주는 곳, 드롭해 주고 하산했을 때 픽업까지 가능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나는 2박을 한곳에서 머물기로 하고, 드롭과 픽업이 모두 가능한 숙소를 선택했다.
제주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도착해서 아이와 저녁시간을 보내고 일찌감치 잠들었다. 신기한 것은 평소에는 7시, 8시에도 잘 못 일어나는 아이가 전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서인지, 5시 30분쯤 아이는 깨우니까 잘 일어났다. 그리고 이 숙소가 좋았던 것은, 한라산 등반입구에는 서울의 그것처럼 김밥집 그런 것들이 없다. 숙소에서 유료로 준비해 주는 물, 김밥등을 가방에 넣고 우리는 새벽 5시 50분 숙소 버스를 타고 성판악 입구로 출발했다.
”볼 수 있을까? 백록담의 푸른 물? “
아니, ”갈 수 있을까? 꼭대기까지? “
혹시 테오야
너는 아니? 엄마는 사람들이 말하는 ADHD 아동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어. 얼마나 집중력 있게 네가 산을 타고 정복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는 걸.
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무엇이든 맘만 먹으면 이룰 수 있었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엄마가 이 등반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너는 나중에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그날 새벽 설레는 출발을 시작했다.